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결정에 펌프 빛을 세게 넣을수록 결정은 뜨거워집니다. 뜨거워진 결정은 지나가는 빛을 조금씩 휘게 하고, 빔은 흐려집니다. 출력을 올리려고 할수록 빔이 나빠지는 셈입니다.

1991년 가을, 미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연구자가 이 문제를 다르게 풀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결정을 아주 얇은 원판으로 만들고, 그 한 면을 통째로 방열판에 붙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레이저를 박형 디스크 레이저(thin-disk laser)라고 부릅니다. 이 글은 원판 모양이 열을 어떻게 다르게 빼는지, 얇아서 생기는 약점을 어떻게 메웠는지, 그리고 이 구조가 공장과 연구실, 국방 시험장까지 간 길을 따라갑니다.

막대 레이저가 더워지면 생기는 일

고체 레이저는 빛을 키우는 이득 매질(gain medium)이 결정이나 유리 같은 고체입니다. 기존 고출력 고체 레이저의 이득 매질은 막대(rod)나 판(slab) 모양입니다. 여기에 빛을 넣어 원자를 들뜨게 하는 일을 펌핑(pumping)이라고 합니다.

출력을 올리면 곧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초기 레이저에서는 평균 출력(average power)을 올리면 출력 빔이 일그러지고 공간 결맞음이 크게 줄었습니다. 열이 빛의 길을 흐트러뜨린 것입니다.

열이 빔을 망치는 대표적인 방식이 열 렌즈(thermal lensing)입니다. 빔의 단면을 가로질러 더운 곳과 덜 더운 곳이 생기면, 결정은 약한 렌즈처럼 빛을 모으거나 퍼뜨립니다. 그만큼 빔 품질(beam quality)이 떨어집니다.

두 칸 개념도. 왼쪽 칸은 막대 모양 결정을 옆에서 본 그림으로, 빔이 막대 길이 방향으로 지나가고 열을 뜻하는 파란 화살표는 위아래, 곧 빔과 직각 방향으로 나간다. 빔 단면을 가로질러 더운 곳과 덜 더운 곳이 생겨 결정이 약한 렌즈(열 렌즈)처럼 작용하고 빔이 일그러진다고 적혀 있다. 오른쪽 칸은 얇은 원판을 옆에서 본 그림으로, 앞면에는 무반사 코팅, 뒷면에는 고반사 코팅이 있고 뒷면이 수랭 방열판에 붙어 있다. 빔은 앞에서 들어와 뒷면에서 반사되어 돌아가고, 열은 방열판 쪽, 곧 빔과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빔을 가로지르는 온도 차이가 작아 열 렌즈가 약하다고 적혀 있다. 치수는 실제와 다르다
막대와 박형 디스크에서 열이 빠지는 방향. 치수는 실제와 다르고, 실제 원판은 지름보다 훨씬 얇습니다 (도표)(도표)

레이저를 만드는 쪽은 매질의 모양을 바꾸는 길을 택했습니다. 부피에 견준 겉넓이를 키우면 열을 더 잘 뺄 수 있고, 그렇게 나온 구조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이 슬랩, 박형 디스크, 광섬유 레이저(fiber laser)였습니다. 그런데 평균 출력이 수백 W인 시스템에서는 열을 빼는 것만으로 모자랍니다. 빔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면서 열을 빼야 합니다.

얇은 원판을 방열판에 붙이다

박형 디스크 레이저는 1994년 Giesen 외의 논문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기존 고출력 막대·슬랩 레이저의 열 문제를 푸는 구조입니다. 생김새는 단순합니다. 이득 매질을 아주 얇은 원판으로 만들고, 반사 면을 수랭 방열판에 바로 붙입니다.

원판의 두 면은 하는 일이 다릅니다. 한 면에는 빛을 되돌리는 고반사 코팅을, 다른 면에는 펌프 빛과 레이저 빛을 모두 그대로 들이는 무반사 코팅(anti-reflection coating, AR coating)을 입힙니다. 고반사 면이 방열판 쪽에 붙으므로, 빛은 원판에 들어갔다가 뒷면에서 반사되어 나옵니다. 원판을 거울처럼 반사로 쓰는 셈입니다.

얼마나 얇을까요? Keller의 초고속 레이저 교과서는 원판 두께를 약 100 µm 범위로, 펌프 빔과 레이저 빔의 지름을 약 1 cm 범위로 듭니다. 발명자 Adolf Giesen은 인터뷰에서 두께를 몇백 마이크로미터라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원판은 빔 지름보다 훨씬 얇습니다.

이 모양에서는 원판이 아주 잘 식고, 열은 주로 방열판 쪽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 방향이 레이저 빔이 오가는 방향과 같습니다. 빔 단면을 가로지르는 온도 기울기가 약하니, 열 렌즈도 막대나 슬랩보다 크게 줄어듭니다.

1994년 논문의 초록에도 같은 그림이 있습니다. 한 면을 방열판에 붙인 아주 얇은 결정 원판에서는 결정 안의 온도가 크게 오르지 않고도 아주 높은 펌프 출력 밀도를 쓸 수 있습니다. 펌프 빔의 세기를 단면에서 고르게 맞추면 열은 원판 면에 수직으로, 거의 고르게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Giesen은 인터뷰에서 디스크 레이저의 실제 동작 중 열 변형이 전통적인 레이저의 약 100분의 1이라고 말합니다. 발명자의 말이므로 어떤 조건의 비교인지는 함께 따져 볼 일입니다.

너무 얇아서 생기는 문제: 펌프 빛을 여러 번

얇다는 장점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펌프 빛이 원판을 한 번 지날 때는 흡수가 약합니다.

두 칸 개념도. 왼쪽 칸은 펌프 빛이 원판을 한 번 지나는 경우로, 굵은 보라색 펌프 빛이 원판에 들어갔다가 거의 그대로 굵게 되돌아 나가며, 이렇게 얇은 원판은 한 번 지날 때 조금밖에 흡수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 오른쪽 칸은 여러 번 지나는 경우로, 빛을 원판으로 되돌려 보내는 광학계를 상자 하나로만 그렸고, 보라색 빛이 상자와 원판 사이를 여러 번 오가며 갈수록 가늘어진다. 뒷면 코팅이 흡수되지 않은 빛을 되돌리고, 여러 번 오간 뒤에는 펌프 빛 대부분이 결정에 흡수된다고 적혀 있다. 실제 광학 배치, 각도, 통과 횟수를 보여 주는 그림이 아니다
얇아서 흡수가 약한 원판에 펌프 빛을 여러 번 되돌려 보내는 생각. 실제 배치가 아닌 개념도입니다 (도표)(도표)

해법은 같은 빛을 여러 번 원판에 보내는 것입니다. 원판 뒷면의 고반사 코팅이 흡수되지 않은 빛을 되돌리고, 바깥의 광학계가 그 빛을 다시 원판으로 보냅니다. 보통 16~32번 지나게 하면 결정에서 펌프 빛의 90% 넘게 흡수됩니다.

물웅덩이에 걸레를 한 번 담갔다 빼는 것과 여러 번 적시는 것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실제로는 거울이 펌프 빛을 매번 결정으로 다시 모아 줘야 하고, 돌아올 때마다 남은 빛이 줄어들며, 그 길을 만드는 광학계가 꽤 복잡합니다. 단순하게 들리는 생각이지만 기술은 까다롭습니다.

여러 번 지나게 하는 데는 덤이 있습니다. Giesen에 따르면 펌프 빛을 이렇게 되풀이해 흡수시키면 펌프 광원이 특별히 밝지 않아도 디스크 레이저가 좋은 빔 품질을 낼 수 있습니다. 1994년 첫 논문의 레이저도 펌프 다이오드(pump diode)의 빛으로 펌핑했습니다.

1994년 논문이 이 구조를 처음 증명할 때 쓴 결정은 Yb:YAG였습니다. 이 구조는 높은 펌프 출력 밀도가 필요한 준3준위(quasi-three-level) 계에 특히 알맞습니다.

비행기 안의 착상에서 공장 레이저까지

착상의 배경은 학회였습니다. Giesen은 고체 레이저 학회에서 돌아오는 길이었고, 한 세션이 Yb:YAG를 다뤘다고 회고합니다. 발표자는 이 물질을 충분히 식힐 방법만 찾으면 고출력 레이저 광원을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당시에는 넘기 어려운 문제로 보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떠오른 답은 원판이었습니다. 충분히 얇은 원판이라면 면 전체로 식히기가 특히 쉽습니다. 그 뒤 석 달 동안 그와 팀은 그 생각을 개념으로 다듬었습니다.

Optica 학회의 전기에 따르면 Giesen은 1982년 독일 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슈투트가르트의 독일 항공우주센터에서 RF 여기 CO2 레이저를 연구하다 슈투트가르트 대학교로 옮겼고, 1991년 박형 디스크 레이저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2007~2016년에는 독일 항공우주센터(DLR) 기술물리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2017년 Charles Hard Townes Medal을 받았습니다.

1994년 논문은 다이오드로 펌핑한 Yb:YAG 원판 레이저를 4.4 W 출력, 최대 기울기 효율 68%로 동작시켜 설계를 증명했습니다. 출력은 작았지만 논문은 멀리 내다봤습니다. 펌프 빔 지름을 키우거나 원판을 여러 장 쓰면 킬로와트 범위의 작은 다이오드 펌핑 고체 레이저가 가능해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가로 연표. 1991년 비행기 안에서 원판 착상, 1994년 첫 논문(Yb:YAG 원판, 4.4 W), 1997년 박람회에서 첫 디스크 레이저 전시, 1999년 산업용 실험실 장비 전시, 2000년 첫 모드 잠금 박형 디스크 레이저, 2003년 4 kW 디스크 레이저 시제품, 2006년 펄스가 쪼개지는 원인으로 공기의 비선형성을 찾음, 2008년 여러 원판을 묶은 시험에서 25 kW 넘음(회사 발표). 점의 색은 발명, 산업, 짧은 펄스 연구, 국방 시연을 나눈다
박형 디스크 레이저가 걸어온 길. 이 글에 나온 사건만 골라 담았습니다 (도표)(도표)

산업 쪽 걸음은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습니다. Giesen은 Jenoptik이 1997년 뮌헨 레이저 박람회에서 첫 디스크 레이저를 선보였다고 회고합니다. TRUMPF의 회사 연혁은 1999년 LASER 박람회에서 첫 실험실 장비를 선보였고, 2003년 4 kW 디스크 레이저 시제품을 내놓았다고 적습니다.

TRUMPF는 이 시제품의 높은 빔 품질이 스캐너 용접 같은 새 응용을 열었다고 소개합니다. Giesen은 TRUMPF 인터뷰에서 6,000 W 디스크 레이저가 산업용으로는 거의 표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비율도 볼 만합니다. 영국 용접 연구소 TWI는 산업용 레이저의 대표적인 벽 플러그 효율(wall-plug efficiency)로 Yb:YAG 박형 디스크 레이저 25~30%를 들고, 이터븀 광섬유 레이저도 25~30%, 램프로 펌핑하는 Nd:YAG 레이저는 3~5%로 적습니다. 공장에서 디스크 레이저와 광섬유 레이저가 함께 쓰이는 모습은 「산업용 레이저는 어디에 쓰이나: 절단, 용접, 마킹, 세정」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짧은 펄스와 디스크

박형 디스크는 연속으로 켜 두는 연속파(continuous wave, CW) 레이저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펄스를 만드는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2000년, 반도체 포화 흡수 거울(SESAM)로 모드 잠금(mode locking)한 첫 박형 디스크 레이저가 시연되었습니다.

이 레이저는 Ti:사파이어 레이저와 달리 다이오드로 바로 펌핑하고,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효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 뒤 박형 디스크 발진기(oscillator)로 초고속 레이저의 펄스 에너지(pulse energy)는 대개 약 1 nJ에서 80 µJ까지, 거의 다섯 자릿수 올랐습니다. 평균 출력은 대개 100 mW이던 것이 400 W를 넘었습니다.

여기서도 열이 열쇠였습니다. Yb를 넣은 레이저 물질은 박형 디스크 모양에서 열을 더 잘 빼도록 도핑 농도를 높일 수 있고, 그 덕에 Ti:사파이어 발진기보다 평균 출력이 적어도 세 자릿수 높아졌습니다.

대가도 있습니다. 고평균 출력에 맞는 Yb 이득 물질은 지금까지 Ti:사파이어보다 이득 대역폭이 훨씬 좁았습니다. 그래서 2020년 기준으로 100 fs보다 짧은 펄스로 1 µJ를 크게 넘는 펄스 에너지는 내지 못했습니다.

펄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Q-스위칭과 모드 잠금: 짧은 펄스를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 발진기와 증폭기의 차이는 「오실레이터와 증폭기: 빛을 만들고 키우기」가 다룹니다.

디스크에도 한계가 있다

원판이 열 문제를 크게 덜었지만, 모든 것을 푼 것은 아닙니다. 첫째는 원판을 방열판에 붙이는 일입니다. Giesen은 원판을 방열판에 접합하는 방식이 그때도 지금도 결정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원판 주변의 공기입니다. 모드 잠금 박형 디스크 발진기의 펄스 에너지는 처음에 2 µJ 아래에 묶인 듯했고, 그 위에서는 펄스가 불안정해지거나 여러 개로 쪼개졌습니다. 2006년 그 원인이 공진기 안 공기의 커(Kerr) 비선형성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높은 출력은 진공에 가까운 환경에서 얻었고, 그만큼 실험이 복잡해졌습니다.

공기는 열 렌즈도 만듭니다. 고출력으로 동작할 때 원판의 펌핑된 부분은 약 100 °C까지 데워질 수 있고, 그 열이 원판 가까운 공기를 데웁니다. 데워진 공기는 기체 렌즈처럼 작용해 원판 전체 열 렌즈의 꽤 큰 몫을 차지하지만, 진공에서 동작하면 사라집니다. 원판이 열 렌즈를 크게 줄였어도 그 남은 몫까지 따지는 단계에 이른 셈입니다.

셋째는 증폭된 자발 방출(amplified spontaneous emission, ASE)입니다. 이름 그대로 저절로 나온 빛이 매질 안에서 증폭된 것입니다. DLR 기관 저장소에 실린 2008년 학회 발표 초록은 여러 수치 모델로 보면 그때까지 시연된 CW 출력이 ASE가 정하는 한계보다 한참 아래라고 적습니다.

펄스 쪽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박형 디스크 증폭기로 만든 펄스 레이저는 비슷하게 높은 평균 출력을 냈지만 펄스 에너지는 약 100 mJ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흔한 고출력 CW 디스크 설계로는 ASE가 펄스 에너지를 몇 J 수준으로 묶는다는 것이 수치 모델의 결론이었습니다.

레이저 무기와 맞닿는 점

박형 디스크는 국방 쪽 시험에도 나왔습니다. Boeing은 2008년 6월 3일 보도 자료에서 새 박형 디스크 레이저 체계를 최근 시험에서 되풀이해 쏘았고, 캘리포니아 웨스트힐스 시설에서 쏠 때마다 몇 초 동안 25 kW 넘는 출력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이 체계는 박형 디스크 레이저 여러 대를 한 체계로 묶은 것이었습니다.

회사는 같은 구조와 기술로 100 kW급 체계로 키울 수 있다는 개념을 증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자동차 산업에서 쓰는 상용 레이저를 썼다고 적었습니다. 공장에서 자란 기술이 고에너지 레이저(high-energy laser, HEL) 시험으로 옮겨 간 예입니다.

이 발표는 회사의 말이고, 그 뒤의 흐름이나 오늘의 레이저 무기에 어떤 레이저가 쓰이는지와는 따로 봐야 합니다. 레이저 무기가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 옮겨 온 큰 흐름은 「레이저 무기의 역사: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박형 디스크가 보여 준 생각은 다른 구조에도 이어집니다. 매질의 모양을 바꿔 열을 빼기 좋게 만든다는 점에서 광섬유 레이저와 같은 갈래이고, 더 넓게 보면 열 관리(thermal management)라는 문제의 한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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