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함(destroyer) 한 척에는 프로펠러를 돌리는 엔진 말고도 전기만 만드는 엔진이 따로 실려 있습니다. 배 안의 모든 전기 장비가 그 엔진이 만든 전기를 씁니다. 그렇다면 두 벌의 엔진을 하나로 합쳐, 힘이 필요한 곳에 그때그때 나눠 주면 어떨까요?
미 해군이 통합전기추진이라는 이름으로 붙잡고 있는 물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답을 따라가면 항공기 제트 엔진에서 나온 함정 가스터빈, 백 년 넘게 오르내린 전기 추진의 역사, 그리고 함정 레이저가 왜 배의 전기 문제로 이어지는지에 닿습니다.
가스터빈은 어떻게 배를 미나
오늘날 여객기와 군용기 대부분은 가스터빈 엔진, 흔히 제트 엔진이라 부르는 엔진으로 납니다. 압축기는 여러 줄의 날개꼴이 줄마다 압력을 조금씩 올리는 장치입니다. 압축된 공기에 연소기에서 연료를 조금 섞어 태우면, 터빈이 풍차처럼 뜨거운 흐름에서 에너지를 뽑아 가운데 축으로 압축기를 돌립니다.
비행기의 제트 엔진은 남은 흐름을 노즐로 내뿜어 추력을 얻습니다. 힘을 회전으로 받아 내는 길도 있습니다. 터보프롭 엔진은 배기 에너지의 대부분을 터빈을 돌리는 데 쓰고, 그 회전을 구동축과 기어 상자로 넘깁니다.
기어 상자가 프로펠러가 아닌 다른 구동 장치에 이어지면 터보샤프트(turboshaft) 엔진이 됩니다. 터보샤프트는 많은 헬리콥터와 전차, 그리고 배에도 쓰입니다.
미 해군 수상 전투함의 엔진도 가스터빈입니다. 미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의 2000년 보고서는 이 엔진을 상용 여객기 제트 엔진을 고친 것이며 제트 연료를 태운다고 적었습니다. 미 해군 잠수함과 대부분의 항공모함은 원자로의 열로 만든 증기로 증기 터빈을 돌리고, 최고 속도가 낮은 배는 디젤 엔진을 쓰기도 합니다.
비행기 엔진에서 배 엔진으로
배에 가스터빈을 싣자는 생각은 항공기 제트 엔진 뒤에 왔습니다. 트루비(G. F. A. Trewby)는 1954년 영국 해양공학회(Institute of Marine Engineers)에서 이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설명으로는 프랭크 휘틀의 작업으로 1941년 영국 첫 항공기 제트 엔진이 나오기 전까지 영국은 함정 가스터빈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1943년 8월에는 개트릭(Gatric)이라는 함정용 가스터빈 3대의 제작 계약이 맺어졌습니다.
시험에 쓴 배는 MGB 2009였습니다. 이 배의 패커드 휘발유 엔진 세 대 가운데 가운데 엔진을 개트릭으로 바꾸는 작업이 1947년 7월에 끝났고, 그해 8월 MGB 2009는 가스터빈으로 바다에서 추진된 세계 첫 배가 되었습니다.
원동기(prime mover)는 배를 움직일 힘을 처음 만들어 내는 엔진을 말합니다. 트루비는 가스터빈이 함정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다른 어떤 원동기보다 적은 무게와 공간에 더 많은 출력을 담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미국에서는 항공기 엔진 하나가 함정 엔진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제조사 GE 에어로스페이스는 약 50년 전 미 해군이 기존 증기 터빈 추진 설비를 대신할 엔진을 찾았고, 자사 기술자들이 항공기 엔진 CF6을 함정·산업용 가스터빈으로 바꿔 LM2500을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항공기 엔진에서 나왔다는 뜻으로 이런 엔진을 에어로더리버티브(aeroderivative)라고 부릅니다.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NHHC)의 기록으로는, LM2500 넷으로 주 추진을 한 것은 1975년 9월 20일 취역한 구축함 스프루언스(DD-963)가 미 해군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이 배에서는 다른 가스터빈 셋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었습니다. 추진용 엔진과 발전용 엔진이 따로 있는 이 배치가 다음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기계식 추진: 엔진이 두 벌
배의 구동 장치는 엔진의 힘을 프로펠러로 보내는 장비입니다. 자동차의 변속기와 구동축에 해당합니다. 세계의 큰 민간 선박과 군함 대부분은 기계식 구동(mechanical drive)을 씁니다.
기계식에서는 엔진의 빠른 회전이 굳은 축을 따라 감속 기어(reduction gear)로 가고, 감속 기어가 이를 큰 프로펠러에 맞는 느린 회전으로 바꿉니다. 자동차 비유는 여기까지만 맞습니다. 실제 배에서는 엔진과 감속 기어, 축, 프로펠러가 배 바닥을 따라 한 줄로 길게 놓여야 합니다.
기계식 구동의 배에는 엔진이 두 벌 있습니다. 한 벌은 추진에 쓰고, 다른 한 벌은 발전기에 이어져 배의 모든 전기 장비가 쓸 전기를 만듭니다. 알레이버크(DDG-51)급 구축함을 예로 들면, 추진용 큰 가스터빈 넷과 전기를 만드는 작은 가스터빈 셋이 따로 실려 있습니다.
문제는 두 벌의 크기 차이입니다. 2000년 CRS 보고서에 따르면 기계식 구동의 배에서 추진 엔진은 보통 배 전체 발전 능력의 75~85%를 차지합니다. 이 힘은 추진에만 묶여 있어서, 배가 멈춰 있거나 천천히 갈 때도 다른 장비에 돌릴 수 없습니다.
전기 추진과 통합전기추진
전기 구동(electric drive)은 엔진과 프로펠러 사이에 전기를 끼워 넣습니다. 발전기가 엔진의 빠른 회전을 전기로 바꾸면, 전선이 이 전기를 배 뒤쪽의 모터 드라이브(motor drive)로 보냅니다. 모터 드라이브는 전동기가 원하는 속도로 돌도록 전압과 주파수를 바꾸고, 전동기가 전기를 느린 회전으로 바꿔 프로펠러를 돌립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통합 전기 구동(integrated electric drive, IED)입니다. 미 해군의 개발 사업 이름을 따 통합 전력 체계(integrated power system, IPS)라고도 부릅니다.
통합 전력 체계에서는 한 벌의 엔진이 만든 전기가 하나의 웅덩이에 모입니다. 배전반(switchboard)이 이 전기를 추진용과 다른 장비용 두 흐름으로 나누고, 나누는 몫을 그때그때 바꿉니다. 배가 빠르게 달리는 중에도 짧고 큰 전력이 필요한 장비에 잠깐 전력을 돌릴 수 있고, 그래도 배가 눈에 띄게 느려지지 않습니다.
주요 부분은 엔진, 발전기, 배전반, 모터 드라이브, 전동기, 프로펠러, 그리고 나머지 전기를 다른 장비로 보내는 배전 체계입니다. 일부 보조 장비는 아직 증기나 유압, 압축 공기로 움직입니다. 이것까지 전기로 바꾸면 전 전기 함정(all-electric ship)이 되고, 이를 통합 전기 구동의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백 년이 넘은 생각
전기 추진은 새 기술이 아닙니다. 전기 구동의 역사는 첫 대형 전동기와 발전기가 나온 191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는 미국이 개발한 전기 구동과 영국이 개발한 감속 기어 방식이 함께 다듬어지며 경쟁했습니다.
CRS가 인용한 해군 저술가 제프리 우드(Geoffrey Wood)의 글은 함정 전기 추진의 역사를 1912년 미 해군 석탄 운반선 주피터(Jupiter)에서 시작합니다. 터보-전기(turbo-electric) 방식으로 움직인 이 배는 뒤의 주력함 설치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주피터는 나중에 미 해군 첫 실험용 항공모함 랭글리(CV-1)로 바뀌어 1922년 취역했습니다. 1914년 발주한 뉴멕시코급 전함 셋 가운데 첫 배에도 건조 중에 터보-전기 방식을 달기로 했습니다.
승부는 1920년대에 갈렸습니다. 영국이 가볍고 효율 높은 기계식 구동을 내놓으면서 기계식이 주된 추진 방식이 되었습니다. CRS가 인용한 분석가 노먼 프리드먼(Norman Friedman)은 1차 대전 뒤 해군 군축 조약 때문에 무게를 아끼는 일이 아주 중요해졌고, 기어 터빈이 훨씬 가벼웠다는 점을 듭니다. 2차 대전 중에는 미국의 기어 깎는 능력이 모자라 미 해군이 호위구축함에 터보-전기 설비를 다시 쓰기도 했습니다.
2차 대전 뒤에도 기계식 구동이 주류였고, 군함 가운데 전기 구동을 널리 쓴 것은 잠수함뿐이었습니다. 디젤-전기 설비가 잠수함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디젤전기·AIP·핵추진 잠수함에서 이어집니다.
흐름을 바꾼 것은 전력 전자(power electronics)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전동기와 특히 모터 드라이브가 발전하면서, 큰 함정에서도 전기 구동이 기계식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큰 전력을 다루는 반도체 소자 덕분에, 큰 전동기에 질 좋은 전력을 효율 좋게 보내는 모터 드라이브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같은 소자는 추진과 다른 장비를 한 전기망에 묶는 일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교류 전동기의 속도는 모터 드라이브가 보내는 전력의 주파수를 바꿔 조절합니다. 그런데 배의 다른 장비는 주파수가 일정한 전력이 필요해서, 옛 교류 전기 구동은 추진에만 쓰였습니다.
영국은 1985년 Type 23 프리깃(frigate) 건조를 시작했습니다. 이 배는 약 15노트까지 소나(sonar)를 끌며 조용히 움직일 때는 낮은 출력의 디젤-전기 구동을, 더 빠를 때는 가스터빈-기계 구동을 씁니다. 첫 배는 1990년 취역했습니다.
상선에서도 변화가 왔습니다. 1987년 여객선 퀸 엘리자베스 2호는 개조 공사에서 기계식을 통합 전기 구동으로 바꾸었고, 이것이 크루즈선 업계에 전기 구동이 널리 퍼지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얻는 것과 치르는 것
2000년 CRS 보고서는 전기 구동의 기대 장점으로 수명 주기 비용 절감, 정숙성과 탑재량 향상, 추진 밖에 쓸 전력 등을 꼽았습니다. 먼저 연료입니다. 배의 종류와 속도별 운항 시간에 따라 통합 전기 구동 함정은 비슷한 기계식 배보다 연료를 10~25% 덜 쓸 수 있고, 해군은 수상 전투함 같은 배에서 15~19% 절감을 추정했습니다.
공간도 달라집니다. 엔진에서 프로펠러까지 한 줄로 늘어놓아야 하는 기계식의 제약은 "축선의 횡포(tyranny of the shaft line)"라고 불립니다. 전기 구동은 부분들을 공간을 더 잘 쓰는 자리에 둘 수 있고, 터빈 엔진을 배의 더 높은 곳에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긴 자리에는 무기나 센서 같은 다른 탑재물을 실을 수 있습니다.
전기 구동은 기계식보다 소리가 훨씬 작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고 가장 눈여겨볼 점은 추진 밖에 쓸 수 있는 큰 전력입니다.
그런 쓰임으로는 강력한 레이다와 소나, 레이저 무기, 고출력 마이크로파(high-power microwave, HPM) 무기, 전자기 레일건, 전자기 항공기 발진·회수 장치가 꼽힙니다. 특히 무기는 수십 메가와트(MW)의 순간 전력이 필요할 수 있고, 기계식 배에 그만한 발전 능력을 더하면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치르는 것도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높은 초기 비용, 커지는 사업 위험, 늘어나는 복잡성, 최대 출력에서의 낮은 효율이 꼽혔습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처음에는 전기 구동이 사기에 더 비싸다고 보았고, 함정에서는 기계식보다 덜 성숙한 기술이라 일정과 기술 위험을 더할 수 있습니다.
효율 문제는 조금 따져 볼 만합니다. 회전을 전기로, 전기를 다시 회전으로 바꿀 때마다 에너지를 잃으므로 최대 출력에서는 전기 구동이 기계식보다 효율이 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정이 최대 출력으로 달리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한 추정으로는 함정이 시간의 약 80%를 절반 속도 이하, 대략 8분의 1 출력 이하로 보냅니다. CRS는 그래서 함정에서는 부분 출력에서 얻는 이득이 최대 출력의 손실보다 클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줌왈트에서 DDG(X)까지
미 해군은 2000년 1월 계획 중이던 차세대 구축함 DD-21에 전기 구동 추진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 사업은 이름이 여러 번 바뀌어 2006년 4월 DDG-1000이 되었고, 그 배가 오늘의 줌왈트급입니다.
2025년 CRS 보고서에 따르면 DDG-1000 설계에는 통합 전기 구동 추진 체계를 비롯한 새 기술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추정 만재 배수량은 15,656톤이고, 첫 배는 2016년 9월 7일 취역했습니다.
기존 DDG-51 쪽에서도 전기와 냉각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해군은 2017 회계연도에 DDG-51 조달을 Flight III 설계로 바꾸었고, 이 설계에는 새 SPY-6 레이다와 그에 따른 배의 전력·냉각 계통 변경이 들어갔습니다.
다음 구축함 DDG(X)는 처음부터 통합 전력 체계를 전제로 그려졌습니다. 해군은 DDG(X)를 DDG-51 Flight III보다 공간, 적재 무게, 전력, 냉각 용량의 성장 여유가 큰 배로 구상해 왔고, 첫 배는 2030년대 초 조달을 계획해 왔습니다.
CRS 자료에 실린 해군 예산 문서는 미래 대형 수상 전투함이 지향성 에너지 무기를 실을 수 있어야 하고, 변하는 부하를 다룰 효율 높은 통합 전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풀어야 할 일도 남았습니다. 2025년 6월 미 회계감사원(GAO) 보고서는 해군이 IPS를 육상 시험장에서 모의할 계획이지만 그 결과가 상세 설계 전에 다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2025년 12월 22일 미 행정부가 새 유도미사일 전함 BBG(X) 사업을 발표한 뒤에는, 해군이 DDG(X) 작업을 멈출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레이저와 맞닿는 점: 전기가 곧 탄창
함정 레이저는 이 전기 이야기와 바로 이어집니다. 2026년 CRS 보고서는 해군의 고체 레이저(solid state laser, SSL)를 배 전체의 전기 공급에서 힘을 얻는 무기로 설명합니다. 레이저가 계속 작동하고 배에 전기를 만들 연료가 있는 한 되풀이해 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군은 2014년 처음으로 시제 SSL을 배에 설치했습니다.
함정의 대공 미사일과 근접 방어 기관포는 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정해진 수만큼만 쏠 수 있습니다. CRS는 이것을 탄약고 깊이(depth of magazine)의 한계라고 부르고, 레이저가 이 한계를 크게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레이저를 싣는 조건도 배의 전기와 냉각입니다. 의회가 살펴볼 쟁점에도 BBG(X) 말고 해군이 지으려는 다른 배들에 레이저를 실을 공간·무게·전력·냉각 용량이 있는지가 들어갔습니다.
해군은 BBG(X)에 빔 출력 300 kW 또는 600 kW의 레이저 둘을 싣겠다고 밝혔습니다. 크기·무게·전력(size, weight and power, SWaP)에 냉각을 더한 이 조건이 레이저 장비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전원 장치와 칠러와 냉각과 열 관리에서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
- 구축함과 호위함: 같은 군함인데 이름은 왜 다를까: 이 글에 나온 구축함과 프리깃이 어떤 배인지 봅니다.
- 디젤전기·AIP·핵추진 잠수함: 잠수함은 무엇으로 움직일까: 전기 추진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잠수함의 추진을 봅니다.
- 전자기 레일건: 전기로 물체를 가속한다면: 큰 전력이 필요한 함정 무기의 한 예입니다.
- 터보팬 엔진: 전투기 엔진은 공기를 어떻게 밀어낼까: 함정 가스터빈의 뿌리인 항공기 제트 엔진을 봅니다.
- 전원 장치와 칠러: 레이저 뒤에 있는 장비: 레이저 뒤에서 전기와 열을 다루는 장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