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S 밴드 기상 레이다", "X 밴드 레이다" 같은 말이 자주 나옵니다. 글자 하나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이 글자는 레이다가 쓰는 전파의 주파수(frequency, 진동수) 구간, 곧 대역(band)에 붙인 이름표입니다.
대역이 다르면 같은 크기의 안테나에서 나오는 빔의 폭이 달라지고, 비를 만났을 때 약해지는 정도도 달라집니다. 이 글은 글자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에서 시작해 L, S, C, X 같은 대역이 실제로 무엇을 가르는지, 쓰임이 왜 대역마다 갈리는지를 차례로 봅니다.
레이다가 전파로 거리를 재는 기본은 「레이다: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어떻게 알까」에 있습니다.
글자 이름은 어디서 왔나
L, S, X 같은 글자는 뜻을 담으려고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미국기상학회(AMS)의 기상학 용어집은 레이다 주파수 대역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비밀을 지키려고 처음 암호 글자로 지정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 글자들은 지금도 흔히 쓰입니다. 다만 글자마다 가리키는 정확한 주파수 구간은 그사이 얼마간 다시 정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기술자들은 글자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운용 대역을 짧게 나타내는 표기로 계속 썼고, 지금은 레이다 기술자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걸림돌은 다른 분야에도 비슷한 글자 이름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마이크로파 사용자들의 글자 대역 이름을 레이다에 잘못 갖다 쓰면서 혼란이 생겼고,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는 이를 없애려고 1976년에 표준 IEEE Std 521을 처음 냈습니다. 1984년 개정은 기존 글자를 그대로 두고 밀리미터파 영역의 일부에 V와 W를 정했습니다. 2002년 개정은 밀리미터파의 정의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맞췄습니다.
이 표준은 ITU의 이름 체계와 부딪치지 않게 짜였습니다. HF와 VHF의 정의는 두 체계에서 같습니다. 레이다 이름은 ITU의 기존 대역을 레이다 관행에 맞춰 더 잘게 나눈 것입니다.
주파수가 오르면 파장은 짧아진다
대역을 이해하려면 주파수와 파장(wavelength)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부터 보면 됩니다. 전파는 빛과 같은 속력, 1초에 3억 m로 나아갑니다. 1초에 더 많이 출렁일수록 한 번 출렁이는 길이는 짧아집니다.
파장 = 빛의 속력 ÷ 주파수
MIT 링컨 연구소의 레이다 강의 자료에 나온 예를 보면 감이 옵니다. 1 GHz는 파장이 30 cm, 3 GHz는 10 cm, 10 GHz는 3 cm입니다. 주파수가 열 배가 되면 파장은 10분의 1이 됩니다.
레이다가 쓰는 전파는 대부분 마이크로파(microwave) 영역에 있습니다. NASA 지구관측소 자료는 마이크로파 영역을 파장 1 mm~1 m로 잡고, 사람이 만든 레이다가 쓰는 구간을 이 영역에 넣습니다. 이 영역의 전파는 대기를 대부분 막힘 없이 지나 지표까지 닿습니다.
대역 한눈에 보기
IEEE 표준 대역을 주파수 순서로 놓으면 L은 1~2 GHz, S는 2~4 GHz, C는 4~8 GHz, X는 8~12 GHz입니다. 그 위로 Ku 12~18 GHz, K 18~27 GHz, Ka 27~40 GHz가 이어집니다. L 아래쪽은 ITU 이름인 HF(3~30 MHz), VHF(30~300 MHz), UHF(300 MHz~1 GHz)로 부릅니다.
파장으로 바꾸면 L 대역은 30~15 cm, S 대역은 15~7.5 cm, C 대역은 7.5~3.8 cm, X 대역은 3.8~2.4 cm입니다. NASA 어스데이터의 표에 실린 값입니다. Ku, K, Ka는 같은 식으로 계산하면 2.5 cm에서 0.75 cm 사이에 듭니다.
경계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적히기도 합니다. 강의 자료의 표는 40 GHz 위를 W 하나로 묶었지만, IEEE 표준은 1984년부터 이 영역의 일부에 V와 W를 따로 정해 두었습니다. 글자가 가리키는 구간이 세월을 두고 다시 정해졌다는 앞의 이야기가 여기서도 보입니다.
짧은 파장: 좁은 빔과 세밀한 그림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레이다는 더 높은 주파수, 곧 더 짧은 파장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IEEE 역사 센터의 공학기술사 위키(ETHW)는 이것을 전쟁 중 가장 중요한 레이다 진전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짧은 파장은 좁은 빔으로 모으기 쉬웠고, 그래서 먼 물체가 더 많은 에너지를 되돌려 보냈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높은 주파수가 더 높은 해상도를 주었습니다.
출발점은 미터 단위 파장이었습니다. 1940년 무렵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조기 경보를 맡은 체인 홈(Chain Home) 레이다는 주파수 20~30 MHz, 파장 10~15 m의 전파를 썼습니다. 마이크로파로 옮겨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 돌파는 1940년 영국 버밍엄 대학교에서 발명된 공동 마그네트론(cavity magnetron)이었습니다.
짧은 파장이 왜 유리할까요? 안테나의 크기를 파장으로 재 보면 실마리가 보입니다. MIT 링컨 연구소의 안테나 강의는 지름이 파장의 더 많은 배수일수록, 곧 안테나가 전기적으로 클수록 이득이 커진다고 설명합니다. 지름 1 m짜리 접시에 파장 3 cm인 X 대역 전파는 서른 개 남짓 들어가지만, 파장 30 cm인 전파는 세 개 남짓 들어갈 뿐입니다.
해상도도 같은 비로 정해집니다. 레이다 자료의 공간 해상도는 파장과 안테나 길이의 비에 바로 달려 있고, 같은 파장이면 안테나가 길수록 해상도가 높습니다. NASA의 예로, 우주에서 파장 약 5 cm의 C 대역으로 10 m 해상도를 얻으려면 길이 약 4,250 m의 안테나가 필요합니다. 위성에 실을 수 없는 크기라서, 짧은 안테나로 잇달아 얻은 관측을 합쳐 큰 안테나를 흉내 내는 합성개구레이다(synthetic aperture radar, SAR)가 쓰입니다.
파장은 그림을 그리는 붓의 굵기와 닮았습니다. 가는 붓일수록 작은 세부를 그릴 수 있고, 교과서도 어떤 탐사 수단이든 파장이 짧을수록 더 작은 세부를 볼 수 있다고 적습니다. 실제로는 붓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레이다의 해상도는 파장만이 아니라 파장과 안테나 크기의 비로 정해집니다.
짧은 파장의 대가: 비
짧은 파장이 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전파가 공기 속을 지나며 약해지는 것을 감쇠(attenuation)라고 합니다. AMS 용어집에 따르면 대기 기체, 비, 구름 알갱이에 의한 감쇠는 X 대역보다 높은 모든 대역에서 심하고, X 대역도 강한 비에서는 심하게 감쇠할 수 있습니다.
강수 측정에 주로 쓰이는 것은 S, C, X 대역 레이다입니다. 미국의 기상 레이다망을 이루는 WSR-88D는 1990년대 초·중반에 미 국립기상청(NWS), 미 공군, 연방항공청(FAA)의 운용 망 레이다가 되었습니다. 이 레이다의 공칭 송신 파장은 10.5 cm로, S 대역에 듭니다.
높은 대역이 날씨 관측에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K, Ka, W 대역 레이다는 비를 멀리 뚫지 못해도 구름을 잡을 수 있어 구름 관측에 쓰입니다. 감쇠의 차이를 오히려 정보로 쓰기도 합니다.
NASA의 전 지구 강수 관측(GPM) 핵심 위성에 실린 이중 주파수 강수 레이다(DPR)가 그런 예입니다. 13.6 GHz의 Ku 대역 레이다와 Ka 대역 레이다를 함께 싣고, 두 대역 사이의 감쇠 차이로 비와 눈을 가립니다.
숲과 땅속으로: 긴 파장의 쓸모
긴 파장에는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파장은 레이다 신호가 표면과 어떻게 만나는지, 매질 속으로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정합니다. NASA 어스데이터의 설명으로, 파장 약 3 cm의 X 대역은 활엽수림 속으로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주로 나무 꼭대기의 잎과 만납니다. 파장 약 23 cm의 L 대역은 나무 덮개를 더 깊이 뚫고 들어가 큰 가지와 줄기까지 닿습니다.
숲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흙과 얼음 같은 다른 지표에서도 파장에 따라 전파가 들어가는 깊이가 달라집니다.
위성 SAR의 대역별 쓰임에도 이 차이가 드러납니다. X 대역은 도시 감시 같은 고해상도 관측, C 대역은 전 지구 지도와 변화 탐지를 맡는 SAR의 "일꾼", L 대역은 생물량과 식생 지도처럼 깊이 들어가야 하는 관측에 쓰입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인도 우주연구기구(ISRO)의 NISAR는 L 대역과 S 대역 SAR 자료를 함께 모으는 임무입니다.
대역마다 맡는 일
MIT 강의 자료의 IEEE 대역 표 옆에는 대역별 흔한 쓰임이 적혀 있습니다. 낮은 대역 쪽부터 탐색 레이다, 탐색·추적 레이다, 사격 통제·영상 레이다가 놓이고, 가장 높은 쪽에 미사일 탐색기가 있습니다. 세밀한 그림이 필요한 영상 레이다가 짧은 파장 쪽에 놓인 것은 앞에서 본 맞바꿈과 맞아떨어집니다.
어디까지나 흔한 경향입니다. 같은 강수 관측에도 S, C, X 대역이 함께 쓰이고, 구름 관측에는 K·Ka·W 대역이 쓰입니다. 바람 프로파일러처럼 그보다 한참 낮은 UHF·VHF 대역을 쓰는 기상 레이다도 있습니다.
대역 하나가 모든 일에 맞는 정답은 없습니다. 빔의 폭, 비에 버티는 힘, 침투 깊이, 안테나 크기 사이에서 하는 일에 맞는 자리를 고르는 것입니다.
같은 규칙, 더 짧은 파장: 빛
파장이 성질을 가른다는 규칙은 빛에서도 같습니다. 가시광은 0.4~0.7 µm입니다. 파장 10.5 cm인 기상 레이다와 견주면 가시광의 파장은 약 20만분의 1입니다.
파장이 짧을수록 더 작은 세부를 볼 수 있다는 교과서의 규칙은 레이저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레이저 빛의 파장이 무엇을 바꾸는지는 「파장은 왜 중요한가: 보이는 빛과 보이지 않는 빛」에서, 그 빛이 공기를 지날 때 겪는 일은 「대기 전파: 흡수, 산란, 난류, 열 블루밍」에서 이어집니다.
다음에 읽을 글
- 레이다: 전파로 거리와 움직임을 어떻게 알까: 왕복 시간으로 거리를 재는 법과 마이크로파 레이다의 시작을 봅니다.
- 합성개구레이다(SAR): 전파로 사진 같은 영상을 만드는 법: 4,250 m짜리 안테나 없이 높은 해상도를 얻는 방법을 봅니다.
- 위상배열과 AESA 레이다: 안테나를 돌리지 않고 방향을 바꾼다: 빔의 방향을 전자적으로 바꾸는 안테나를 봅니다.
- 도플러 레이다: 움직이는 물체만 골라 보는 법: 같은 S 대역 기상 레이다가 비의 움직임을 읽는 원리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