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기로 말을 주고받고, 위성 신호로 자기 위치를 알고, 레이다로 상대를 찾습니다. 현대 군대가 날마다 하는 이 일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같은 공간, 전자기 스펙트럼을 지나갑니다. 상대도 이 공간을 쓰기 때문에, 누가 더 잘 쓰고 누가 막느냐를 두고 경쟁이 생깁니다. 이 경쟁 속에서 스펙트럼을 장악하려는 군사 행동을 전자전(electronic warfare, EW)이라고 부릅니다.

전자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상대 전파를 방해하는 장면이 떠오를 것입니다. 공식 정의는 그보다 넓습니다. 아군의 스펙트럼 사용을 지키는 일, 상대가 내보내는 전파를 찾아 정리하는 일도 전자전에 들어갑니다. 미국 공식 자료는 이 일들을 어떤 갈래로 나누고, 전자전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전자기 스펙트럼은 왜 경쟁의 장인가

전자기 스펙트럼(electromagnetic spectrum)은 전자기 복사의 파장(wavelength) 또는 주파수(frequency)의 범위입니다. 고등학교 물리에서는 주파수를 진동수라고도 부릅니다. 전파와 마이크로파, 가시광선, X선, 감마선이 모두 이 범위 안에 있습니다. 라디오 전파와 눈에 보이는 빛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파장이 다른 같은 무리의 파동입니다.

군대는 이 스펙트럼을 곳곳에 씁니다. 통신 장비로 대화하고 자료를 보내며, 항법과 시각 정보를 얻고, 전 세계에 흩어진 부대를 지휘·통제합니다. 적과 아군이 어디 있는지, 무기가 어떤 효과를 냈는지 아는 데도 스펙트럼이 쓰입니다. 항공기, 위성, 전차, 함정, 무전기에 쓰이는 것처럼 오늘날 거의 모든 무기 체계가 스펙트럼에 기대어 작동합니다.

위에 전파, 마이크로파, 가시광선, X선, 감마선이 왼쪽부터 차례로 놓인 띠가 있고 왼쪽은 파장이 길고 오른쪽은 짧다는 화살표가 있다. 아래 왼쪽 상자에는 군이 스펙트럼으로 하는 일(대화와 자료 전송, 항법·시각 정보, 지휘·통제, 위치 파악), 오른쪽 상자에는 같은 스펙트럼을 쓰는 민간(방송, 이동통신 5G, 위성 항법 GPS)이 적혀 있다. 맨 아래에 혼잡과 경쟁의 뜻이 있다
전자기 스펙트럼에는 전파부터 감마선까지 들어갑니다. 군과 민간이 같은 스펙트럼을 쓰기 때문에 혼잡과 경쟁이 함께 생깁니다 (도표)(도표)

문제는 이 공간을 혼자 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미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 DoD)는 민간의 스펙트럼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을 "혼잡(congestion)"이라고 부릅니다. 잠재 적국이 미국의 스펙트럼 우위에 도전하는 체계를 만드는 상황은 "경쟁(contested)"이라고 부릅니다. 2020년 10월에 나온 국방부의 「전자기 스펙트럼 우세 전략」은 이 두 문제를 각각 짚은 2013년 스펙트럼 전략과 2017년 전자전 전략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미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 보고서가 옮긴 미군 합동교리의 문장은 스펙트럼을 작전 환경을 통제하는 데 꼭 필요한 "기동 공간"이라고 부릅니다. 군은 땅과 바다, 하늘 같은 물리적 영역이나 사이버 공간에서처럼 스펙트럼 안에서도 움직이고 작전을 벌여 이점을 얻으려 합니다.

스펙트럼을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넓은 도로에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차가 많아지면 길이 막히고, 누군가 일부러 길을 막으면 다툼이 됩니다. 실제로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스펙트럼은 파장에 따라 나뉜 수많은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누가 어느 구간을 쓸지는 나라 안팎의 규칙으로 미리 나눠 정합니다.

전자전의 세 갈래: 공격·보호·지원

먼저 전체 정의부터 봅니다. CRS 보고서 R44572는 2019년 2월판 미 국방부 군사 용어 사전을 인용해, 전자전을 "전자기 에너지와 지향성 에너지를 써서 전자기 스펙트럼을 통제하거나 적을 공격하는 군사 행동"이라고 옮깁니다.

같은 보고서의 풀이는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전자전은 대체로 적의 레이다, 무선 통신, 데이터 링크 같은 전자 장비를 탐지하고, 엿듣고, 방해하고, 속이는 작전을 가리킵니다. 적이 같은 일을 하려는 것을 막는 작전도 전자전입니다. 방해만이 아니라 듣기와 지키기도 전자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R44572는 2019년 판 국방부 사전을 인용하는 대목에서 국방부가 전자전을 세 갈래로 나눈다고 설명했습니다. 각 갈래의 뜻은 CRS의 국방 입문서 IF11118이 풀어 쓴 것을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갈래영문 이름무엇을 하는가
전자 공격electronic attack전자기 에너지로 적의 스펙트럼 사용을 떨어뜨리거나 막는다
전자 보호electronic protection아군 군사 자산이 스펙트럼에 접근할 수 있게 지킨다
전자전 지원electronic warfare support아군이나 적군이 내보내는 방사를 찾아내 목록으로 정리한다
가운데 위의 타원에 전자전(EW)이 있고, 아래로 세 상자가 이어진다. 빨간 상자는 전자 공격(적의 스펙트럼 사용을 떨어뜨리거나 막는다), 파란 상자는 전자 보호(아군 군사 자산의 스펙트럼 접근을 지킨다), 초록 상자는 전자전 지원(아군·적군의 방사를 찾아 목록으로 정리한다)이다. 아래에 세 갈래가 서로 받쳐 주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 국방 입문서가 풀어 쓴 전자전의 세 갈래입니다 (도표)(도표)

세 갈래는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입문서는 이 갈래들이 작전에서 서로를 받쳐 주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입니다. 전자전 지원으로 정리한 방사의 목록은 미군을 지키는 데에도, 적의 스펙트럼 접근을 막는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쓰입니다.

이름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CRS 보고서 R46564에 따르면 국방부는 2020년 합동교리 JP 3-85를 내면서 교리 용어를 electronic warfare에서 electromagnetic warfare로 바꿨습니다. 의회는 법률에서 electronic warfare라는 말을 계속 씁니다. 위 표의 세 갈래 이름은 이 변경 전의 국방부 사전을 인용한 CRS의 설명을 따른 것입니다.

요즘 미국 문서에는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electromagnetic spectrum operations, EMSO)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JP 3-85는 전자전과 스펙트럼 관리를 하나의 기능으로 묶었습니다. 전에는 두 분야를 각 군 사령부 안의 서로 다른 조직이 맡았습니다. DSIAC(Defense Systems Information Analysis Center)가 연 한 웨비나의 소개 글도 EMSO를 고전적인 전자전과 스펙트럼 관리를 아우르는 21세기 국방부 용어로 설명합니다.

짧은 역사: 공개된 이야기

군이 스펙트럼에 기대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 쌍방향 무전기가 나온 뒤부터입니다. 미군은 한 세기가 넘게 지상 무전기로 통신해 왔습니다. 1차·2차 세계대전 때의 초기 무전기는 부대를 조율하는 음성 통신에 쓰였습니다. 그 뒤 한 세기 동안 이 의존은 거의 모든 무기 체계로 넓어졌습니다.

전자전은 새로 생긴 개념이 아닙니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국과 나치 독일은 레이다와 무기 체계, 항공기를 개발하고 개선하며 기술 경쟁을 벌였고, 전자전은 그 경쟁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났습니다. 레이다가 전파로 거리를 재는 원리는 「레이다: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어떻게 알까」 글에서 다룹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1993년에 공개를 승인한 역사 자료는 전자 정보(electronic intelligence, ELINT)의 시작을 2차 대전 직전의 영국에서 찾습니다. 1939년 초 영국의 방공 과학 연구 위원회가 독일 신무기에 대해 영국이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을 처음 짚었습니다. 영국 쪽 분석은 이윽고 독일이 날씨나 어둠, 구름과 상관없이 폭격기를 영국 상공에서 움직일 수 있는 전파 빔을 개발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대응책을 찾는 일이 곧바로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CIA 자료는 적이 내보낸 전자기 방사를 가로채 분석한 이 일을 오늘날 ELINT의 탄생으로 보고, 그 해를 1940년으로 적습니다. 상대가 내보내는 전파를 찾아 분석한다는 점에서 앞에서 본 전자전 지원과 닮은 일입니다.

2차 대전 중 미국은 태평양과 유럽 전선에서 전자 감청 장비를 널리 썼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전시 활동처럼 ELINT에 대한 관심도 한동안 줄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전자 기술 발전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된 것은 소련이 철의 장막을 친 뒤였습니다.

냉전 동안 전자전 능력은 미국이 이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이 이끈 바르샤바 조약기구 사이의 군사 능력 경쟁을 뒷받침했습니다. 지상 전자전은 전통적으로 무전기와 포병 레이다를 가로채고 방해하는 데 힘을 모았습니다. 최근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조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 IED)을 방해하는 데에도 쓰였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시간 축에 여섯 점이 있는 연표. 1900년대 초 쌍방향 무전기 등장, 1·2차 대전의 음성 무전, 1939~1940년 영국이 독일 폭격기용 전파 빔을 분석하며 ELINT가 시작됨, 2차 대전 뒤 관심이 줄었다가 철의 장막 뒤 다시 커짐, 냉전기 NATO와 바르샤바 조약의 군사 능력 경쟁, 2020년 JP 3-85 교리와 스펙트럼 우세 전략 발표
공개 자료에 적힌 사건과 연도로 본 전자전의 흐름입니다 (도표)(도표)

전자전과 우리 생활의 접점

같은 스펙트럼을 민간도 씁니다. 가장 가까운 예는 위성 항법 시스템인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입니다. GPS는 무선 항법 업무용으로 남겨 둔 주파수의 전파 신호를 씁니다. 그래서 GPS 서비스가 끊기지 않으려면 이 주파수를 간섭에서 지켜야 합니다.

GPS 간섭이 생기는 까닭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까운 대역에서 나온 전파, 고의든 아니든 일어나는 방해(jamming), 자연에서 생기는 우주 기상이 그 예입니다. 미 정부는 나라 안팎의 스펙트럼 규정과 간섭 탐지·완화, 법 집행으로 사람이 일으키는 간섭을 줄이려 합니다.

군의 스펙트럼 작전이 생활과 맞닿는 자리도 있습니다. 미 정부 GPS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미 우주군의 합동상업운영(Joint Commercial Operations, JCO)은 전자기 작전 환경 안의 위협을 감시하고 특성을 파악하는 일을 맡습니다. JCO는 이 일을 EMSO로 수행하며, 여기에는 위치·항법·시각 정보의 상황 인식이 들어갑니다.

이동통신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CRS는 국방부가 쓰던 스펙트럼을 다시 나누면 5G 망 구축이 빨라질 수 있다는 면과, 국방부가 중요한 국방 기능을 맡는다는 면을 함께 듭니다. 그래서 의회가 상업 5G의 필요와 국방부의 임무상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기관 사이의 조율을 권하는 데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정책과 법의 틀

전자전이 다투는 스펙트럼은 아무렇게나 쓰는 공간이 아닙니다. 나라 안팎의 규칙이 누가 어느 주파수를 쓸지 나누고, 군용 무선 설비를 어떻게 다룰지도 따로 정해 둡니다.

전파는 한 나라 안에서만 쓰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펙트럼을 나눠 쓰는 규칙은 국제 기구에서 시작합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ITU)은 정보통신기술을 맡은 유엔 전문기구이고, 회원국은 194개국입니다. 1865년 첫 국제 전신망을 관리하려고 세워져 유엔 가족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구입니다.

ITU 안의 전파통신부문(ITU-R)은 모든 무선통신 업무가 전파 스펙트럼을 합리적이고 공평하며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쓰게 하는 것을 임무로 삼습니다. 위성 궤도를 쓰는 업무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그 규칙의 뼈대가 전파규칙(Radio Regulations)입니다. 전파 스펙트럼과 정지·비정지 위성 궤도의 사용을 다루는 국제 조약이며, 세계전파통신회의(WRC)가 3~4년마다 열려 이 규칙을 검토하고 필요하면 고칩니다.

ITU 헌장은 각 나라가 자기 전기통신을 규율할 주권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동시에 제45조는 모든 무선국이 목적과 상관없이 다른 회원국 등의 무선 업무나 통신에 유해한 간섭을 일으키지 않도록 세우고 운용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군용 설비는 따로 다룹니다. 헌장 제48조에 따르면 회원국은 군용 무선 설비에 대해 완전한 자유를 누립니다. 그래도 이 설비는 가능한 한 조난 때 도움을 주는 일과 유해 간섭을 막는 조치에 관한 규정을 지켜야 합니다.

나라 안에서는 정부 기관이 스펙트럼을 나눠 관리합니다. 미국에서는 국가통신정보청(NTIA)이 연방 기관의 전파 사용을 맡고,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방송·이동통신·상업·산업·개인 용도와 주·지방 정부의 사용을 맡습니다. 두 기관은 간섭을 피하려고 주파수 분배와 지정, 기술 요건을 함께 조율하고, WRC 같은 국제 회의에서 미국을 대표합니다.

많은 연방 기관이 중요한 업무에 전파 스펙트럼을 쓰고, NTIA는 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나라 안팎의 필요를 맞추는 일을 맡습니다. 그 가운데 전자기 스펙트럼을 가장 많이 쓰는 연방 기관으로 CRS는 국방부를 꼽습니다.

전파 방해기를 둘러싼 규칙도 있습니다. 미 정부 GPS 공식 사이트는 소비자가 미국 안에서 신호 방해기를 합법적으로 쓸 수 없다고 밝힙니다. FCC는 불법 휴대전화·GPS 방해기를 광고하고 팔고 쓰는 일을 단속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

  • 레이다: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어떻게 알까: 전자전이 다투는 대상 가운데 하나인 레이다가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재는 원리를 봅니다.
  • 빛의 기초: 파동, 파장, 주파수, 광자: 이 글에 나온 파장과 주파수를 고등학교 물리 수준으로 다시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