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10월 13일 빈.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의 당사국들이 모인 검토회의가 표결 없이 문서 하나를 채택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영구히 멀게 하도록 특별히 설계한 레이저 무기를 쓰지 않고,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때까지 그런 무기가 실제 전투에 쓰인 적은 없었습니다.
레이저 무기 이야기가 나오면 이 의정서도 자주 함께 나옵니다. 그런데 의정서가 레이저 무기 전체를 막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금지되고 무엇이 금지 대상 밖에 남았는지, 한국은 가입했는지를 조약 원문과 유엔·미국 정부의 공식 자료로 차례로 짚어 봅니다.
전장에 나오기 전에 금지부터 정한 무기
무기 규범은 보통 피해가 쌓인 뒤에 생깁니다. 이 의정서는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유엔 군축사무소(UNODA)는 1995년의 제4의정서 채택을 "어떤 무기 체계가 쓰이기 전에 미리 금지된 예"로 소개하고, 소책자에서는 앞서 대처한 점을 이 의정서의 큰 장점으로 꼽습니다.
출발은 1980년대 말이었습니다. 몇몇 나라가 레이저 무기를 사람에게 쓰는 일을 걱정했지만, 그런 무기가 아직 없던 때라 다른 나라들은 서두를 까닭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1989~91년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레이저 무기의 위험을 살피는 전문가 회의를 네 번 열었습니다.
협상 내내 찾은 것은 받아들일 만한 문안이었습니다. 적의 광학 장비에 맞서 레이저를 쓰는 길은 막지 않으면서, 실명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지키는 문안입니다. 1997년 1월 미국 대통령이 상원에 비준 동의를 요청하며 함께 보낸 국무부 보고서는 이 의정서가 그런 무기가 흔해지기 전에 제때 위험에 대처하려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레이저 무기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레이저 무기란 무엇인가: 영화와 실제의 차이」에서, 레이저 무기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레이저 무기의 역사: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눈은 왜 레이저에 특히 약한가
눈은 원래 빛을 모으는 기관입니다. 앞쪽의 각막과 수정체가 들어온 빛을 꺾어 눈 뒤쪽 망막에 모으고, 망막이 그 빛을 받아 우리는 사물을 봅니다. 레이저처럼 곧게 나아가는 빛도 이 길을 그대로 따라 망막의 작은 점에 모입니다.
영국 보건 당국의 레이저 안전 소책자는 레이저 빔이 주는 손상이 어느 기관에 닿았는지에 따라 다르고, 수정체가 빔을 모을 수 있어 눈에 특히 위험하다고 설명합니다. 국제비이온화방사선보호위원회(ICNIRP)의 2013년 지침은 가시광과 근적외선 구간에서 망막이 몸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 훨씬 손상되기 쉽다고 적습니다. 눈 속 매질이 투명하고, 눈이 그 빛을 모으기 때문입니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장면을 떠올리면 비슷합니다. 실제로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돋보기는 치우면 그만이지만, 눈은 보고 있는 동안 늘 빛을 모으고 그 초점 자리에 섬세한 망막이 붙어 있습니다. 근적외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빛도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점은 「파장은 왜 중요한가: 보이는 빛과 보이지 않는 빛」에서 이어집니다.
그래서 레이저 안전 기준은 눈을 먼저 지킵니다. 사람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노출돼도 해를 입지 않는 레이저 방사의 최대 수준을 최대 허용 노출량(maximum permissible exposure, MPE)이라고 부릅니다. 생활 속 레이저의 등급과 보안경 표시는 「레이저 안전: 등급과 보안경 읽는 법」에서 따로 다룹니다.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과 제4의정서
제4의정서는 혼자 서 있는 조약이 아닙니다. 1980년 10월 10일 제네바에서 채택되고 1983년 12월 2일 발효한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onvention on Certain Conventional Weapons, CCW)에 딸린 의정서입니다. 유엔 군축사무소는 CCW를 국제인도법의 핵심 문서로 소개하고, 그 목적을 전투원에게 불필요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는 고통을 주거나 민간인에게 무차별로 피해를 준다고 여겨지는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으로 적습니다.
협약의 짜임은 두 겹입니다. 틀이 되는 협약 본문에는 가입 규칙이나 새 의정서를 협상하는 절차 같은 일반 규정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무기를 금지하고 제한하는지는 부속 의정서에 들어 있고, 지금 의정서는 다섯입니다.
- 제1의정서: 탐지할 수 없는 파편
- 개정 제2의정서: 지뢰, 부비트랩과 기타 장치
- 제3의정서: 소이 무기
- 제4의정서: 실명 레이저 무기
- 제5의정서: 전쟁 잔류 폭발물
제4의정서의 정식 이름은 협약의 긴 정식 이름 뒤에 "추가 의정서"를 붙이고, 괄호 안에 "제4의정서, 실명 레이저 무기에 관한 의정서"라고 적은 것입니다. 우리말은 이 사이트가 옮긴 것입니다. 1995년 10월 13일 빈에서 채택됐고, 그해 12월 12일 유엔 사무총장이 기탁처로서 모든 나라에 의정서를 돌렸습니다. 발효는 1998년 7월 30일입니다.
의정서가 금지하는 것
조문은 네 개뿐이고 짧습니다. 아래 한글은 공식 번역이 아닌 이 사이트의 풀이입니다. 영문 정본 문구는 검토회의 최종 문서인 유엔 문서 CCW/CONF.I/16에 실린 의정서 원문과 대조했습니다.
제1조는 두 가지를 금지합니다. 첫째, "유일한 전투 기능으로든 여러 전투 기능 가운데 하나로든" 강화되지 않은 시력에 영구 실명을 일으키도록 특별히 설계한 레이저 무기를 쓰는 일입니다. 둘째, 그런 무기를 어떤 국가나 비국가 단체에 넘기는 일입니다.
강화되지 않은 시력이란 맨눈, 또는 시력 교정 기구를 쓴 눈을 말합니다. 조문의 무게는 "특별히 설계한"과 "영구 실명"이라는 두 말에 실려 있습니다.
영구 실명은 제4조가 정의합니다. 되돌릴 수도 교정할 수도 없고, 회복 가망 없이 심각한 장애를 주는 시력 상실입니다. 심각한 장애는 두 눈으로 잰 스넬렌 시력 20/200 미만에 해당한다고 조문은 정합니다.
제2조는 금지가 아니라 당사국의 의무를 정합니다. 레이저 체계를 쓸 때 강화되지 않은 시력에 영구 실명이 생기지 않도록 실행 가능한 모든 예방 조치를 해야 하고, 그 조치에는 군대 훈련과 다른 실제 조치가 들어갑니다. 유엔 군축사무소의 소책자도 이 조항을 부수적인 영구 실명을 막는 예방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합니다.
의정서가 금지 대상에서 빼는 것
제3조는 금지의 경계를 정합니다. 광학 장비를 겨냥한 레이저 체계를 포함해, 레이저 체계를 정당하게 군사적으로 쓰다가 부수적으로 생기는 실명은 이 의정서의 금지 대상이 아닙니다. 유엔 군축사무소의 소책자는 거리 측정기 같은 다른 레이저 체계를 정당하게 쓰다 의도치 않게 생긴 실명을 예로 듭니다.
그렇다고 아무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체계에도 영구 실명을 피할 "실행 가능한 모든 예방 조치"가 요구됩니다. 앞의 제2조가 바로 그 자리를 맡습니다.
의정서가 다루는 행위도 정해져 있습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국방부의 지향성 에너지 무기(directed-energy weapon, DEW)를 다룬 보고서에서, 이 의정서가 그런 무기의 개발·조달·보유를 다루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제1조가 금지한 것은 사용과 이전입니다.
1996년 검토회의의 최종 선언도 이 범위 너머를 앞으로의 물음으로 남겼습니다. 최종 선언은 실명 레이저 무기를 전면 금지할 필요를 인정하고, 레이저 체계 사용에 따른 실명 효과 문제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다룰 수 있는 물음으로는 실명 레이저 무기의 사용·생산·비축·이전 금지, 그런 무기의 준수 문제, 시야 개념을 포함한 "영구 실명"의 정의를 들었습니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가입
유엔 군축사무소에 따르면 2026년 기준으로 128개국이 CCW를 비준하거나 가입했고, 제4의정서의 당사국은 111개국입니다. 유엔 조약집의 제4의정서 현황도 당사국을 111로 적습니다.
한국은 2001년 5월 9일 CCW에 가입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기준 유엔 조약집의 제4의정서 당사국 명단에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협약에 가입한 나라도 어느 의정서에 묶일지는 따로 정합니다. 유엔 조약집은 제1~3의정서를 협약 현황 안의 칸으로, 제4의정서를 별도 현황으로 적습니다.
미국은 2008년 12월 23일 제4의정서를 비준했고, 2009년 7월 21일 미국에 대해 발효했습니다. 가입하면서 선언을 낸 나라도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제4의정서 규정이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고 이해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일랜드는 내용이나 성질상 평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규정은 언제나 지킨다고 밝혔고, 여러 나라가 같은 선언을 냈습니다.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와 의정서의 관계: 공식 자료가 말하는 것
오늘날 드론이나 미사일을 상대하려고 개발하는 레이저는 고에너지 레이저(high-energy laser, HEL) 무기입니다. 미 의회조사국은 이것을 지향성 에너지 무기의 한 갈래로 묶습니다. 지향성 에너지 무기는 운동 에너지 대신 한데 모은 전자기 에너지로 상대에 맞서는 무기이고, 고출력 마이크로파 무기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두 갈래의 차이는 「레이저와 고출력 마이크로파: 지향성 에너지 두 가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보고서의 군비 통제 절은 지향성 에너지 무기의 일부 쓰임이 금지돼 있다고 적고, 그 예로 제4의정서 제1조를 듭니다. 그러면서 미군의 지향성 에너지 무기 사용을 어떤 상황과 목적에서 허용해야 하는지는 의회가 따져 볼 물음으로 남겨 둡니다.
눈의 위험은 함정 레이저 보고서가 더 직접 적습니다. 미 해군이 개발하는 고체 레이저의 빛은 실명을 포함해 사람 시력에 영구 손상을 줄 수 있는 주파수이고, 실명은 표적을 손상시키는 거리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표적이나 안개, 공기 중 입자에 맞고 흩어진 빛도 노출된 눈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 경고가 공식 보고서가 꼽는 다른 한계와 어떻게 나란히 놓이는지는 「레이저 무기의 장점과 한계」에 정리했습니다.
각주에는 미 국방부의 판단도 실려 있습니다. 국방부는 이 의정서가 국방부 정책과 완전히 맞는다고 보고, 보고서가 다룬 레이저들이 맨눈이나 교정 기구를 쓴 눈에 영구 실명을 일으키도록 특별히 설계한 레이저의 사용을 금지하는 국방부 정책과 맞는다고 봅니다.
공식 자료를 나란히 놓으면 두 가지가 함께 보입니다. 의정서는 무기가 무엇을 위해 설계됐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레이저를 쓰는 쪽에는 설계 목적과 상관없이 실명을 피할 예방 조치를 요구합니다. 기사에서 "실명 레이저"라는 말을 만나면 어느 쪽 이야기인지부터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기사를 읽는 방법은 「레이저 무기 기사 읽는 법: "kW급", "사거리", "한 발 비용"」에 모았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
- 「레이저, 요격미사일, 방공포: 서로 어떤 역할을 나눌까」: 레이저가 여러 방어 수단 가운데 맡는 자리
- 「지금 공개된 레이저 무기 사례」: 공식 발표로 알려진 레이저 무기 사업
- 「레이저 안전: 등급과 보안경 읽는 법」: 생활 속 레이저에서 눈을 지키는 기준
- 「레이저 무기는 레이저만으로 되지 않는다: 체계 구성 한눈에」: 레이저 무기 체계를 이루는 부분들
- 「레이저 무기는 왜 "쏘는 즉시" 끝나지 않나」: 빛은 곧바로 닿는데 효과에는 시간이 걸리는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