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포탄이라고 하면 뾰족한 머리에 통통한 몸통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오늘날 전차가 장갑을 뚫으려고 쏘는 탄의 알맹이는 그 모습과 거리가 멉니다. 가늘고 긴 쇠막대 꼬리에 날개를 단 모양이라, 포탄보다 화살에 가깝습니다.
이 막대에는 폭약이 없습니다. 빠르게 날아온 힘만으로 장갑을 뚫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길쭉한 막대이고, 왜 꼬리에 날개를 달았을까요? 교과서의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와 압력에서 출발해, 굵은 쇠 탄이 막대로 바뀐 과정을 따라갑니다.
폭약 없이 뚫는 탄
장갑을 뚫는 탄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한쪽은 성형작약처럼 탄두 안의 폭약이 만든 금속 제트로 뚫습니다. 다른 쪽은 폭약 없이, 날아온 탄 자체가 밀고 들어갑니다. 뒤의 것을 운동에너지 관통자(kinetic energy penetrator, KE penetrator)라고 부릅니다.
운동에너지 관통자는 움직임의 에너지로 장갑을 밀고 들어가 끝내 뚫고 나가려 합니다. 운동에너지는 질량과 속력의 제곱을 곱한 값의 절반입니다. 속력이 제곱으로 들어가므로, 질량이 같으면 빠를수록 에너지가 훨씬 빨리 커집니다.
같은 힘을 좁은 곳에
에너지가 크다고 저절로 잘 뚫리지는 않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좁은 곳에 몰리느냐가 함께 중요합니다. 압력은 힘을, 그 힘이 수직으로 누르는 면적으로 나눈 값입니다.
교과서의 예가 손에 잡힙니다. 손가락으로 찌르면 성가실 뿐이지만, 같은 힘이 바늘 끝만 한 면적에 실리면 피부가 뚫립니다.
관통자도 이 원리 위에 있습니다. 밀도가 높은 관통자는 같은 속도에서 더 높은 충돌 압력을 내고, 그만큼 더 깊이 뚫습니다. 실제로는 바늘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아주 빠르게 부딪히는 관통자는 장갑을 밀고 나가는 동안 자기 몸도 닳아 갑니다.
굵은 쇠 탄에서 가는 막대로
전차가 질기고 강한 강철 장갑을 두르고 나오자, 장갑을 노리는 운동에너지 탄은 포신 지름을 꽉 채운 경화강 통짜 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것이 철갑탄(armor-piercing shot, AP shot)입니다. 철갑탄은 지금 기준으로 매우 느리게 맞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료에서 닳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판에 구멍을 찍어 내듯 구멍을 열며 나아갑니다.
더 잘 뚫으려면 포를 키워야 했고, 포는 점점 비싸고 다루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포 안에서 움직이는 질량을 줄이면 추진제의 에너지를 발사체에 더 많이 줄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을 쓴 것이 2차 대전 끝 무렵 90 mm 전차포용으로 나온 고속철갑탄(hypervelocity armor-piercing, HVAP)입니다. 가벼운 알루미늄 몸체가 텅스텐 카바이드 같은 밀도 높은 재료로 만든 작은 관통자를 감쌌습니다.
DSIAC 자료의 초록은 그 뒤의 흐름을 한 줄로 묶습니다. 지름이 줄고 밀도가 높아진 관통자와 더 빠른 충돌 속도가 충돌 압력을 높였고, 이것이 긴 막대 관통자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포구에서 벗어 던지는 신발
HVAP를 한 걸음 더 고친 것이 105 mm 포용 분리철갑탄(HVAP discarding sabot, HVAPDS)입니다. 이름에 든 사보(sabot)는 프랑스어로 "신발"이라는 뜻입니다. 이 분리 장치는 포구를 벗어나면 발사체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달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실제로는 벗은 신발이 조용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운동에너지 탄에서 튀어나간 분리 장치 조각은 포 앞의 넓은 구역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회전 대신 날개
총알처럼 회전하며 날아가는 탄은 그 회전으로 자세를 잡습니다. 철갑탄과 HVAP도 그랬습니다. 정확하게 쏘려면 포신 안에 나선 홈, 곧 강선이 있어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날개안정 분리철갑탄(armor-piercing fin-stabilized discarding sabot, APFSDS)은 다릅니다. 화살처럼 꼬리 날개로 자세를 잡으므로, 강선이 없는 매끈한 포신인 활강포로 쏠 수 있습니다. 미국 주력전차(main battle tank, MBT) M1의 포가 그런 예입니다. DSIAC 자료는 긴 막대 관통자탄 M829가 M1 전차의 120 mm 활강포에 맞춰 만들어졌다고 적었습니다.
날개가 방향을 잡는 원리는 NASA가 모형 로켓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날아가는 물체는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을 축으로 돕니다. 몸이 비행 방향에서 조금 기울면 공기의 힘이 생깁니다. 그 힘이 걸리는 압력 중심(center of pressure)이 무게중심보다 뒤에 있으면, 공기가 꼬리를 되밀어 코가 다시 비행 방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림은 원리만 옮긴 개념도입니다. 실제 탄의 날개 모양이나 크기는 담지 않았습니다.
왜 길쭉할까
APFSDS는 관통자의 지름을 더 줄이고 길이를 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실어 보내는 질량은 HVAPDS와 비슷하게 맞췄습니다. 질량은 그대로인데 단면이 가늘어지니, 같은 무게가 더 좁은 면적에 몰립니다.
가는 몸체에는 이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앞에서 본 면적이 작아 항력(drag)으로 잃는 속도가 적습니다. 그만큼 더 빠르게 표적에 닿습니다.
충돌 속도가 높으면 막대는 장갑을 밀고 나가는 동안 앞쪽부터 닳아 없어집니다. 이것을 침식(erosion)이라고 합니다. 막대가 닳으면서 뚫는 방식이라, DSIAC 자료는 막대가 길수록 뚫을 수 있는 장갑이 두껍다고 정리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늘릴 수는 없었습니다. 막대가 길어지자 막대를 감싸는 분리 장치도 무거워졌습니다. 분리 장치는 관통자 쪽에서 보면 쓸모없는 무게입니다. 분리 장치의 설계와 재료, 포 안의 탄도학이 함께 나아지면서 더 긴 막대를 더 빠른 포구 속도로 쏘게 되었습니다.
같은 생각은 다른 무기에도 나옵니다. 미 국립연구회의(NRC) 보고서에 따르면, 땅속 표적을 노리는 관통 무기도 관통 깊이를 늘리려고 단면 밀도(질량을 단면적으로 나눈 값)를 되도록 높게 만듭니다. 이 이야기는 벙커버스터 글에 있습니다.
재료와 남는 문제
운동에너지 관통자의 재료에서는 밀도, 강도, 인성이 중요합니다. 인성은 쉽게 깨지지 않고 버티는 성질입니다. 소결 텅스텐 합금과 열화우라늄(depleted uranium, DU) 합금은 긴 막대 탄의 다른 부분과 함께 개발된 밀도 높은 재료입니다.
DSIAC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실전에 쓴 대장갑 운동에너지 관통자는 거의 언제나 우라늄 합금입니다. 관통할 때 텅스텐보다 버섯 모양으로 덜 퍼진다는 점이 까닭으로 적혀 있습니다. 우라늄은 발전과 핵무기에 쓸 농축 우라늄을 만들고 남는 부산물이기도 합니다.
열화우라늄은 천연 우라늄 광석에서 방사능이 센 우라늄-235를 대부분 걷어 내고 남은 물질입니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1970년대에 미 국방부가 열화우라늄으로 탄약과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알려진 금속 가운데 가장 단단하고 밀도 높은 것의 하나라는 점이 그 까닭이었습니다.
건강 문제가 따라옵니다. EPA는 열화우라늄이 몸 안에 들어가면 독성 화학물질이자 방사선 건강 위험이 된다고 밝힙니다. 쓰고 난 탄과 탄 조각에서 나온 오염은 일부 군 사격장의 위험 요소입니다. 훈련에 쓰는 연습탄에는 우라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남는 문제는 재료만이 아닙니다. 운동에너지 탄은 멀리 날아갈수록 속도가 줄어 효과도 떨어집니다. 길쭉한 막대는 이 손실을 줄이는 쪽으로 다듬어 온 모양이지만, 속도를 잃는다는 사실 자체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레이저와 맞닿는 점: 좁은 곳에 모으기
관통자 이야기의 뼈대는 같은 에너지를 얼마나 좁은 곳에 모으느냐입니다. 레이저도 같은 물음을 다룹니다. 레이저에서는 빛이 단위 면적에 나르는 출력을 세기(intensity)라고 부르고, 같은 출력을 좁은 면적에 모을수록 세기가 커집니다.
물론 두 방식은 다릅니다. 관통자는 질량을 지닌 물체가 부딪히는 것이고, 레이저는 빛이 표면을 데우는 것입니다. 출력과 에너지와 세기를 가르는 법은 출력, 에너지, 세기 글에서 이어집니다.
다음에 읽을 글
- 주력전차: 성능은 포 크기로만 결정될까: 이 탄을 쏘는 전차의 화력·방호·기동
- 복합장갑과 반응장갑: 전차 표면의 블록은 무엇일까: 관통자를 맞는 쪽의 이야기
- 성형작약의 원리: 먼로 효과는 무엇일까: 폭약으로 금속 제트를 만들어 뚫는 다른 갈래
- 전자기 레일건: 전기로 물체를 가속한다면: 화약 대신 전기로 발사체를 밀어내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