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여름, 이라크의 미군에서 한 가지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험비(HMMWV)라는 바퀴 달린 다목적 차량에 장갑을 더 두른 "증가장갑 험비"를 더 보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4년 뒤인 2007년, 미 국방부는 이라크의 증가장갑 험비 대부분을 MRAP이라는 다른 차로 바꾸는 대규모 조달을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차를 바꾸었을까요? 길가에 숨긴 폭탄, 급조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 IED)입니다. 이 글은 IED가 미군 사상자의 큰 몫이 된 뒤 장갑 키트에서 MRAP, 험지용 M-ATV로 이어진 변화를 따라갑니다. 근거는 미 감사원(GAO)과 의회조사국(CRS)이 의회에 낸 보고서입니다.

조달이 얼마나 빨랐는지와 함께 무엇을 대가로 치렀는지도 봅니다. 효과를 두고 나온 숫자가 왜 하나로 모이지 않는지도 함께 살핍니다.

길가 폭탄이 사상자의 큰 몫이 되다

IED는 길가 폭탄과 자살 차량 폭탄을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2008년 2월 판 의회조사국 보고서는 IED가 이라크 미군 전투 사상자의 70% 넘게, 아프가니스탄 전투 사상자의 50%를 냈다고 적었습니다. 사망자와 부상자를 함께 센 값이고, 근거는 2001년 10월 7일부터 2007년 8월 18일까지의 국방인력데이터센터 집계입니다.

2008년 7월 감사원 보고서의 값은 조금 달라서, 두 전장을 묶어 현재 전투 작전 사상자의 약 75%를 IED 탓으로 봅니다. 두 숫자는 집계한 때가 다르고, 한쪽은 전장을 나눠 세고 다른 쪽은 묶어 셌습니다.

피해를 입은 것은 미군만이 아니었습니다. 차량 폭탄은 경찰서와 시장, 모스크도 노렸고 현지 시민과 미군을 함께 죽였습니다.

먼저 나온 답: 험비에 장갑을 더하다

처음 나온 답은 이미 있던 차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보급과 방호 임무를 맡은 병사와 해병을 지키려고 2003년 여름부터 증가장갑 험비와 덧대는 장갑 키트가 요구되었습니다. 증가장갑 험비는 소총탄과 폭발에 대한 보호를 높인 차이고, 장갑 키트는 장갑이 없던 차에 얼마간의 보호를 더하는 부품입니다.

공급은 요구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2004년 9월 현재 필요한 8,105대 가운데 전장에 있던 증가장갑 험비는 5,330대였습니다. 감사원이 인용한 육군 교훈 센터 연구는 증가장갑 험비로 이동하면 IED로 사람과 장비가 다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고 보았습니다.

트럭도 사정이 비슷했습니다. 육군은 2003년 11월 다섯 종류의 트럭에 장갑 키트 3,780개가 필요하다고 처음 밝혔지만, 2005년 2월에야 다 만들었고 2005년 5월에야 다 달았습니다. 첫 요구에서 18개월이 걸렸고, 그 사이 요구는 크게 늘었습니다. 뒤에 더해진 7,847개는 요구에서 채워지기까지의 시간이 줄었습니다.

해병대 쪽에서는 다른 요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2005년 2월 해병대 지휘관들은 IED와 로켓 추진 유탄, 소화기 사격이 위험한 지역에서 쓸 장갑 전술 차량을 긴급 작전 요구로 냈습니다. 해병대는 처음에 그 답을 증가장갑 험비로 정했습니다. 그 뒤 18개월 동안 현장에서는 지뢰 방호가 더 강한 차량을 달라는 요구가 거듭 나왔습니다.

적응과 대응의 경쟁

장갑을 더하면 문제가 끝났을까요? 반란 세력은 대응책에 빨리 적응했고, 2008년 무렵에는 더 정교한 IED가 늘고 있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 여럿은 보호 장비가 배치된 지 몇 달 만에 덜 효과적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군의 대응은 차량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정보를 모으고, 전파 대역 일부를 방해하는 재밍(jamming)도 큰 갈래였습니다. 2006년 1월 국방부는 IED 대응을 이끌고 조정할 합동 IED 대응 기구(JIEDDO)를 세웠고, 2월 국방부 지시로 대응 전략 계획을 맡겼습니다. 2012년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구에 배정된 돈은 180억 달러를 넘었고, IED 위협이 앞으로의 분쟁에서도 계속 영향을 줄 것이라는 데 넓은 합의가 있었습니다.

정보를 다루는 일도 경쟁의 일부였습니다. 국방부는 IED 위협 자료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어떤 설계가 통했고 어떤 설계가 통하지 않았는지를 적에게 알려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탓에 대응 장비를 만드는 업계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다 받지 못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MRAP은 어떤 차인가

MRAP은 지뢰 방호·매복 방호 차량(Mine-Resistant, Ambush-Protected)의 머리글자입니다. 한 차종의 이름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여러 업체가 만든 차량 무리를 가리킵니다. 대체로 "V"자 모양 차체와 장갑판을 써서 지뢰와 IED를 막도록 만들었습니다.

MRAP 사업은 지뢰 폭발과 파편, 직사 화기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장갑 차량을 사는 해군·해병대 주도의 합동 사업이었습니다. 차는 크기와 쓰임에 따라 세 범주로 나뉘었습니다.

범주크기와 쓰임태우는 인원
I가장 작다. 주로 도시 작전7명까지
II경계, 호송, 병력·화물 수송, 의무, 폭발물 처리, 공병을 맡는 다목적11명까지
III가장 크다. 주로 지뢰·IED 제거13명까지

MRAP이 2007년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닙니다. 육군과 해병대는 2003년부터 범주 III의 버펄로와 범주 II의 쿠거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적은 수로 써 왔습니다. 주된 일은 길을 개척하고 폭발물을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차들은 승무원을 잘 지킨다는 평을 빨리 얻었고, 병력을 태우는 데도 증가장갑 험비보다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2003~2011년 연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해마다 한 덩어리로 묶은 연표. 차량과 장갑, 조직과 예산, 이라크의 IED 추세를 세 색으로 나눴다. 2003년 증가장갑 험비 요구, 2006년 1월 JIEDDO 설립, 2007년 5월 MRAP 최우선 지정, 2009년 6월 M-ATV 주문, 2011회계연도까지 383억 4,600만 달러가 보인다.
장갑 키트에서 MRAP까지, 2003~2011년. 날짜와 숫자는 미 감사원(GAO)과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적힌 것입니다 (도표)(도표)

연표의 앞부분은 기존 차량에 장갑을 더하던 시기이고, 2007년부터는 MRAP 조달이 중심이 됩니다. 2008년 여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지형에 맞춘 가벼운 형이 따로 나옵니다.

최우선 조달 사업

2007년 초부터 요구 수량이 빠르게 커졌습니다. 해병대 지도부는 2007년 2월 이라크의 증가장갑 험비를 모두 MRAP으로 바꾸기로 했고, 육군은 험비에 계속 기대려 했다고 전해졌습니다. 2007년 3월 26일 국방부 전체 요구는 7,774대였습니다. 5월에는 육군 지도부도 같은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6월 28일 합동요구심의회(JROC)가 험비를 모두 MRAP으로 바꾸는 요구를 지지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숫자로 보면 변화가 더 크게 보입니다. 2005년 긴급 요구서의 해병대용 1,169대가 2008년 7월에는 승인 요구 15,838대가 되었고, 탄도 시험용 133대가 따로 있었습니다. 육군 몫만 12,000대였습니다.

결정은 국방장관의 메모로 굳어졌습니다. 2007년 5월 2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MRAP 사업을 국방부의 최우선 조달 사업으로 여겨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같은 달 MRAP 태스크포스를 세웠습니다. DX 등급도 승인해 관련 계약이 이 등급이 없는 계약보다 먼저 받아들여지고 수행되게 했습니다.

조달 방식도 보통과 달랐습니다. 요구 조건은 최소한으로 두고, 이미 시장에 있는 차를 크게 활용했습니다. 한 업체가 필요한 차를 제때 다 댈 수 없다고 보고 아홉 업체와 계약했고, 업체마다 적어도 4대를 사서 시험했습니다. 무전기 같은 임무 장비는 차를 산 뒤 정부 시설에서 넣었습니다.

장비를 넣는 일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해군 우주·해양전 체계 센터(SPAWAR)가 맡았고, 2008년 4월 한 달에만 1,157대를 마쳤습니다. 국방부는 강철과 타이어 생산 능력을 늘리는 데 돈을 댔습니다. 몇몇 업체는 주문을 받기 전에 제 돈으로 강철과 부품을 샀습니다. 계약에 없는 일이었고 위험은 업체가 졌습니다.

MRAP 누적 대수를 다섯 시점의 막대로 나타낸 도표. 2007년 2월 첫 인도 10대, 2007년 9월 871대, 2008년 3월 6,997대, 2008년 5월 9,121대가 인도되었고, 2009년 7월에는 16,204대가 생산되어 그 가운데 13,848대가 배치되었다. 막대 사이는 선으로 잇지 않았다.
MRAP이 얼마나 빨리 들어왔나. 감사원 보고서 두 편에 적힌 다섯 시점만 그렸습니다 (도표)(도표)

인도는 2007년 2월 한 업체의 10대로 시작했습니다. 2007년 9월까지 871대, 계약 뒤 1년 조금 지난 2008년 3월까지 6,997대, 2008년 5월까지 9,121대가 들어왔습니다. 2009년 7월 현재 생산된 MRAP은 16,204대였고, 그 가운데 13,848대가 두 전장에 배치되었습니다.

속도에는 값이 따랐습니다. 국방부의 보통 정책은 무기를 다 시험한 뒤 배치하게 합니다. MRAP은 운용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수천 대가, 시험이 끝나기 전에 수천 대가 더 주문되었습니다. 감사원은 이 방식이 꼭 필요한 능력을 빨리 주었지만 성능과 유지, 비용의 위험도 키웠다고 평가했습니다.

효과를 둔 숫자들

MRAP은 얼마나 사람을 지켰을까요? 2008년 5월 브리핑에서 국방부 관계자들은 MRAP의 사상률을 6%로 들며 미군이 가진 차량 가운데 생존성이 가장 높다고 했습니다. M-1 에이브럼스 전차는 15%, 증가장갑 험비는 22%라고 했습니다. 사상률을 어떻게 셌는지는 이 기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두 칸으로 된 비교 도표. 왼쪽 칸은 국방부 관계자가 2008년 5월 브리핑에서 말한 사상률로 증가장갑 험비 22%, M-1 에이브럼스 전차 15%, MRAP 6%이며 사상률의 정의는 밝히지 않았다고 적었다. 오른쪽 칸은 차량 무게로 앞선 MRAP 14~24톤, M-ATV 12톤이고, 육군 평가 센터가 크기·무게·기동성의 제한을 달았다는 메모가 있다.
보호와 무게: 기록에 남은 숫자. 두 칸은 서로 다른 잣대이고, 보고서에 적힌 값만 그렸습니다 (도표)(도표)

더 큰 숫자도 있습니다. 2011년 물러나는 게이츠 장관과의 신문 인터뷰에서는 IED 공격 때 MRAP이 험비보다 10배 안전하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MRAP 합동사업단은 공격 건수와 차 안 병력 수로 어림해 이라크 1만 명, 아프가니스탄 3만 명, 모두 4만 명까지의 생명을 구했다고 추정했다고 전해졌습니다. 일부 국방 전문가는 이 추정이 너무 높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현장의 평가는 쓰임에 따라 갈렸습니다. 병사 300명 넘게 답한 현장 설문에서 병사들은 대체로 MRAP에 만족했습니다. 전투 군수 호송, 길 개척, 기습, 신속 대응, 내려서 움직일 병력이 많은 임무에는 잘 맞는다고 보았습니다. 좁은 도시에서 차를 타고 하는 순찰이나 넓은 야지 작전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시기 이라크의 IED 폭발 건수는 크게 줄었습니다. 폭발 건수는 2006년 10월 라마단 때 튀었다가 2007년 7월까지 높게 이어졌고, 그 뒤 10월까지 크게 줄었습니다. 2008년 12월에는 한 달 50건 아래로 2004년 초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 숫자는 차가 막아 낸 공격의 수가 아니라 일어난 폭발의 수입니다. 그래서 차량의 효과와는 다른 잣대입니다.

지휘관들은 빠르게 배치된 IED 대응 장비와 방식이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의 안보가 나아진 까닭으로는 증파 병력, 많은 수니파 아랍인의 폭력 거부처럼 다른 요인도 함께 꼽힙니다. 2008년 초 무렵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효과를 낸 IED 공격이 오히려 늘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차의 한계와 M-ATV

지키는 힘에는 무게가 따랐습니다. 육군 평가 센터는 모든 MRAP의 효과를 "제한이 있는" 것으로 평가했고, 그 제한에는 차량 크기와 무게, 기동성이 들었습니다. 국방부도 특히 야지 기동과 수송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신뢰성과 기동성, 안전 문제 때문에 설계를 고치고, 생산 뒤에 손보고, 차를 쓰는 방식을 바꿔야 했습니다.

2007년에 이미 걱정이 나와 있었습니다. 해병대는 MRAP이 군수 부담 때문에 원정용이 아니고 함정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멀리 옮기는 값도 컸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대당 수송비가 비행기로 13만 5천 달러, 배로 1만 8천 달러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길은 이 한계를 더 드러냈습니다. 2008년 여름 국방부는 나쁜 도로와 험한 지형을 위해 더 가볍고 야지를 잘 달리는 MRAP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M-ATV는 12톤으로, 14~24톤이던 앞선 MRAP보다 가볍고 야지 기동이 낫습니다.

인도 주문은 2009년 6월에 나갔습니다. 이번에도 생산과 시험이 크게 겹쳐, 시험에서 문제가 나오면 비싼 재작업을 해야 할 위험을 안았습니다.

국방부가 승인한 조달 목표는 25,700대였고, 그 가운데 8,100대가 M-ATV였습니다. 2011년 7월 21일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인도된 MRAP은 14,749대였고 그중 6,980대가 M-ATV였습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MRAP 다수는 일부 도로에 너무 무겁고 야지 기동이 모자라다고 판단되어 쓰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위협도 멈춰 있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반군이 더 큰 IED를 쓰면서 M-ATV 탑승자의 사상이 늘었고, 국방부는 M-ATV에 장갑을 더 달았습니다. 이 장갑은 탑승자를 더 지키려는 것이지만 차를 더 무겁고 덜 안정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적혔습니다. 많은 아프가니스탄 도로에 너무 무겁고 전복 사고가 더 잦아질 수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남긴 것

돈의 규모부터 보겠습니다. 2011 회계연도까지 의회는 모든 형의 MRAP에 383억 4,600만 달러를 배정했습니다. 가장 많았던 해는 2008 회계연도로 168억 3,800만 달러였고, 2012 회계연도에는 조달 예산 요청이 없었습니다. 2009년까지의 생산 예산 약 227억 달러는 대부분 정규 예산이 아닌 보충 예산이었습니다.

감사원은 이 조달에서 교훈을 둘로 나눴습니다. 국방장관이 최우선으로 선언하고 DX 등급을 준 것, 보충 예산이 있었던 것은 성공의 큰 요인이었지만 다른 사업에 옮기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검증된 기술만 쓰기, 요구를 최소로 두기, 경쟁을 크게 넣기, 최종 통합 책임을 정부가 지기는 다른 사업에도 옮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차는 전쟁 뒤의 숙제도 남겼습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줄기 시작하자 육군과 해병대는 초기형 MRAP 대부분을 해외 사전 배치 물자로 두고, 일부를 훈련용으로 들여오고, 일부를 군수·길 개척 부대에 넘기려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병력이 늘면서 이 계획은 바뀌었습니다. 장기 유지비는 2009년에도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차도 이미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육군과 해병대는 2012 회계연도부터 험비를 새 합동 경전술차량(JLTV)으로 차츰 바꾸려 했습니다. 감사원은 2009년 8월 MRAP과 M-ATV, JLTV의 능력이 계획 없이 겹칠 위험이 있으니 관리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레이저와도 한 번 만납니다. 2008년 2월 판 의회조사국 보고서에는 육군이 2010년까지 IED를 파괴할 수 있는 고체 1킬로와트급 차량 탑재 레이저를 배치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가 옮겨져 있지만, 그 계획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레이저 무기가 실제로 무엇이고 영화와 어떻게 다른지는 레이저 무기란 무엇인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길가 폭탄은 몇 해 만에 미군 차량의 모양과 조달 방식, 예산의 쓰임새를 함께 바꾸었습니다. 그 뒤에는 25,700대라는 조달 목표와 함께, 지키는 힘과 움직이는 힘 사이에서 어디에 설지라는 물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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