전쟁의 모습을 바꾼 기술을 꼽으라면 사람마다 목록이 다릅니다. 그래도 공개된 기록을 연도 순서로 놓아 보면, 싸우는 방식의 계산 자체가 달라진 때가 몇 번 보입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여섯 가지를 따라갑니다. 레이다, 근접신관, 미사일, 정밀 유도, 스텔스, 무인기입니다. 각 기술이 무엇을 바꾸었는지와 함께, 무엇을 새로 떠안게 했는지도 봅니다.

기술마다 원리를 자세히 다룬 글이 따로 있습니다. 해당 자리마다 그 글로 이어 두었으니, 궁금한 대목에서 건너가 읽으면 됩니다.

무엇을 전환점이라 부르나

2014년 12월 2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의 한 소위원회가 "셋째 상쇄 전략(third offset strategy)"을 두고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상쇄(offset)는 상대가 가진 이점을 다른 무엇으로 메운다는 뜻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설명이 전환점을 생각하는 틀로 쓸 만합니다.

증인으로 나온 연구자 숀 브림리(Shawn Brimley)는 첫째 상쇄 전략의 중심에 원자 무기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는 쏘거나 떨어뜨린 뒤에도 스스로 궤적을 바로잡는 유도 재래식 무기였고, 전장에서 많은 병력을 모아야 할 필요를 줄였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유도 무기는 "정확도가 거리와 상관없어지는" 새 전투 양상을 열었습니다.

이것은 증인 한 사람의 견해입니다. 그래도 전환점이 무엇인지는 잘 드러납니다. 성능 하나가 조금 나아진 때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가 바뀐 때입니다.

1935년부터 2014년까지의 가로 연표. 1935년 레이다 메모, 1940년 공진 마그네트론과 근접신관 연구 시작, 1943년 근접신관의 첫 격추 기록, 1944년 V-1 발사 시작, 1960년 첫 레이저, 1972년 탄호아 다리, 1974년 국방과학위원회 연구, 1983년 F-117A 작전 능력, 1991년 사막의 폭풍(정밀유도무기 6%), 1997년 첫 JDAM 인도, 2010년 무인기 7,500대 가까이, 2014년 USS Ponce의 레이저가 차례로 적혀 있다
이 글에 나오는 전환점의 연도. 공개 자료에 적힌 연도만 옮겼습니다 (도표)(도표)

레이다: 전파로 보는 눈

전파를 쏘아 먼 물체에서 돌아오는 반사를 찾는다는 생각은 오래되었습니다. 1904년 독일의 크리스티안 휠스마이어(Christian Hülsmeyer)가 그런 방법으로 특허를 냈지만,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 말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공습 위협이 연구를 재촉했고, 적어도 여덟 나라의 연구진이 서로 따로 레이다를 개발했습니다. 1935년 2월 12일 영국의 로버트 왓슨와트(Robert Watson-Watt)가 보낸 메모 "전파로 항공기 탐지하기"를, 한 연구자는 뒷날 "레이다의 출생증명서"라고 불렀습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 때 체인 홈(Chain Home)이라는 레이다 체계가 독일 공습을 미리 알렸습니다. 같은 해 버밍엄 대학의 두 연구자 랜들(Randall)과 부트(Boot)가 공진 마그네트론(cavity magnetron)을 발명했습니다. 이 발명이 레이다를 마이크로파로 옮겨 가게 한 가장 중요한 기술 돌파였습니다. 파장이 짧을수록 빔을 좁게 모으기 쉬웠고, 주파수가 높을수록 해상도가 올라갔습니다.

체인 홈은 비행기까지의 거리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돌아온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재는 원리는 레이다: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어떻게 알까에 있습니다.

근접신관: 맞히지 않아도 되는 포탄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포탄으로 정확히 맞히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표준 기관 NIST의 역사 자료는 1940년대 기술로 직접 명중은 크게 버거운 일이었고, 표적에서 조금 떨어져 터질 때 피해가 더 클 때가 많았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나온 장치가 근접신관(proximity fuze)입니다. 표적을 파괴할 수 있는 거리 안에 들어오면 포탄을 터뜨리는 장치로, VT 신관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런 장치는 오래도록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개발은 빨랐습니다. 1940년 6월 미국 국방연구위원회(NDRC)가 세워졌고, 그해 8월 중순 광전·음향·전파 세 방식을 살피는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1943년 1월 5일에는 근접신관으로 일본 항공기 한 대를 격추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45년 8월 14일까지 생산된 신관은 22,073,481개였습니다. 그런데도 근접신관의 개발과 제조는 전쟁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NBS(지금의 NIST) 직원들이 전쟁 끝에 정리한 근접신관 단행본 한 권은 기밀이었다가 1960년에야 해제되었습니다.

존스홉킨스 응용물리연구소(APL)는 자기 역사를 소개하며, 이 성과가 원자폭탄·레이다와 함께 전쟁에서 가장 값진 세 기술 개발로 평가되었다고 적습니다. 누가 그렇게 평가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장치가 어떻게 표적을 알아채는지는 근접신관: 직접 맞지 않아도 작동하는 이유에 나옵니다.

사람 없이 날아가는 무기

1944년 6월부터 1945년 3월까지 V-1이 2만 발 넘게 영국과 유럽 대륙 쪽으로 발사되었습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은 V-1을 세계 첫 실전 순항미사일로 소개합니다. 단순하지만 시끄러운 펄스제트 엔진으로 날았고, 매우 부정확했습니다.

미사일은 날아가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2005년 보고서에 옮긴 정의에서 탄도미사일은 추진 비행 동안만 유도되고, 그 뒤에는 중력과 공기 저항만 받으며 날아갑니다. 순항미사일은 공중·바다·땅에서 쏠 수 있고, 멀리 낮게 나는 유도 미사일입니다.

V-1이 보여 준 것은 무기를 멀리 보내는 일과 정확히 보내는 일이 서로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정밀 유도: 비춘 점과 위성 신호

유도 무기의 뿌리는 1차 세계대전까지 올라갑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프리츠 X(Fritz X)라는 유도 폭탄을 지중해의 연합국 함정에 썼습니다. 항공기에서 떨어뜨린 뒤 사람이 조종간과 송신기로 이끌었고, 그동안 항공기는 느리게 수평으로 날아야 했습니다. 미 육군 항공대도 1940년대에 텔레비전 신호를 쓰는 무선 유도 활공 폭탄을 시험했지만, 전쟁 동안 완전히 배치하지는 못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 레이저(laser) 유도와 반도체 같은 발전이 정확도를 끌어올렸습니다. 레이저 유도 폭탄은 레이저가 비춘 밝은 점을 스스로 찾아가고, 베트남 전쟁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존스홉킨스 APL의 글이 드는 예가 탄호아 다리입니다. 미국은 6년 동안 수백 발의 폭탄을 떨어뜨리며 항공기와 조종사를 잃었고, 다리는 1972년 4월 적은 수의 레이저 유도 폭탄에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전환은 한 번에 오지 않았습니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레이저 유도 폭탄이 두드러졌지만, 정밀유도무기(precision-guided munition, PGM)는 쓰인 탄약 전체의 6%에 그쳤습니다.

다음 걸음은 위성 신호였습니다. JDAM은 유도 장치가 없는 폭탄에 GPS 유도를 붙이는 키트입니다. 1980년대에 연구가 시작되었고, 첫 키트가 1997년에 인도되었으며, 미 공군은 1999년 얼라이드 포스 작전에서 처음 썼습니다.

오늘날 미 국방부는 PGM을 점 표적을 파괴하면서 부수적 피해를 최소로 줄이려는 유도 무기로 정의합니다. 유도 무기는 날아가는 길을 바꿔 조준 오차나 날씨 같은 문제를 바로잡습니다. 폭탄에 무엇이 더해지는지는 정밀유도폭탄: 평범한 폭탄에 무엇이 더해질까, 위성과 관성 센서로 위치를 아는 법은 관성항법과 위성항법, 앞부분의 "눈"은 미사일 탐색기에서 봅니다.

스텔스: 늦게 보이게 만들기

1974년 미 국방부가 연 국방과학위원회(DSB) 연구는 발전된, 서로 연결된 방공망이 퍼지는 것을 미국 항공기에 대한 큰 위협으로 보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레이다에 잡히는 크기, 곧 반사면적이 훨씬 작은 항공기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 이름은 실험 생존성 시험기(XST)였고, 미 공군이 맡으면서 해브 블루(Have Blue)로 불렸습니다. 해브 블루는 1977년 말까지 첫 시험 비행을 했고, 이것이 곧장 F-117 도입으로 이어졌습니다. F-117A는 1981년에 처음 날았고 1983년 10월 작전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첫 전투 임무는 1989년이었습니다.

DARPA는 군사 스텔스를 함정이나 항공기의 "신호(signature)", 곧 겉으로 드러나는 존재감을 줄이는 일로 설명하며 나무껍질에 앉아 사라지는 나방에 견줍니다. 실제로는 사정이 더 복잡합니다. 나방은 눈만 피하면 되지만, XST 사업은 레이다 반사면적과 함께 적외선, 눈에 보이는 신호, 배기까지 다루는 기술을 키웠습니다.

해브 블루가 처음 날기까지 1974년의 연구에서 3년, F-117A가 작전 능력을 갖추기까지는 거의 십 년이 걸렸습니다.

같은 청문회에서 소위원장 J. 랜디 포브스(J. Randy Forbes) 의원은 돈 문제를 짚었습니다. 1970년대 상쇄 전략에는 많은 연구와 개발 투자가 있었지만 그 노력을 뒷받침할 자원은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스텔스·정밀유도무기·센서의 이점을 새 기술을 제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배치한 것은 1980년대 초 군비 증강 때였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비행기"라는 말이 맞는지는 스텔스기: 정말 보이지 않는 비행기일까, 크기와 반사의 관계는 레이다 반사면적(RCS)과 전파흡수재와 흡수구조에서 이어집니다.

무인체계: 사람이 타지 않는 비행기

무인기는 1차 세계대전 때 처음 시험되었지만, 그때 미국은 전투에 쓰지 않았습니다. 파이어비(Firebee)는 1950년대에 사격 연습용 표적기로 처음 날았고, 1960년대에는 정보를 모으는 드론으로 쓰였습니다. 1960년대에는 스스로 나는 드론이 베트남 전쟁의 정찰에도 쓰였습니다.

프레데터(Predator)는 발칸 분쟁에서 처음 쓰여 도로의 무기 이동을 지켜보는 감시 임무를 했습니다. CRS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 국방부의 무인기 보유 대수는 2002년 167대에서 2010년 7,500대 가까이로 늘었습니다.

무인기가 흔히 꼽히는 장점은 두 가지입니다. 조종사의 생명 위험이 없고, 체공 시간 같은 능력이 사람의 한계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종사가 탈 필요가 없는 지루하고, 더럽고, 위험한 임무를 맡깁니다.

오래 떠 있는 정찰기가 왜 중요한지는 정찰·감시 무인기: 오래 떠 있는 드론이 중요한 이유, 무인기와 미사일의 경계는 배회탄약: 미사일과 무인기의 경계, 여러 대가 함께 나는 경우는 군집 드론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전환점마다 따라온 것

연표만 보면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문제가 하나씩 풀린 것처럼 보입니다. 공개 기록을 함께 읽으면 그림이 조금 다릅니다. 전환점마다 새로 떠안은 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스텔스는 1974년 연구에서 1983년 작전 능력까지 왔고, 정밀유도무기는 베트남 전쟁에서 두드러진 뒤에도 1991년에 쓰인 탄약의 6%였습니다.

둘째는 비밀입니다. 근접신관은 2천만 개 넘게 만들어졌는데도 전쟁 중 가장 잘 지켜진 비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작업을 정리한 단행본 한 권은 1960년에야 기밀에서 풀렸습니다.

셋째는 비용과 정비입니다. CRS는 정밀유도무기의 큰 단점으로 비용, 특히 장거리 미사일의 비용을 듭니다. 미 회계감사원(GAO)은 2018년 보고서에서, 미 공군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F-22의 스텔스 도료를 관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 임무에 쓸 수 있는 시간이 크게 준다고 적었습니다.

넷째는 날씨와 방해입니다. 1991년 걸프전 항공 작전에서는 중·고고도에서 날던 항공기가 구름, 연무, 연기, 높은 습도에 더 많이 드러났고, 이것이 레이저 유도 폭탄의 표적 지시기를 방해했습니다.

오늘날 미사일 대부분은 관성항법을 GPS로 고쳐 가며 나는데, 비행 중 일부 구간에서 상대가 GPS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전파를 두고 벌이는 이런 다툼은 전자전이라는 더 넓은 경쟁의 한 부분입니다.

다섯째는 사람입니다. 무인기는 유인기보다 싸게 사고 운용할 수 있지만 더 자주 추락하고, 실은 센서는 매우 비싸서 소모품으로 볼 수 없습니다. 2012년 무렵 대부분의 무인기는 지상 운용자가 적어도 두 명 필요했습니다. 사람이 타지 않을 뿐, 사람이 빠진 것은 아닙니다.

네 줄짜리 표. 근접신관은 직접 맞히지 않아도 되게 했고, 전쟁 중 가장 잘 지켜진 비밀이었으며 기술 단행본 한 권은 1960년에 해제되었다. 정밀 유도는 거리와 상관없는 정확도를 가져왔고 비용, 구름과 연기, 위성항법 방해가 따라왔다. 스텔스는 레이다·적외선·시각·배기 신호를 줄였고 시간이 많이 드는 도료 정비가 따라왔다. 무인기는 조종사 위험을 없애고 체공 시간이 사람의 한계에 묶이지 않게 했고 잦은 추락, 비싼 센서, 대부분 두 명 이상의 지상 운용자(2012년)가 따라왔다
전환점마다 바뀐 것과 함께 따라온 것 (도표)(도표)

레이저와 맞닿는 점

첫 레이저는 1960년에 발명되었습니다. 같은 1960년대에 레이저 유도는 유도 무기의 정확도를 끌어올린 발전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레이저가 한 전환점에 들어간 셈인데, 무기 그 자체가 아니라 표적을 비춰 폭탄이 찾아가게 하는 "점"으로서였습니다. 레이저가 보통의 빛과 어떻게 다른지는 레이저란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빛 같은 에너지 자체를 무기로 쓰려는 연구도 같은 무렵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지향성 에너지 무기(directed-energy weapon, DEW)를 연구했지만, 일부 전문가는 국방부가 성숙하지 못하고 취소된 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썼다고 봅니다. CRS 보고서의 요약은 2014년 USS Ponce에 실은 레이저를 미국 첫 운용 지향성 에너지 무기로 적었습니다.

예측이 빗나간 기록도 길었습니다. 회의론자들은 반농담으로 "레이저는 X년 뒤의 일이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레이저 무기가 앞의 전환점들과 같은 자리에 오를지는 아직 열린 물음입니다.

앞의 여섯 기술이 그 물음을 읽는 기준이 됩니다. 한 번의 시연보다 오랜 배치가 있었는지, 그리고 비용, 정비, 날씨 같은 짐을 어떻게 떠안는지를 보면 됩니다.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 이어진 과정은 레이저 무기의 역사: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에, 지금 알려진 장점과 한계는 레이저 무기의 장점과 한계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