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약 덩이의 한쪽 끝을 오목하게 파내면 폭약의 양은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 폭약을 강판 위에서 터뜨리면 구덩이는 오히려 깊어집니다. 1880년대 여러 실험에서 확인된 이 뜻밖의 결과가 성형작약(shaped charge)의 출발점이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 현상을 먼로 효과(Munroe effect)라고 부릅니다.
성형작약은 대전차 무기의 탄두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1998년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글을 보면 가장 넓게 쓰이는 곳은 석유·가스 산업이었습니다. 폭약을 덜 넣었는데 왜 더 깊이 팔까요? 답은 빈 공간과 그 안에 댄 금속 안감에 있습니다.
속이 빈 폭약이 더 깊이 판다
폭약을 터뜨리면 뜨거운 기체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것을 폭발 생성물이라고 합니다. 원통형 폭약에서 기폭하는 쪽의 반대편 끝을 오목하게 비워 두면 그 빈 공간이 폭발 생성물을 한곳으로 모읍니다. 그러면 더 적은 폭약으로 강판에 더 깊은 구덩이를 낼 수 있습니다.
미 육군연구소(ARL)의 W. 월터스는 2008년 보고서에서 자기 의견임을 밝히고 성형작약을 "기폭 쪽 반대편 끝에 빈 공간이 있는 원통형 폭약"으로 정의했습니다. 빈 공간에 아무것도 대지 않으면 속 빈 폭약(hollow charge)입니다.
빈 공간에 금속, 합금, 유리, 세라믹, 나무 같은 재료로 만든 안감을 대면 좁은 뜻의 성형작약이 됩니다. 이 안감을 라이너(liner)라고 합니다. 옛 소련에서는 이것을 누적 장약(cumulative charge), 독일에서는 Hohlladung이라고 불렀습니다.
라이너 모양은 원뿔, 반구, 포물선처럼 여러 가지입니다. 활처럼 얕게 휜 라이너를 쓰면 폭발 성형 관통자(explosively formed penetrator, EFP)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성형작약의 한 갈래입니다. 모양이 다르면 라이너가 무너져 가는 방식도, 그 결과로 생기는 제트(jet)나 덩어리(slug)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이름에도 내력이 있습니다. "hollow charge"라는 말은 1920년 A. 마셜이 처음 쓴 것으로 보이고, "shaped charge"라는 말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생겼습니다.
먼로가 본 글자
1888년,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의 해군 어뢰 기지에서 일하던 찰스 먼로(Charles Munroe)가 강판에 닿게 놓은 폭약 덩이를 터뜨렸습니다. 폭약의 기폭점 반대쪽 면에는 미 해군의 머리글자 USN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터진 뒤 강판에는 그 글자가 그대로 찍혀 있었습니다. 이것을 폭발 각인(explosive engraving)이라고 합니다.
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폭약 원통의 기폭점 반대쪽을 오목하게 비우자 강판에 파인 구덩이가 깊어졌습니다. 폭약은 줄었는데 구멍은 더 깊어진 것입니다. 월터스는 관통이 늘어난 까닭을 빈 공간이 폭발 생성물을 모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먼로가 이 현상을 처음 본 사람은 아닙니다. 빈 공간으로 폭발을 모은 가장 이른 기록은 1792년 프란츠 폰 바더(Franz von Baader)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쓴 흑색 화약은 기폭(detonation)을 일으키지 못하는 화약이어서, 월터스는 이 역사를 1867년 알프레드 노벨이 뇌관을 발명한 뒤부터 셉니다.
고성능 폭약으로 빈 공간 효과를 처음 보인 사람은 1883년의 폰 푀르스터(von Foerster)입니다. 그도 먼로와 비슷한 각인 실험을 했습니다. 월터스가 1888년 먼로의 일을 라이너 없는 성형작약의 "재발견"이라고 적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같은 현상에는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11~1912년 독일 회사 WASAG의 영국·독일 특허는 라이너 없는 효과와 라이너를 댄 효과를 모두 보였습니다.
M. 노이만(1911)과 E. 노이만(1914)도 라이너 없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빈 공간이 관통을 키우는 이 현상을 미국과 영국에서는 먼로 효과, 독일에서는 노이만 효과(Neumann effect)라고 부릅니다.
금속 라이너가 제트가 되는 순간
LLNL은 성형작약을 오목한 금속 반구나 원뿔 뒤에 고성능 폭약을 대고 전체를 강철이나 알루미늄 케이스에 넣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 금속 반구나 원뿔이 라이너입니다. 폭약이 터지면 라이너가 눌리고 앞으로 짜여 나가면서 가늘고 긴 금속 흐름이 됩니다. 이것이 제트이고, 그 끝은 10 km/s(초속 10킬로미터)까지 날 수 있습니다.
치약 튜브를 양옆에서 한꺼번에 세게 누르면 치약이 입구 쪽으로 몰려 한 줄로 튀어나옵니다. 라이너가 제트가 되는 모습이 얼핏 이와 닮았습니다. 실제로는 많이 다릅니다. 누르는 것은 손이 아니라 폭발이고, 튀어나오는 것은 금속이며, 전형적인 제트 형성 실험은 30 µs(100만분의 30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금속 면이 앞으로 짜여 나간다는 생각은 꽤 단순해 보입니다. 그런데 LLNL은 1998년 글에서 성형작약의 물리가 매우 복잡하고 그때까지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성형작약은 설계상 모든 에너지를 한 줄에 모으기 때문에 매우 정확하고 다루기 쉽다는 설명도 같은 글에 나옵니다.
누가 먼저였나: 20세기 전반의 역사
라이너를 댄 성형작약 연구는 1935년에서 1950년 사이에 크게 빨라졌습니다. 가장 큰 까닭은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영국, 독일, 미국이 모두 초기 개발을 주장했기 때문에 누가 먼저인지는 다소 모호합니다.
근대 성형작약의 이름으로는 두 사람이 꼽힙니다. 독일의 프란츠 루돌프 토마네크(Franz Rudolf Thomanek)와 영국·미국 쪽의 헨리 한스 모하우프트(Henry Hans Mohaupt)는 서로 따로 이 개념을 완성했습니다. 토마네크는 1938년 2월 4일에 라이너 효과를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모하우프트의 가장 이른 특허가 내세운 날짜는 1939년 11월 9일입니다.
무기로 쓰인 기록도 이 무렵부터 나옵니다. 1940년 5월 10일, 벨기에 에반에말에서 속 빈 폭약이 쓰였습니다.
영국은 모하우프트의 시연을 본 뒤 성형작약을 다시 검토했고, 약 1년의 개발 끝에 1940년 11월 No. 68 소총 유탄을 들였습니다. 월터스는 이것을 세계 첫 속 빈 폭약 대전차 소총 유탄으로 적습니다.
미국은 1941년에 2.36인치 대전차 고폭탄(high explosive anti-tank, HEAT) 유탄과 75 mm, 105 mm HEAT 포탄을 만들었습니다. 그 유탄에 로켓 모터와 어깨 발사기를 더한 것이 바주카가 됐습니다. 오늘날 대전차 유도미사일(anti-tank guided missile, ATGM)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대전차 유도미사일 글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
창이 생기면 방패도 생깁니다. 차량 바깥에 다는 반응장갑(reactive armor)은 주로 성형작약탄두를 막으려고 개발됐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복합장갑과 반응장갑 글에 있습니다.
연기 속을 들여다본 엑스선
폭발하는 순간을 보통 카메라로 찍으면 어떻게 될까요? 연기와 불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월터스가 섬광 엑스선 사진(flash radiograph)이 꼭 필요했다고 설명하는 까닭입니다. 엑스선은 연기를 뚫고 안쪽의 금속을 그림자로 보여 줍니다.
성형작약의 원리는 미국의 실리(Seely) 등과 영국 터크(Tuck)의 선구적인 섬광 엑스선 사진으로 밝혀졌습니다. 독일에서도 1941년 슈만(Schumann)과 샤르딘(Schardin)이 비슷한 사진을 얻었습니다. 누가 첫 섬광 엑스선 사진을 찍었는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1950~1960년대부터는 고속 사진과 섬광 엑스선 기법이 완성되고, 라이너가 무너지고 제트가 생겨 자라는 과정을 흉내 내는 큰 계산 코드가 나오면서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LLNL의 1998년 글은 초기 연구가 대부분 시행착오에 기댔고, 1970년대에 와서야 계산 코드가 성형작약의 거동을 어느 정도 정확히 예측했다고 돌아봅니다.
LLNL의 엑스선 그림자 사진은 제트의 속도, 밀도, 질량 분포를 알려 줍니다. 레이저도 이 일을 거들었습니다. 연구소가 만든 영상 변환 카메라는 펄스 루비 레이저로 성형작약을 비추어 제트가 생기는 모습을 처음으로 높은 해상도로 찍었습니다. 레이저 조명과 필터가 없으면 그 사진에는 제트를 감싼 뜨거운 기체만 눈부시게 빛나는 껍질로 찍혔을 것입니다.
전장 밖의 성형작약
전차와 장갑 장비를 뚫으려는 성형작약 개발은 1차 세계대전 뒤에 시작됐다고 LLNL의 1998년 글은 적습니다. 같은 문단에서 그때 가장 넓게 쓰이던 곳으로 꼽은 것은 시추한 유정 둘레의 암석을 여는 석유·가스 산업이었습니다.
바다 밑에서도 쓰입니다.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해양 기름 유출이었습니다. 그 뒤 LLNL 연구진은 유정의 분출 방지기(blowout preventer)가 고장 났을 때 작동시키는 폭약 기반 비상 절단 장치를 설계했습니다.
이 장치에는 건설과 철거 공사에 흔히 쓰는 선형 성형작약(linear-shaped charge)이 들어갔습니다. 기폭파가 구리 라이너를 빠르게 눌러 무너뜨리면 제트가 매우 빠르게 튀어나가 시추관을 자릅니다. 이 장치에서 제트는 구리 판 모양입니다.
원뿔이나 구 모양은 무거운 재료를 뚫는 데 흔히 쓰이지만, 강철 시추관을 자르는 데는 칼날처럼 작용하는 선형 판이 가장 알맞았다고 LLNL은 설명합니다.
레이저와 맞닿는 점: 에너지를 한 줄로 모으기
성형작약의 요점은 폭약을 더 많이 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같은 폭발을 빈 공간과 라이너로 한 줄에 모으는 데 있습니다.
레이저에서도 모으기가 중요합니다. 같은 출력의 빛이라도 좁은 면적에 모을수록 세기(intensity)가 커집니다. 출력과 세기가 어떻게 다른지는 출력, 에너지, 세기 글에서 전구와 햇빛 예로 풀어 두었습니다.
다른 점도 분명합니다. 성형작약은 금속 제트를 날려 보내고, 한 번 터지면 끝납니다. 레이저는 물질이 아니라 빛을 보냅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 레이저는 이 금속 제트가 생기는 모습을 처음 높은 해상도로 비춘 조명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
- 대전차 유도미사일: 성형작약탄두를 싣고 날아가는 미사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어 봅니다.
- 복합장갑과 반응장갑: 성형작약탄두를 막으려고 장갑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봅니다.
- 출력, 에너지, 세기: 에너지를 좁은 곳에 모은다는 말을 레이저의 단위로 다시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