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월, 영국 암호 해독가들 앞에 독일 외무장관이 보낸 전보 한 통이 놓였습니다. 받을 사람은 멕시코에 있는 독일 공사였고, 영국은 그 수신자 목록에 없었습니다. 몇 달 뒤 이 전보는 미국 신문에 널리 실렸습니다.
남이 주고받는 신호에서 정보를 얻는 일을 신호정보(signals intelligence, SIGINT)라고 합니다. 이 글은 신호정보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그리고 1차 대전부터 냉전 초까지 이 일을 맡은 기관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각국 정부의 공개 역사 자료로 따라갑니다.
전파는 보낸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전파는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파장(wavelength)이 가장 긴 전자기파입니다. 하인리히 헤르츠가 1880년대 후반에 실험으로 그 존재를 보였습니다. 라디오를 특정 주파수(frequency, 교과서의 진동수)에 맞추면 그 전파를 받아 스피커의 떨림, 곧 소리로 바꿉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라디오는 전파를 받을 뿐, 그 전파가 누구에게 가려던 것인지 묻지 않습니다. 보내는 쪽은 받을 사람을 마음에 두고 신호를 내보내지만, 같은 전파를 다른 수신기가 받는 것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1차 대전이 터진 1914년 영국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GCHQ의 역사 설명을 보면, 해군성과 육군성이 정보 부서를 만든 까닭은 독일의 무선 통신을 가로채면 독일의 계획을 미리 알 수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영국의 신호정보는 그해 8월에 시작했습니다.
통신정보와 전자정보
신호정보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눕니다. 하나는 사람이 주고받는 메시지를 다루는 통신정보(communications intelligence, COMINT)입니다. 전보, 무선 메시지, 음성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다른 하나는 전자정보(electronic intelligence, ELINT)입니다. 1993년 기밀이 풀린 CIA 논문은 지침의 정의를 옮겨, ELINT를 외국의 "비통신" 전자기 복사에 관한 정보를 모아 처리하는 일로 설명합니다. 음성이나 전신 같은 통신에 쓰는 복사는 빼고, 레이더나 항법 보조 장치처럼 메시지를 나르지 않는 전파를 맡는다는 뜻입니다.
통신정보는 편지를 읽는 일에, 전자정보는 등대의 불빛을 보고 등대가 어디 있는지 아는 일에 빗댈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둘 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수신 장비와 분석가의 손을 거칩니다. 이런 신호를 소리로 바꿔 들으면 뇌우 때 라디오에서 나는 잡음처럼 들립니다.
1차 대전: 전보 한 통이 바꾼 것
전쟁 초에 생긴 해군성의 Room 40과 육군성의 MI1(b)는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무선 통신을 다루는 정교한 체계를 갖췄습니다. 이 정보는 1916년부터 공습 대응에 쓰였고, 유틀란트 해전 앞서 독일 해군의 움직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1918년 독일의 대공세 때는 신호정보 요원이 최전선에서 일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일은 도입에서 말한 전보입니다. 독일 외무장관 아르투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공사에게 보낸 이 전보는, 독일 편에 서면 미국 땅을 멕시코에 주겠다는 제안을 담고 있었습니다. 영국 암호 해독가들은 1917년 1월에 이것을 풀었습니다.
영국은 해독한 내용을 곧바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설명으로는, 정보가 드러나지 않게 지키고 미국 안에서 커지던 반독일 여론을 살리려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2월 24일 윌슨 대통령에게 전보를 넘겼고, 3월 1일 미국 신문에 널리 실렸습니다. 4월 6일 미국 의회는 독일에 선전 포고했습니다.
국립문서보관소는 이 전보가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데 분명히 도왔다고 봅니다. GCHQ는 같은 일을 두고, 정보를 쓰는 일과 그 출처를 지키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이며 지금도 그렇다고 적었습니다.
전쟁 동안 신호정보가 쓸모를 보이자, 영국은 평시에도 이 일을 이어 가기로 했습니다. 해군과 육군의 두 부서가 합쳐 정부 암호 학교(Government Code & Cypher School, GC&CS)가 되었고, 1919년 11월 1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겉으로 내세운 일은 영국 정부 통신 보호였고, 비밀 임무는 외국이 보낸 메시지 해독이었습니다. 이 기관이 뒤에 GCHQ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2차 대전: 엿듣는 기지와 내용 밖의 정보
두 대전 사이 GC&CS는 외국 외교 암호에서는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1939년 영국이 맞선 나라 군대가 쓴 기계식 암호,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에니그마에는 훨씬 덜 성공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GC&CS는 블레츨리 파크로 옮겨 GCHQ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해독할 메시지는 어디서 왔을까요? 영국 곳곳에 흩어진 Y 기지(Y station)라는 무선 감청 기지가 적의 암호 메시지를 받아 적었습니다. 블레츨리 파크 재단은 이것을 암호 해독과 정보 작업의 "원재료"라고 부릅니다.
블레츨리 파크에는 메시지를 아예 풀지 않고 보는 부서도 있었습니다. 통신 분석(traffic analysis)이라는 일입니다. 메시지 내용 대신 통신의 양, 방향, 송신 형태, 호출 부호 같은 특징을 살폈고, 그것만으로 적 부대가 어떻게 짜여 있고 어디 있는지를 짐작했습니다. 해독한 내용에 맥락을 더해 주었고, 풀지 못한 메시지에서도 정보를 얻게 했습니다.
편지 봉투만 보고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자주 보내는지 아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실제 통신 분석은 봉투 몇 장이 아니라 매일 쏟아지는 통신 전체를 놓고 하는 일이었고, 이 일을 맡은 부서 가운데 가장 큰 SIXTA는 독일 육군·공군의 에니그마를 다루는 해독 작업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전자정보도 이 무렵 영국에서 시작했습니다. 1940년 6월 과학자 R. V. 존스는 독일이 날씨와 어둠에 상관없이 폭격기를 이끄는 무선 빔을 만들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영국 공군의 탐색기가 실제로 그 빔을 찾아냈고, CIA 논문은 이 일을 "오늘날 ELINT의 시작"이라고 부릅니다. ELINT라는 말이 생기기 전 영국은 이 일을 "잡음 듣기(Noise Listening)"라고 불렀습니다.
폴란드와 프랑스의 통찰, 앨런 튜링 같은 새 인력에 힘입어 블레츨리 파크의 GCHQ는 산업화된 정보기관으로 커졌습니다. GCHQ는 블레츨리 파크가 연합군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정보를 만들었고 현대 컴퓨터가 태어난 곳이라고 평가합니다. 에니그마를 푼 사람들의 이야기는 "에니그마와 블레츨리 파크: 암호 기계를 푼 사람들"로 이어집니다.
냉전: 흩어진 조직을 하나로
미국은 2차 대전 뒤에도 신호정보 부대가 육군, 해군, 공군에 나뉘어 있었습니다. 1949년 5월 20일 국방부 안에 군 보안국(Armed Forces Security Agency, AFSA)이 생겨 이 부대들의 통신정보와 전자정보 활동을 이끌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AFSA가 가진 힘은 크지 않았습니다.
1951년 12월 13일 트루먼 대통령은 정부의 통신정보 활동을 살필 위원회를 꾸리게 했습니다. 브라우넬 위원회로 불린 이 모임은 1952년 6월 13일 다섯 부분으로 된 보고서를 냈습니다. 미 국무부 역사실의 편집 주석에 따르면, 주된 결론은 육군·해군·공군·AFSA 네 조직이 여러 분야에서 겹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952년 10월 대통령과 국가안보회의(NSC)는 권고 대부분을 받아들였고, AFSA 대신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이 생겼습니다. 세 군에 나뉜 군사 활동이던 통신정보가 이때 하나의 국가 활동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자정보가 빠져 있었습니다. 1952년 지시는 NSA 국장에게 전자정보 수집 권한을 주지 않았고, 이 일은 각 군에 남았습니다. 1958년 NSA에 전자정보가 더해지면서 NSA는 신호정보의 두 갈래를 모두 맡는 국가 기관이 되었습니다.
영국 쪽도 전쟁 뒤 자리를 옮겼습니다. GCHQ는 1946년 블레츨리 파크를 떠나 런던 교외에 잠시 머문 뒤 첼트넘으로 갔습니다. 상대는 추축국에서 바르샤바 조약 기구로 바뀌었지만, 미국·영연방과의 협력은 이어졌습니다.
법과 감독, 그리고 남는 물음
전파를 듣는 일은 남의 통신에 손을 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누가, 어디까지 하는지는 법과 명령으로 정해 둡니다.
미국에서는 1981년 12월 4일 서명한 행정명령 12333이 큰 틀입니다. 이 명령은 NSA의 책임으로 신호정보 활동을 위한 효과적인 단일 조직을 세우고 운영하는 일을 적고, 국방장관이 위임하지 않으면 다른 부서나 기관은 신호정보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정보기관이 미국 안에서, 또는 미국인을 향해 정보를 모을 때는 가능한 한 가장 덜 침해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문장도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 정보공동체는 18개 요소로 이뤄집니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2024년 입문서는 NSA가 신호정보와 정보 보증을 아우르는 암호학을 전문으로 하고, 국가정찰국(NRO)은 영상과 신호정보 수집이 주목적인 위성과 지상국을 만들고 운영한다고 정리합니다. 위성에서 정보를 얻는 일은 군사 정찰위성 글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역사는 정보기관과 정부가 스스로 공개한 기록으로 짠 것입니다.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같은 문장은 그 기관의 평가로 읽고, 누가 한 말인지를 함께 기억하는 편이 좋습니다. 레이저 무기 보도를 읽을 때도 같은 습관이 쓸모 있습니다. 누가 어떤 근거로 말했는지 가리는 법은 레이저 무기 기사 읽는 법에 정리했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
- 전자전: 보이지 않는 전자기 환경의 경쟁: 전파를 듣는 일 말고도 군이 전자기 스펙트럼에서 하는 일들을 봅니다.
- 레이다: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어떻게 알까: 전자정보가 듣는 대표적인 신호, 레이다의 원리입니다.
- 에니그마와 블레츨리 파크: 암호 기계를 푼 사람들: 2차 대전의 암호 해독을 따로 다루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