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펄스를 키우는 장치를 증폭기(amplifier)라고 합니다. 1980년대 중반, 짧은 펄스를 더 세게 만들려던 연구자들은 이상한 벽 앞에 섰습니다. 펄스를 키울수록 그 빛이 증폭기 자신을 망가뜨렸습니다.

1985년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의 도나 스트리클런드(Donna Strickland)와 제라르 무루(Gérard Mourou)는 순서를 바꿨습니다. 펄스를 곧장 키우지 않고, 먼저 시간으로 길게 늘인 뒤 키우고, 마지막에 다시 줄였습니다. 이 방법이 처프 펄스 증폭(chirped pulse amplification, CPA)이고,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에너지는 같은데 늘였다 줄이기만 해서 증폭기가 무사할 수 있을까요? 열쇠는 펄스의 꼭대기 높이, 곧 첨두 출력(peak power)에 있습니다.

1985년 앞의 벽: 키우면 깨지는 펄스

펄스 에너지(pulse energy)는 펄스 하나에 담긴 에너지의 합이고, 첨두 출력은 그 펄스에서 가장 높은 순간의 출력입니다. 같은 에너지라도 짧은 시간에 몰아 내면 꼭대기가 높아집니다. 반대로 펄스를 시간으로 늘이면 꼭대기가 낮아지고, 짧게 압축하면 빛이 좁은 공간에 모여 세기(intensity)가 크게 오릅니다.

1960년 첫 레이저가 나온 뒤 펄스는 점점 짧아졌습니다. 모드 잠금(mode locking) 레이저의 발전이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런데 펄스 하나에 든 광자 수는 1970년에서 1985년 사이에 조금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모드 잠금 발진기(oscillator)의 나노줄(nJ) 펄스를 밀리줄(mJ)까지, 여섯 자릿수 키우는 데까지는 갔습니다. 더 키우려 하면 증폭 물질과 광학 부품이 손상되었습니다.

피해 가는 길은 빔 지름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빔을 넓히면 같은 에너지가 넓은 면에 퍼져 증폭 매질이 받는 세기가 낮아집니다. 대신 레이저 설비가 거대하고 비싸져 국가 연구소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큰 레이저는 증폭기가 식을 시간을 주려고 하루에 몇 번만 쏘는, 아주 낮은 반복률(repetition rate)로 돌았습니다.

노벨 물리학위원회의 일반인용 해설은 1980년대 중반을 "길의 끝"에 다다른 때로 그립니다. 짧은 펄스에서는 증폭 물질을 망가뜨리지 않고 빛의 세기를 더 올리는 것이 실제로 어려워졌습니다.

늘이고, 키우고, 다시 줄인다

CPA는 세 단계로 갑니다. 먼저 초단 펄스를 시간으로 몇 자릿수 늘입니다. 펄스가 길어진 만큼 첨두 출력이 낮아집니다. 그다음 레이저 물질 안에서 망가뜨리지 않고 증폭하고, 마지막으로 원래 길이까지 다시 압축해 아주 높은 첨두 출력을 얻습니다.

처프 펄스 증폭의 세 단계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린 개념도. 발진기, 늘이개, 증폭기, 압축기 네 상자가 화살표로 이어진다. 발진기 뒤에는 짧고 에너지가 낮은 펄스, 늘이개 뒤에는 길고 낮은 펄스가 빨강에서 파랑으로 물들어 있고 처프되어 빨강이 먼저 온다고 적혀 있다. 증폭기 뒤에는 에너지가 늘었지만 꼭대기는 여전히 낮은 긴 펄스, 압축기 뒤에는 다시 짧아져 첨두 출력이 아주 높은 펄스가 있다. 높이와 폭은 비례가 아니고 값은 없다
처프 펄스 증폭의 세 단계. 펄스를 늘여 첨두 출력을 낮춘 채로 증폭하고, 압축기에서 색을 다시 모아 짧고 센 펄스를 얻습니다. 값이 없는 개념도입니다 (도표)(도표)

좁은 다리 앞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있다고 해 봅시다. 모두가 동시에 건너면 다리가 버티지 못합니다. 한 줄로 길게 세워 차례로 건너게 한 뒤 건너편에서 다시 모으면, 다리에 걸리는 무게는 줄고 건너편에는 모두가 모입니다.

실제 CPA는 이 비유와 두 가지가 다릅니다. 빛은 사람처럼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펄스 안의 여러 주파수(frequency) 성분이 서로 다른 때에 지나가도록 흩어지는 것입니다. 주파수는 한국 교과서의 진동수와 같은 말입니다.

또 증폭기라는 다리를 건너는 동안 에너지가 늘어납니다. 다리 위에서 사람이 불어나는 셈입니다.

Keller의 교과서는 CPA로 첨두 출력을 여러 자릿수 키울 수 있게 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이 생각의 뿌리는 레이더 기술이었지만, 긴 전파에서 쓰던 생각을 훨씬 짧은 광파로 옮기는 일은 이론에서도 실제에서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프란 무엇인가

처프(chirp)는 펄스의 순간 주파수가 시간에 따라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주파수가 오르면 업 처프(up-chirp)라고 부릅니다. 앞쪽은 빨갛고 느리게, 뒤쪽은 파랗고 빠르게 출렁이는 펄스입니다.

짧은 펄스 하나에는 여러 주파수 성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성분들이 한꺼번에 겹쳐 있어 처프가 없는 펄스를 변환 한계 펄스(transform-limited pulse)라고 합니다. 주어진 스펙트럼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짧은 펄스이고, 여기에 처프가 더해지면 펄스는 길어집니다.

그렇다면 처프는 어떻게 생길까요? 600 nm에서 1.1 µm 사이의 빛에서 유리, 사파이어, 석영 같은 투명한 물질은 양의 분산을 보입니다. 이 물질 속에서는 빨강이 파랑보다 빨리 가므로, 처프 없던 펄스가 지나가면 빨강이 앞서고 파랑이 뒤처지는 업 처프가 됩니다.

이렇게 넓어지는 과정은 선형입니다. 시간으로 밀린 주파수 성분을 알맞은 만큼 되돌려 주면 넓어진 펄스를 다시 줄일 수 있습니다. CPA에서 늘이기는 처프를 일부러 크게 주는 일이고, 압축은 그 처프를 걷어 내는 일입니다.

늘이개와 압축기는 한 쌍이다

처프를 걷어 내는 대표적인 도구가 회절격자(diffraction grating) 두 장입니다. 가장 단순한 격자 쌍 배치에서는 긴 파장이 짧은 파장보다 더 먼 길을 갑니다. 그래서 음의 분산이 생기고, 파랑이 빨강보다 빨리 갑니다.

위 칸은 업 처프된 펄스의 파형이다. 시간 축의 앞쪽은 빨갛고 느리게 출렁이며, 뒤로 갈수록 파랗고 빠르게 출렁인다. 시간이 갈수록 주파수가 오른다고 적혀 있다. 아래 칸은 나란한 회절격자 두 장이다. 처프된 펄스가 첫 격자에 닿아 빨강과 파랑으로 갈라지고, 빨강은 더 긴 길을, 파랑은 더 짧은 길을 지나 둘째 격자에 닿는다. 파랑이 빨강을 따라잡아 펄스가 짧아진다고 적혀 있다. 배치도가 아니며 각도와 거리는 없다
업 처프된 펄스와 격자 압축기의 개념. 격자 쌍에서는 빨강이 더 먼 길을 가므로 뒤처져 있던 파랑이 따라잡고, 펄스가 짧아집니다 (도표)(도표)

업 처프된 펄스를 이 격자 쌍에 보내면 앞서 있던 빨강이 먼 길을 돌아 늦어지고, 뒤처졌던 파랑이 따라잡습니다. 이 배치는 보통 압축기로 쓰고, 분산의 크기는 두 격자 사이의 거리로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격자가 빛을 색마다 다른 방향으로 꺾는 원리는 「회절격자: 여러 색을 한 빔으로 모으는 소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늘이개는 그 반대 일을 합니다. CPA에서는 증폭 전에 펄스를 넓혀 손상을 막아야 하므로, 크고 조절할 수 있는 양의 분산이 필요합니다. 늘이개가 준 처프를 압축기가 정확히 걷어 내야 펄스가 처음 길이로 돌아옵니다.

이 짝 맞추기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장치의 여러 단계를 서로 맞추는 일, 특히 늘이개를 압축기에 맞추는 일이 큰 과제였고, 두 연구자는 이것까지 풀어야 했습니다.

1.4 km 광섬유로 한 첫 실험

첫 실험의 늘이개는 격자가 아니라 광섬유였습니다. 모드 잠금 Nd:YAG 레이저에서 나온 짧고 에너지가 낮은 나노줄 펄스를 단일 모드 광섬유에 넣어 약 300 ps로 늘였습니다. 광섬유 속에서 펄스는 군속도 분산과 자기 위상 변조(self-phase modulation)로 선형 처프되었습니다. 이 광섬유의 분산은 양이어서, 빨강 쪽이 파랑 쪽보다 빨리 나아갔습니다.

광섬유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원래는 새로 들인 2.5 km 광섬유 케이블로 펄스를 늘이려 했지만 빛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케이블이 중간 어딘가에서 끊겨 있었고, 애를 쓴 끝에 1.4 km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늘인 펄스는 Nd:유리 재생 증폭기에서 키웠고, 격자 두 장으로 된 압축기로 2 ps까지 줄였습니다. 약 300 ps에서 2 ps로, 길이를 약 150분의 1로 줄인 셈입니다. 증폭된 펄스의 에너지는 1 mJ이었습니다.

모든 부품을 제대로 엮기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결과를 담은 논문은 1985년 12월 학술지 Optics Communications 56권에 실렸고, 스트리클런드의 첫 과학 논문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로체스터 대학교로 온 대학원생이었던 그의 지도교수가 무루였고, 이 논문은 스트리클런드 박사 학위 논문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탁자 위의 테라와트에서 페타와트까지

CPA의 개념과 그 뒤의 진전은 1986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레이저·전기광학 학회(CLEO)와 콜로라도 스노매스의 학회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첫 논문 직후 첨두 출력이 1 TW를 넘는 CPA 레이저가 만들어졌습니다.

첫 개선도 곧 나왔습니다. 펄스를 늘이던 광섬유를 회절격자 한 쌍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뒤 나노줄 펄스를 줄(J) 수준까지, 펄스당 에너지를 아홉 자릿수 키운 증폭이 시연되었습니다.

이 무렵 탁자 위 테라와트 레이저(tabletop terawatt)를 뜻하는 T3라는 약어가 생겼습니다. 첫 Nd:유리 시스템의 전형적인 값은 펄스당 1 J, 펄스 폭 약 1 ps였습니다. 이득 매질을 Ti:사파이어로 바꾸자 100 fs보다 짧은 펄스가 나왔습니다.

처프 펄스 증폭의 연표. 1960년 첫 레이저. 1970~1985년 펄스는 짧아지지만 펄스당 에너지는 거의 늘지 않고 증폭기가 망가짐. 1985년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스트리클런드와 무루가 CPA를 실험으로 보임. 1986년 학회 발표, 곧 1 TW를 넘는 CPA 레이저(탁자 위 테라와트). 1999년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첫 페타와트 레이저. 2018년 노벨 물리학상. 2018년 기준 계획으로 ELI 빔라인스의 10 PW 시스템. 해 사이 간격은 비례가 아니다
멈춰 있던 펄스 에너지가 1985년 CPA 뒤로 테라와트, 페타와트까지 올라간 흐름입니다 (도표)(도표)

다음 목표는 페타와트였습니다. 구상에서 실현까지 10년이 걸렸고, 1999년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에서 첫 페타와트 레이저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 뒤의 리뷰는 운영 중이거나 짓고 있거나 계획 중인 페타와트급 레이저를 50개 넘게 꼽았습니다.

2018년 노벨 문서에 따르면 체코 프라하의 ELI 빔라인스(ELI Beamlines)는 10 PW 레이저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었고, 집속 세기가 10²³ W/cm²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다만 이런 세기 값은 빔을 얼마나 날카롭게 모으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대략의 값으로 읽어야 합니다.

같은 ELI 빔라인스에 LLNL이 설계·제작해 2017년 6월 넘긴 L3-HAPLS도 CPA를 바탕에 둔 페타와트 레이저입니다. 앞단에는 이중 CPA 방식의 고대비 짧은 펄스 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설계 목표는 1 PW에 1초 10번(10 Hz)이고, LLNL이 밝힌 첫 운전점은 16 J, 펄스 폭 27 fs, 3.3 Hz로 펄스 압축기를 지난 뒤 첨두 출력 약 0.5 PW에 해당합니다.

노벨상과 그 쓰임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은 "레이저 물리 분야의 획기적인 발명"에 주어졌습니다. 절반은 광 집게를 발명한 아서 애슈킨(Arthur Ashkin)이 받았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고세기 초단 광 펄스를 만드는 방법"으로 무루와 스트리클런드가 함께 받았습니다.

수상 때 무루의 소속은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미국 미시간 대학교, 스트리클런드의 소속은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였습니다. 두 사람의 상의 몫은 각각 4분의 1입니다. CPA는 곧 그 뒤의 고세기 레이저들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CPA가 바꾼 것은 최고 기록만이 아닙니다. 펄스가 짧아 첨두 출력은 높지만 펄스 에너지는 보통 수준인 레이저가 나왔고, 덕분에 반복률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대학 연구실 예산에 맞는 탁자 위 레이저가 1초에 10번, 핵융합 실험용 거대 레이저가 하루에 몇 번 내던 것과 같은 첨두 출력의 펄스를 냈습니다.

이런 레이저가 강한 장 물리, 아토초 과학, 레이저 플라스마 가속 같은 새 분야를 열었습니다. 미국 버클리 연구소 BELLA 시설의 페타와트급 레이저는 전자를 9 cm 안에서 4.2 GeV까지 가속합니다. 다만 레이저 가속기를 의료에 쓰기까지는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산업과 의료에도 들어왔습니다. CPA 덕분에 작고 쓰기 쉬운 고출력 초단 펄스 레이저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펨토초 레이저는 근시와 난시를 고치는 굴절 수술에 쓰입니다. 노벨 문서의 그림 설명에 실린 수술용 CPA 펨토초 레이저는 펄스당 120 nJ 정도의 낮은 에너지로, 1초에 10만 번(100 kHz)이 넘게 펄스를 냅니다.

노벨위원회는 해마다 수백만 건의 눈 수술이 이런 레이저로 이루어진다고 소개합니다. 여러 재료에 아주 정밀하게 구멍을 뚫거나 자르는 일,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를 만드는 일에도 씁니다. 열이 덜 남는 까닭은 「초단 펄스 레이저 가공: 열이 덜 남는 이유」에서 다룹니다.

남은 숙제

첫째 숙제는 평균 출력(average power)입니다. 다이오드로 펌핑하는 Yb 도핑 레이저가 나오면서 초고속 레이저의 평균 출력은 크게 늘었고, 광섬유·얇은 원판·슬랩 구조에서 1 kW를 넘었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보통 여러 단의 CPA입니다. 낮은 출력의 발진기에서 펄스를 골라 늘이고, 증폭기를 여러 개 거친 뒤 압축합니다.

평균 출력이 수백 와트에 이르면 열이 문제입니다. 열을 잘 빼면서도 열광학 왜곡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이런 시스템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둘째는 펄스가 다시 길어지는 문제입니다. 바깥에 붙인 CPA 증폭은 실질적인 이득 좁아짐(gain narrowing) 때문에 보통 펄스 폭을 늘립니다. 그래서 큰 평균 출력에서도 펄스를 다시 줄이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CPA 시스템 안에 음향광학 분산 필터를 넣어 이득 좁아짐과 남은 위상 오차를 보상하고 17 fs 펄스를 얻은 예도 있습니다.

셋째는 여러 증폭기를 합치는 길의 복잡함입니다. 결맞음 빔 결합(coherent beam combining, CBC)으로 에너지와 평균 출력을 더 높일 수 있지만, 시스템은 그만큼 더 복잡해집니다. 2021년에는 CPA 광섬유 증폭기 16개를 합쳐 평균 출력 1 kW, 펄스 폭 120 fs, 펄스 에너지 10 mJ, 반복률 100 kHz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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