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1년 10월 30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에서 생일 축포가 울렸습니다. 훗날 제임스 7세가 될 사람을 위한 축포였습니다. 그런데 쏘는 순간 포신이 터졌습니다.
너무 센 화약 탓이었고, 이것이 이 대포의 마지막 발사가 되었습니다. 대포의 이름은 몬스 메그(Mons Meg)입니다. 그보다 200여 년 앞서 이 대포는 성을 부수려고 끌고 다니던 첨단 공성포였습니다.
화약은 처음부터 성을 부수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축제의 불꽃이었고, 화살에 매단 불이었습니다. 이 가루는 어떻게 군대의 모양까지 바꾸게 되었을까요?
이 글은 중국의 불화살, 고려의 화통도감, 유럽의 큰 대포와 별 모양 요새, 화승총에서 뇌관까지를 차례로 따라갑니다. 끝으로 '군사 혁명'이라는 말을 두고 역사학자들이 어디서 갈리는지 봅니다.
불꽃놀이에서 불화살로
1세기에 중국 사람들이 간단한 형태의 화약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역사 교육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은 종교 축제 때 대나무 통에 섞은 가루를 채워 불 속에 던졌습니다. 어떤 통은 터지지 않고 불 밖으로 튀어 나갔을지 모릅니다.
그다음 걸음은 통을 화살에 묶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활로 쏘았지만, 사람들은 곧 통이 스스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된 로켓을 처음 썼다는 기록의 해는 1232년입니다.
그때 중국과 몽골은 전쟁 중이었습니다. 카이켕(Kai-Keng) 싸움에서 중국 쪽은 "날아가는 불의 화살"로 몽골 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불화살이 무기로서 얼마나 쓸모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몽골 군에게 준 심리적 충격은 컸을 것으로 봅니다.
그 뒤 몽골도 자기 로켓을 만들었고, 로켓을 유럽으로 퍼뜨렸을 수 있습니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유럽에는 로켓 실험 기록이 많이 남았습니다. 영국의 수도사 로저 베이컨(Roger Bacon)도 화약을 개량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로켓은 16세기에 들어 무기로는 잘 쓰이지 않게 되었고, 불꽃놀이에는 계속 쓰였습니다. 그사이 화약은 다른 길로 퍼져 나갔습니다. 성을 부수는 대포와 보병이 손에 든 총입니다. 로켓이 다시 무기가 된 이야기는 고체 로켓과 액체 로켓에서 이어집니다.
고려의 화약: 최무선과 화통도감
우리나라에서 화약과 화약 무기를 처음 만들어 쓴 사람은 고려 말의 무관 최무선(1326~1395)입니다. 그가 화약에 매달린 까닭은 왜구의 노략질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가 왜구를 막으려면 화약과 총이 절실하다고 깨닫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적습니다.
화약을 이미 만들어 쓰던 곳은 중국이었습니다. 최무선은 중국에서 배우기로 했고, 중국 강남 지방에서 온 이원(李元)을 만나 화약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원은 원나라의 염초 기술자였습니다.
1377년(우왕 3),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과 화기를 만드는 임시 관청인 화통도감(火筒都監)이 세워졌습니다. 이곳에서 만든 화기의 가짓수는 같은 백과사전 안에서도 항목마다 다릅니다. 화통도감 항목은 20여 종, 최무선 항목은 18가지로 적습니다.
그 목록에는 대장군·이장군·삼장군 같은 총포와 화전 같은 발사물이 있습니다. 로켓 무기인 주화(走火)도 들어 있습니다.
무기만 만든 것도 아닙니다. 화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화통방사군(火桶放射軍)도 따로 조직했습니다. 1380년(우왕 6) 왜구가 배 500여 척으로 금강 어귀의 진포로 들어오자, 최무선은 화기로 무장한 전함을 이끌고 나가 이들을 격파했습니다.
1383년(우왕 9)의 진도 싸움에서도 화기가 큰 위력을 냈습니다. 화통도감은 1388년(창왕 즉위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최무선이 남긴 책 『화약수련법』은 오늘 전하지 않습니다.
성을 부수는 대포
다시 에든버러성으로 가 보겠습니다. 몬스 메그는 무게 6톤의 공성포이고, 이름은 이 포를 만든 벨기에 도시 몽스(Mons)에서 왔습니다. 스코틀랜드 역사환경청(Historic Environment Scotland)은 1457년 부르고뉴의 '선량공' 필리프 공작이 이 포를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에게 선물했다고 설명합니다.
몬스 메그는 150 kg짜리 돌 포탄을 2마일까지 날릴 수 있었고, 당시에는 첨단 군사 기술로 여겨졌습니다. 록스버러, 덤바턴, 노럼의 성을 칠 때 실제로 쓰였습니다. 그 뒤 제임스 5세의 해군에서 싸움을 마치고 1550년 무렵 물러났습니다.
이런 대포가 겨눈 것은 성벽이었습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포위에서 큰 대포가 어떤 몫을 했는지는 같은 묶음의 글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 거대한 대포와 천 년 성벽」에서 다룹니다.
몬스 메그의 마지막은 이 글의 첫 장면 그대로입니다. 1681년의 축포에서 포신이 터졌습니다. 성을 부수던 힘이 포 자신을 부술 수도 있었던 셈입니다.
대포에 맞선 성: 별 모양 요새
성을 쌓는 쪽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미국 세인트오거스틴의 카스티요 데 산마르코스(Castillo de San Marcos)는 위에서 보면 네모꼴의 네 모서리마다 마름모꼴 돌출부가 튀어나온 별 모양입니다. 미 국립공원청(NPS)은 이 별 모양 설계가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고, 건축이 기술에 맞춰 바뀐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화약 무기는 성에 두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포탄을 견디거나 피할 것, 그리고 성 위에 대포를 올려 공격자를 물리칠 것입니다. 그 답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인 것이 성벽에 모난 돌출부, 곧 능보(稜堡, bastion)를 덧붙인 능보식(bastion system)이었습니다.
능보는 적이 다가오거나 몸을 숨길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만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런 요새를 설계하는 기술자는 기하학에 밝아야 했습니다.
카스티요는 미국에 남은 유일한 17세기 군사 건축이자 가장 오래된 석조 요새이고, 보방(Vauban)식 요새의 좋은 예입니다. 영국군이 이곳을 포위했을 때 1,500명이 넘는 사람이 51일 동안 이 안에 머물렀습니다.
벽 재료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코키나(coquina)라는 가볍고 구멍이 많은 석회암으로 지었습니다. 화강암이나 벽돌이었다면 포탄에 맞은 벽이 조각나 튀었겠지만, 이 벽에서는 포탄이 돌 속으로 파고들어 박혔습니다.
국립공원청은 이 모습을 스티로폼에 박히는 비비탄에 견줍니다. 실제로는 벽 재료만으로 버틴 것이 아닙니다. 두꺼운 벽과 함께, 대포를 견디고 대포를 올리려고 짠 별 모양 자체가 이 요새의 답이었습니다.
손에 든 화약 무기: 화승총에서 수석총까지
대포가 성벽을 바꿨다면, 보병의 손에는 총이 들렸습니다. 가장 단순한 총의 발화 장치는 화승총(matchlock)입니다. 이름처럼 불붙은 심지(화승)를 쓰는 총으로, 버지니아주 역사자원부(DHR)가 소개하는 발굴 유물을 보면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17세기 내내 쓰였습니다.
17세기 초 잉글랜드에서는 부싯돌로 불을 내는 '잉글리시 록(English lock)'이 퍼졌습니다. 가장 이른 참된 수석총(flintlock)으로 꼽히는 장치입니다. 수석총은 그 뒤 오랫동안 보병의 무기였고, 1840년대 초~중반 포트 스콧(Fort Scott)의 보병 부대가 받은 무기도 .69 구경 수석총 머스킷이었습니다.
수석총을 밀어낸 것은 1830년대에 나온 작은 황동 뇌관(percussion cap)입니다. 뇌관 안에 불을 내는 약이 들어 있어 부싯돌도, 따로 붓는 점화용 화약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수석총은 차츰 낡은 무기가 되었습니다.
총 하나로 보병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병 대형에서는 오랫동안 긴 창을 든 창병이 중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역사학자 Stephen Morillo는 총구 끝에 칼날을 끼우는 총검(bayonet)이 나온 뒤에야 머스킷병이 창의 도움 없이 기병 돌격을 맞설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포트 스콧의 해설은 그곳의 총검이 실용보다 심리적인 무기에 가까웠다고 덧붙입니다.
'군사 혁명'이라는 이름과 논쟁
대포, 요새, 머스킷이 한꺼번에 바뀐 이 시대에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습니다. 역사학자 Michael Roberts가 1956년 벨파스트에서 낸 『The Military Revolution, 1560-1660』에서 '군사 혁명(Military Revolution)'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대략 1450년에서 1800년 사이 서유럽 나라들에 꾸준히 군사적 이점을 준 전쟁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무리 지은 보병이 로마 시대 뒤 처음으로 전장의 중심에 서고 중장갑 기병이 밀려났습니다. 요새와 공성의 방식이 빠르게 바뀌었고, 군대의 크기가 꾸준히 커졌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핵심 변화에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툼은 왜 그렇게 되었느냐에서 시작합니다.
한쪽 끝에는 기술을 원인으로 보는 설명이 있습니다. Morillo가 요약한 Geoffrey Parker의 주장(1988)에서는 머스킷을 든 보병이 중기병의 돌격을 무너뜨렸고, 대포가 중세의 성을 쓸모없게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나온 낮고 기하학적인 요새, 곧 트라스 이탈리엔(trace italienne)은 긴 포위전을 다시 불렀고 더 큰 군대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군대를 모으고 먹이느라 정부가 더 효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반대쪽의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보병의 부활을 머스킷 덕으로만 돌리면 창병이 맡은 중심 역할을 놓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대형을 유지한 채 기병에게 나아간 첫 보병은 총이 아니라 창을 든 스위스 창병이었습니다.
군대가 커진 방식을 두고도 이견이 있습니다. John Lynn은 군대가 한 번에 커진 것이 아니라 사이사이 멈춘 기간을 두고 세 단계로 커졌다고 봅니다. 아메리카에서 유럽이 우위를 얻는 데는 질병이 큰 몫을 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에서 유럽의 군사적 우위는 산업화의 산물이고 19세기에야 나타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총보다 먼저 온 것
Morillo는 1995년 논문에서 일본 전국 시대(대략 1477~1600년)를 비교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유럽의 두 설명을 1543년의 일본에 대 보면 서로 다른 예측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처음 사들인 총은 1543년의 두 자루였고, 일본의 첫 총은 그것을 본떠 만든 것이었습니다.
Morillo가 읽은 일본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군대의 크기와 구성은 1543년 전에 이미 크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머스킷이 전장에 크게 나타난 것은 1560년대 초였고, 1560년에도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에서조차 "아직 매우 제한적으로" 쓰였습니다.
총은 아래에서부터 스며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강한 다이묘의 뜻으로 사들였고, 나중에는 직접 만들었습니다.
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약 무기에 견디도록 설계한 첫 성으로 꼽히는 아즈치성은 노부나가가 1576년에 짓기 시작해 세 해 뒤 끝냈습니다. 유럽 설명의 열쇠로 꼽히는 대포가 일본의 군사 변화에는 영향이 적었다는 것이 Morillo의 판단입니다.
그의 결론은 짧습니다. "일본에서는 더 나은 정부가 총보다 먼저였다."
이 해석은 유럽으로 되돌아갑니다. 중세 말 유럽에서 더 강해진 정부가 효과적인 보병 대형을 먼저 만들었고, 화약 무기는 그렇게 준비된 군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다만 Morillo도 화약 무기가 도입된 뒤에는 역사의 흐름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고 씁니다.
두 설명은 화약의 힘을 부정하느냐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어떤 순서로 놓느냐에서 갈립니다.
화약 혁명이 남긴 것
연표에 놓고 보면 화약이 군대를 바꾼 길은 한 줄이 아닙니다. 1232년의 불화살과 1377년의 화통도감은 동아시아의 일이고, 15세기의 별 모양 요새와 1457년의 몬스 메그는 유럽의 일입니다. Morillo의 읽기로는 총이 1543년 일본에 들어왔을 때 그 땅의 군대는 이미 커지고 있었습니다.
바뀐 것은 무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새 요새는 낮고 기하학적인 모양을 택했습니다. 보병 대형에서는 창병이 오래 중심을 지켰고, 총검이 나온 뒤에야 머스킷병이 창 없이 기병을 맞설 수 있었습니다.
Parker의 설명대로라면 커진 군대를 대느라 정부도 바뀌었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지금도 학자마다 답이 다릅니다.
화약 무기 자체도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17세기 초의 이른 수석총에서 1830년대의 뇌관까지만 해도 200년 안팎이 걸렸습니다. 몬스 메그처럼 너무 센 화약에 포신이 터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새 무기는 한계와 함께 왔고, 그 한계를 줄이는 데 긴 시간이 들었습니다. 무기 기술의 다른 큰 갈림길은 군사기술의 전환점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
-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 거대한 대포와 천 년 성벽」: 큰 대포가 천 년 성벽 앞에 선 포위전을 세 사람의 기록으로 따라갑니다.
- 「크레시 전투와 장궁: 활이 기사를 이긴 이야기의 실제」: 화약 이전에 보병이 기사와 맞선 이야기입니다.
- 자주포: 포가 스스로 움직이면 달라지는 것: 오늘의 대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봅니다.
- 레이저 무기의 역사: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 새 무기가 한계를 줄여 온 또 하나의 긴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