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를 오래 켜 두면 유리가 뜨거워지듯, 레이저(laser) 결정도 빛을 만들면서 더워집니다. 고체 레이저의 출력을 올릴 때 늘 부딪히는 벽이 이 열입니다. 열을 얼마나 고르게, 얼마나 빨리 빼느냐가 빔의 모양과 낼 수 있는 출력을 함께 정합니다.

슬랩(slab) 레이저는 이 문제에 대한 오래된 답 가운데 하나입니다. 둥근 막대 대신 납작한 판 모양 결정을 쓰고, 빔이 판 안에서 지그재그로 오가게 합니다. 판 모양이 왜 열에 유리한지, 지그재그 길이 무엇을 바로잡는지, 이 구조가 관측 장비와 짧은 펄스 연구, 레이저 무기 연구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막대 결정이 더워지면

고체 레이저의 이득 매질(gain medium)로 오래 쓰인 모양은 둥근 막대(rod)입니다. 막대를 옆면에서 식히면 겉은 차갑고 가운데는 뜨거워집니다.

온도가 다르면 빛이 지나는 빠르기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가운데가 뜨거운 결정은 약한 렌즈처럼 빛을 모으거나 퍼뜨리는데, 이것을 열 렌즈(thermal lensing)라고 부릅니다. 온도 차는 결정 안에 응력도 남깁니다. 응력을 받은 결정에서는 편광(polarization) 방향에 따라 빛이 느끼는 굴절이 달라지는데, 이것이 응력 복굴절입니다.

이 문제는 출력을 올릴수록 커졌습니다. 2020년에 나온 한 리뷰 논문은 초기 레이저에서 평균 출력(average power)을 올리면 출력 빔이 일그러지고 공간 결맞음이 크게 줄었다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매질의 모양을 바꿔 부피에 견준 겉넓이를 키우는 길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나온 모양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이 슬랩, 박형 디스크, 광섬유입니다.

두 칸 개념도. 왼쪽 칸은 둥근 막대 결정을 끝에서 본 그림으로, 빔은 종이 안쪽으로 지나가고 원의 가운데가 빨갛게 뜨겁고 바깥이 노랗게 덜 뜨겁다. 파란 화살표가 사방의 옆면으로 열이 빠져나감을 보이고, 가운데가 뜨겁고 겉이 차가워 결정이 약한 렌즈처럼 작용해 빔이 일그러진다고 적혀 있다. 오른쪽 칸은 납작한 판(슬랩)을 끝에서 본 그림으로, 판의 위아래 넓은 두 면에 냉각 면이 붙어 있고 파란 화살표가 위아래로만 열이 빠짐을 보인다. 같은 부피에 겉넓이가 넓고 온도는 주로 위아래 방향으로만 달라진다고 적혀 있다. 실제 치수나 냉각 배치가 아닌 개념도다
막대와 슬랩을 끝에서 보면 열이 빠지는 길이 다릅니다. 치수와 냉각 배치는 실제가 아닙니다 (도표)(도표)

막대를 판으로 바꾸다

같은 부피라면 납작한 판이 둥근 막대보다 겉넓이가 넓습니다. 판의 넓은 두 면을 식히면 열이 빠져나갈 문이 넓어지고, 온도는 주로 판의 두께 방향, 곧 위아래로만 달라집니다. 옆으로 퍼진 막대의 온도 차가 한 방향으로 정리되는 셈입니다.

두툼한 군고구마는 속까지 식는 데 오래 걸리지만 얇게 썬 조각은 금방 식습니다. 판 모양이 열에 유리한 것도 같은 까닭입니다. 실제 레이저에서는 빨리 식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빔이 지나는 자리마다 온도가 다르다는 문제가 남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레이저 물질의 모양은 열을 효율 좋게 빼려고 겉넓이 대 부피 비가 크도록 다듬어져 왔습니다. 그 덕에 광섬유·박형 디스크·슬랩에서 평균 출력 1 kW가 넘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수백 W급 장비에서 중요한 것은 빔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면서 열을 빼는 일입니다.

지그재그 길: 뜨거운 곳과 찬 곳을 고루 지나기

판으로 바꿔도 두께 방향의 가운데가 더 뜨거운 것은 그대로입니다. 빔이 판의 길이 방향으로 곧게 지나가면, 가운데 높이를 지나는 빛은 뜨거운 곳만 겪고 면 가까이를 지나는 빛은 덜 뜨거운 곳만 겪습니다. 빛줄기마다 늦어지는 정도가 달라 빔의 파면이 휘어집니다.

답은 빔을 비스듬히 넣는 것이었습니다. 빔이 판의 넓은 두 면에서 전반사(total internal reflection)로 번갈아 튕기며 나아가면, 어느 빛줄기든 찬 면 가까이와 뜨거운 가운데를 고루 지나게 됩니다. 빛줄기마다 겪는 온도가 평균되어 서로 비슷해집니다.

이 생각은 1969년 General Electric의 연구자들이 낸 특허에 담겼고, 특허는 1972년에 등록되었습니다(US 3,633,126). 특허 본문은 빛줄기가 찬 바깥 면에서 여러 번 반사하며 비교적 뜨거운 가운데를 지나 광학 환경을 평균하고, 그 결과 파면의 위상 왜곡과 응력 복굴절의 영향을 함께 줄인다고 설명합니다. 파면 왜곡이 줄어든 만큼 반복률이 높은 Q-스위칭(Q-switching) 동작에도 특히 알맞습니다.

1984년에는 IEEE Journal of Quantum Electronics에 슬랩 레이저의 열·응력·빔 전파 특성을 이론으로 자세히 다룬 논문이 실렸습니다. 초록은 슬랩 모양이 기존 막대 모양보다 성능을 크게 높인다고 쓰고, 지그재그 경로가 열과 응력으로 생기는 초점 효과를 없애며 남은 복굴절을 줄인다고 정리합니다. 초점 효과는 "없앤다", 복굴절은 "줄인다"로 말의 세기가 다르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합니다.

위아래 두 칸 개념도. 두 칸 모두 슬랩을 옆에서 본 그림이고, 판의 위아래 면 가까이는 파랗게 차갑고 가운데 높이는 빨갛게 뜨겁다. 위 칸 '곧은 길'에서는 빛줄기 세 개가 판의 길이 방향으로 곧게 지나가, 가운데 줄은 뜨거운 곳만, 위아래 줄은 덜 뜨거운 곳만 겪는다. 빛줄기마다 늦어지는 정도가 달라 파면이 휜다고 적혀 있다. 아래 칸 '지그재그 길'에서는 빛줄기 두 개가 판의 위아래 면에서 전반사로 번갈아 튕기며 지나가, 모든 빛줄기가 뜨거운 가운데와 찬 면을 고루 지나 온도 차가 평균된다고 적혀 있다. 각도, 반사 횟수, 크기는 실제가 아니다
곧은 길과 지그재그 길의 차이. 각도와 반사 횟수는 실제가 아닌 설명용입니다 (도표)(도표)

실험실에서 우주 관측, 큰 시설까지

슬랩은 무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NASA 랭글리 연구소와 레이저 업체 Fibertek은 대기 속 메탄을 재는 차등 흡수 라이다(lidar)용 1.6 µm 광원을 시험했습니다. 이때 광원을 펌핑(pumping)한 레이저가 Fibertek이 만든 단일 주파수 Nd:YAG 슬랩 발진기(oscillator)였습니다. 이 레이저는 NASA의 ALHAT·HSRL 송신기 계보를 잇습니다.

아주 큰 과학 시설에서도 판 모양 매질을 씁니다. 미국 로런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국립점화시설(NIF) 같은 고에너지 레이저는 거대한 섬광등의 흰빛으로 큰 판 모양 레이저 유리를 펌핑해 왔습니다. LLNL은 반복률이 높아야 하는 새 레이저 HAPLS를 만들면서, 섬광등보다 열을 덜 옮기고 더 빨리 빼는 펌프 기술을 찾아야 했다고 설명합니다.

짧은 펄스 쪽에도 슬랩이 있습니다. Innoslab이라는 이름의 Yb:YAG 슬랩 증폭기(amplifier)로 2009년 평균 400 W 펨토초 증폭기 논문이 나왔습니다. 2010년에는 독일 Fraunhofer 레이저기술연구소(ILT)와 RWTH 아헨 연구진이 증폭기 두 단을 이어 한 빔에서 평균 출력 1.1 kW, 첨두 출력 80 MW, 펄스 폭 615 fs를 얻었습니다. 이 장치는 상온에서 돌렸고 처프 펄스 증폭을 쓰지 않았습니다.

레이저 무기 연구와 슬랩

2006년 Northrop Grumman Space Technology 연구진은 Optics Letters에 여러 kW급 Nd:YAG 지그재그 슬랩 증폭기를 결맞게 묶은 결과를 실었습니다. 공통 주발진기가 여러 증폭기에 빛을 넣고, 적응 광학(adaptive optics)이 증폭된 작은 빔마다 파면을 바로잡습니다. 작은 빔들을 나란히 붙여 위상을 맞추자 한 빔으로 19 kW가 나왔습니다.

작은 발진기의 빛을 큰 증폭기로 키우는 이런 구조를 주발진기-출력 증폭기(master oscillator power amplifier, MOPA)라고 부릅니다. 여러 사슬의 빛을 한 빔으로 모으는 일은 빔 결합(beam combining)이라고 하고, 위상까지 맞추는 방식은 「결맞음 빔 결합의 원리」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미국은 육군·공군과 고에너지 레이저 합동기술실(HEL-JTO)이 함께하는 합동 고출력 고체 레이저(Joint High Power Solid State Laser, JHPSSL) 사업을 벌였습니다. 2009년 학회 초록에서 같은 회사 연구진은 이 사업의 핵심 목표를 빔 품질이 뛰어난 100 kW 고체 레이저 시연으로 적고, 모듈식 15 kW 레이저를 결맞게 묶는 구조를 소개했습니다. 같은 해 CLEO 학회 발표의 제목은 "100 kW 결맞게 묶은 슬랩 MOPA"였습니다. 15 kW 사슬 일곱 개의 위상을 맞춰 한 빔을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미 육군은 2009년 3월, Northrop Grumman이 개발한 장치가 실험실에서 육군 표현으로 "무기 수준(100 kW+)" 성능을 냈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사업에서 Textron이 두 번째 실험실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 육군 기사는 이 사업의 목표가 결맞음과 출력 시연이었고, 결과물이 무기 체계가 겪는 험한 조건에 맞지 않는 실험실 장치였다고 돌아봅니다. 그 과제는 뒤이은 RELI 사업이 맡았고, JHPSSL 장치는 손본 뒤 화이트샌즈 미사일 시험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무렵 레이저 무기의 큰 흐름은 「레이저 무기의 역사」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가로 연표. 1969년 지그재그 슬랩 특허 출원(1972년 등록), 1984년 슬랩 이론 논문(지그재그 길이 열·응력 초점 효과를 없앰), 2006년 지그재그 슬랩 증폭기를 결맞게 묶어 19 kW, 2009년 15 kW 사슬 일곱 개를 묶어 100 kW(JHPSSL 사업), 2009년 Innoslab 펨토초 증폭기 400 W, 2010년 Innoslab 펨토초 증폭기 1.1 kW. 점의 색은 착상과 이론, 국방 연구, 짧은 펄스 연구를 나눈다. 점 사이 간격은 시간 비례가 아니다
슬랩 레이저가 걸어온 길. 이 글에 나온 사건만 골라 담았습니다 (도표)(도표)

판, 원판, 광섬유

슬랩은 열 문제를 줄였지만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1994년에 나온 박형 디스크 레이저는 기존 고출력 막대·슬랩 레이저의 열 문제를 풉니다. 아주 얇은 원판에서는 열이 빔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 빔을 가로지르는 온도 차가 약하고 열 렌즈가 막대나 슬랩보다 크게 줄어듭니다.

광섬유도 다른 길을 냈습니다. 앞의 2020년 리뷰는 세 모양 가운데 회절 한계 빔 품질로 가장 높은 평균 출력 기록을 가진 것이 광섬유라고 적었습니다. 이터븀을 넣은 실리카 광섬유 하나에서 6 kW입니다. 유리는 열전도율이 슬랩이나 박형 디스크의 결정보다 대략 10배 낮은데도 이런 기록을 냈습니다.

출력을 더 키우려고 여러 빔을 묶을 때도 숙제가 남습니다. 2016년 Applied Optics에 실린 한 논문은 고출력 광섬유·슬랩 레이저의 선폭이 커서 위상과 세기가 나노초보다 짧은 시간에 무작위로 흔들린다고 봅니다. 이런 빛을 결맞게 묶으려면 약 10 GHz를 넘는 속도로 위상을 정밀하게 다루는 장비가 필요한데, 지은이들은 그런 기술이 아직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막대, 판, 원판, 광섬유는 모두 같은 물음에 대한 서로 다른 답입니다. 열을 어디로, 얼마나 고르게 빼느냐는 물음입니다. 슬랩은 그중 판의 넓은 면과 지그재그 길로 답한 모양이고, 그 답은 관측 장비의 발진기에서 kW급 펨토초 증폭기, 100 kW 시연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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