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공으로 빠르게 나는 전투기 조종석을 떠올려 봅시다. 속도와 고도를 확인하려고 계기판을 잠깐 내려다보는 사이에도 바깥 풍경은 크게 바뀝니다. 그 짧은 순간을 줄이려고 항공기는 정보를 조종사의 눈높이로, 그다음에는 조종사의 헬멧으로 올려 왔습니다.

헬멧 장착 시현기(helmet-mounted display, HMD)는 헬멧에 작은 화면과 광학 부품을 달아, 조종사가 어디를 보든 눈앞에 정보와 영상을 띄우는 장치입니다. 이 글은 HMD가 어떤 부분으로 이루어지는지, 왜 상을 눈앞이 아니라 먼 곳에 맺는지, 그리고 이 장치가 어떤 길을 거쳐 왔고 무엇이 아직 어려운지를 미 육군 항공의학연구소(USAARL)가 펴낸 공개 책으로 따라갑니다.

고개를 숙이는 몇 초

계기판처럼 고개를 숙여 보는 화면을 헤드다운(head-down) 표시라고 합니다. 미 육군 항공의학연구소의 책은 땅 가까이 빠르게 나는 항공기에서는 계기를 잠깐 내려다보는 시간마저 상황 인식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계기와 바깥을 번갈아 보면 정보를 받는 흐름이 거듭 끊기고, 눈과 머리를 움직이고 초점을 다시 맞추는 데 시간이 듭니다.

이 단점에서 헤드업 시현기(head-up display, HUD)가 나왔습니다. HUD는 앞 유리 안쪽에 고정한 투명한 유리나 플라스틱판을 씁니다. 조종사는 고개를 든 채 바깥을 보면서, 그 판에 비친 중요한 비행 자료를 함께 읽습니다.

하지만 HUD는 앞쪽에 붙박여 있습니다. 사방을 살피느라 머리를 계속 돌려야 할 때는 쓸모가 줄어듭니다. 화면을 아예 머리에 달자는 생각에는 이 한계가 큰 몫을 했습니다.

헬멧에 단 화면의 네 부분

가장 짧은 정의로 HMD는 머리에 단 영상원과 시준 광학입니다. 미 육군 회전익 항공에서는 여기에 머리 추적기를 더해 네 부분으로 봅니다. 영상원, 표시 광학, 헬멧, 머리·눈 추적기입니다.

헬멧 장착 시현기의 네 부분을 보인 블록 도표. 헬멧이라는 큰 틀 안에서 1번 영상원(센서 영상을 보이는 작은 화면)이 2번 표시 광학(상을 키우고 초점을 맞추는 렌즈)으로 이어지고, 빛은 부분 반사하는 결합기나 바이저에서 꺾여 눈으로 들어간다. 바깥 풍경의 빛은 결합기를 지나 눈에 함께 닿는다. 아래에 4번 머리 추적기가 머리가 향한 방향을 재어 기체의 센서를 같은 방향으로 돌리고, 센서 영상은 다시 영상원으로 돌아간다. 값이 없는 개념 그림이다
헬멧 장착 시현기의 네 부분: 영상원, 표시 광학, 헬멧, 머리 추적기 (도표)(도표)

영상원은 센서 영상을 다시 보여 주는 작은 표시 장치입니다. 초기에는 작은 브라운관(CRT)이나 영상 증폭관을 썼습니다. 표시 광학은 이 화면의 상을 키우고 초점을 맞춰 눈으로 보냅니다. 헬멧은 원래의 보호 기능을 그대로 하면서, 영상원과 광학을 다는 받침이 되었습니다.

눈앞의 마지막 부품은 결합기(combiner)라고 부르는 부분 반사 소자입니다. 바깥 세상은 결합기를 지나 그대로 보이고, 영상원의 상은 결합기에서 반사되어 눈에 들어옵니다. 밤에 불 켠 방에서 창밖을 보면 바깥 풍경과 유리에 비친 방 안이 겹쳐 보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실제 결합기는 그런 우연한 반사가 아니라, 정해진 상을 정해진 자리에 보이도록 만든 광학 부품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결합기 대신 바이저 자체를 쓰는 방식도 있습니다. 헬멧 위나 옆에 둔 영상원의 상을 광학으로 옮겨 바이저에 비추면, 바이저가 그것을 눈으로 되비춥니다. 이 바이저 투사 방식은 더 가볍고, 무게중심이 낫고, 눈과 광학 사이에 여유 공간이 더 생기고, 시야를 덜 가립니다. 다만 상이 겹쳐 보이는 고스트 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 상을 멀리 띄울까

눈앞 몇 센티미터에 작은 화면을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요? 눈이 받는 빛이 점점 벌어지며 들어오는, 가까운 물체의 빛이 됩니다. 작은 액정 화면을 맨눈으로 보려면 책 읽는 거리보다 가까이 둘 수 없어서, 헬멧에는 맞지 않습니다.

가까운 화면과 멀리 맺힌 상을 견준 도표. 왼쪽은 눈 가까이 놓인 작은 화면에서 나온 빛이 점점 벌어지며 눈에 닿아, 눈이 화면과 하늘 사이에서 초점을 다시 맞춰야 한다. 오른쪽은 영상원의 빛이 광학을 지나 거의 나란한 빛이 되어 눈에 닿아, 먼 곳에서 온 빛처럼 눈이 먼 곳에 초점을 둔 채 쉴 수 있다. 축척과 값이 없는 개념 그림이다
눈 가까운 화면의 빛은 퍼지고, 광학을 거친 빛은 거의 나란하게 들어옵니다 (도표)(도표)

그래서 광학이 상을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바꿉니다. 이렇게 실제 화면이 아닌 곳에 맺힌 상을 허상(virtual image)이라고 하고, 2009년 책이 나올 때 배치되어 있던 HMD는 모두 허상을 만들었습니다. 광학적으로 무한히 먼 곳 가까이에 맺힌 허상은 이론상 눈을 쉬게 해 피로를 줄이고, 나이 든 사용자도 초점을 맞추기 쉽게 합니다.

책상에서 책을 읽다가 창밖의 먼 산을 보면 눈이 초점을 다시 맞추느라 잠깐 걸리는 것과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상이 바깥 풍경과 같이 멀리 있으면 그 전환이 줄어듭니다. 다만 실제 효과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허상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교정 렌즈 없이 쓸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멀리 맺힌 상에는 덤도 있습니다. 시준된 상, 곧 거의 나란한 빛으로 들어오는 상은 진동 때문에 망막의 상이 흐려지는 효과를 줄입니다. 전투기의 HUD도 초점과 정렬을 무한에 가깝게 맞춰 먼 바깥 물체와 겹치게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머리를 따라가는 센서

비행 상태 같은 정보만 띄운다면 헬멧이 어디를 향하는지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바깥을 찍은 센서 영상을 띄우려면 사정이 다릅니다. 조종사가 바라보는 방향을 계속 다시 계산해, 기체의 센서를 그쪽으로 돌리거나 그 방향에 맞는 영상을 골라야 합니다. 이 일을 머리 추적기(head tracker)가 맡습니다.

머리 추적기와 헬멧 화면을 묶은 체계를 군에서는 흔히 시각 결합 체계(visually coupled system, VCS)라고 부릅니다. 머리의 방향이 입력이 되어 센서와 기체 장비로 가고, 헬멧 화면은 그 결과를 기호와 영상으로 되돌려 줍니다. 비행 전에는 센서의 시선과 사람의 시선을 맞추는 보어사이팅(boresighting)이라는 보정을 거칩니다. 이런 추적이 들어가기 때문에 HMD는 더 비싸고 복잡해집니다.

AH-64 아파치 헬기의 IHADSS가 좋은 예입니다. 헬멧에 단 적외선(infrared) 머리 추적 장치가 조종사의 머리 움직임을 따라, 기수에 달린 열영상 센서(FLIR)를 같은 방향으로 돌립니다. 그 영상은 헬멧 화면에 방위, 고도 같은 비행 기호와 함께 나타납니다.

화면을 몇 개의 눈으로 보느냐도 나뉩니다. 단안(monocular)은 한 눈으로만 영상을 봅니다. 바이오큘러(biocular)는 두 눈에 똑같은 영상을 보여 주고, 바이노큘러(binocular)는 떨어진 두 센서의 영상을 눈마다 따로 보여 주어 원근을 줍니다. IHADSS는 단안 방식입니다.

특허에서 전투기까지

HMD의 공식 역사는 미국 버몬트주의 화학 기술자 Albert Bacon Pratt에서 시작합니다. Pratt는 1차 대전 중인 1915~1917년에 사수가 쓰는 헬멧 조준 장치로 미국과 영국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 조준기는 실제로 배치되지는 않았습니다.

헬멧 장착 시현기의 공개 연표. 1915~1917년 Albert Pratt가 헬멧 조준기로 미국·영국 특허를 받았으나 배치되지 않음, 1970년대 AH-1G 코브라 헬기의 머리 추적 조준기와 무한에 초점을 맞춘 빨간 점, 1970년대 미 해군 F-4J·F-4N의 VTAS와 그 10년 안의 중단, 1980년대 초 AH-64 아파치의 IHADSS 배치, 2007년 4월 10일 F-35 헬멧의 첫 비행, 2024년 2월 26일 제조사의 3,000번째 F-35 Gen III 헬멧 납품 발표. 아래 띠에 날짜가 적히지 않은 JHMCS(F-15, F-16, F-18)가 있다. 간격은 축척이 아니다
특허에서 전투기까지: 미 육군 항공의학연구소 책(2009)과 제조사 발표(2024)에 적힌 날짜만 옮겼습니다 (도표)(도표)

실제로 쓰인 이른 예는 1970년대 미 육군 AH-1G 코브라 공격 헬기의 헬멧 조준기입니다. 기계식 연결로 머리의 움직임을 따라갔고, 오른쪽 눈앞의 작은 반투명 창에 빨간 점을 비췄습니다. 그 점은 무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권총·소총에 다는 간단한 빨간 점 조준기와 비슷했습니다.

코브라 조준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 해군은 F-4J·F-4N 팬텀 전투기에 전자광학식 머리 추적 체계인 VTAS를 들였습니다. VTAS는 기술의 한계 때문에 같은 1970년대에 중단되었습니다.

전환점은 AH-64 아파치였습니다. 그전까지 항공 헬멧의 주된 일은 충격과 소음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1981년 미 육군이 배치한 새 공격 헬기에는 헬멧이 조종사와 기체를 잇는 장치가 되어야 했고, 1970년대 말 Honeywell이 개발한 IHADSS가 1980년대 초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IHADSS를 실제 운용에 들어간 첫 완전한 시각 결합 체계이자, 헬멧과 광학을 한 체계로 함께 개발한 첫 HMD로 적었습니다.

HMD가 점점 받아들여진 데에는 헬기의 몫이 컸습니다. 헬기에서는 HMD가 큰 G 기동이나 사출할 때의 바람 충격을 견딜 필요가 없습니다. 고정익에서는 미 공군과 해군이 F-15, F-16, F-18에 단안 바이저 투사 방식의 JHMCS를 들였습니다.

F-35 헬멧(HMDS)은 2007년 4월 10일, F-35의 10번째 시험 비행에서 처음 날았습니다. 책이 나온 2009년에 이미 F-35는 전용 HUD 없이 나는 첫 전술 전투기가 되고 헬멧이 그 일을 맡는다고 적혔습니다.

2024년 2월 26일, 헬멧을 만드는 Collins Aerospace와 Elbit Systems of America의 합작사는 3,000번째 F-35 Gen III 헬멧을 납품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회사는 이 헬멧을 조종사의 주 표시 장치로, 낮과 밤에 비행·전술·센서 정보를 보여 주는 장치로 설명합니다.

무겁고, 늦고, 눈을 붙드는 화면

눈앞에 늘 정보가 떠 있으면 좋기만 할까요? 새 HMD가 주는 개선에는 늘 대가가 따릅니다. 임무에 중요한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타협을 요구하면, 그 HMD는 결국 쓰이지 않습니다.

첫째는 무게입니다. 민간 조종사의 헤드셋은 보통 340~510 g인데, HMD는 머리가 받치는 무게를 적어도 454 g 늘립니다. 군 조종사의 헬멧형 HMD는 1.8 kg을 넘습니다. 광학이 눈앞에 와야 해서 늘어난 무게가 머리의 본래 무게중심보다 위와 앞에 실리기 쉽고, 비행이 길어지면 근육 피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지연(latency), 곧 머리 위치를 재서 센서에 알리고 센서가 새 방향으로 돌아 장면을 잡아 그 영상을 헬멧에 띄우기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책에 따르면 이 지연은 보통 수백 밀리초이고 가장 큰 몫은 센서가 도는 시간입니다. 1/3초, 곧 300 ms 가까이 되거나 그보다 길면 성능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 지연은 멀미의 원인으로도 지목되어 왔습니다.

셋째는 HUD에서 물려받은 문제입니다. 조종사가 화면에 지나치게 주의를 쏟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덜 보는 주의 쏠림(attention capture)이 그 하나입니다. 앞 유리 안쪽 HUD의 주의 쏠림은 활주로 침범을 놓친 일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기호나 영상이 바깥의 중요한 물체를 가릴 수도 있어서, 기호 수를 줄이고 권장 크기 안에 두는 것이 대책으로 꼽힙니다.

레이저와 맞닿는 점: 보는 방향을 따라가기

HMD의 머리 추적기는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을 재고, 기체의 센서를 그 방향으로 돌립니다. 방향을 재는 일과 그 방향으로 무언가를 돌리는 일이 한 고리로 묶여 있는 셈입니다.

레이저 무기에도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빔 지향기는 김발(gimbal)이라는 두 축 받침 위에서 방위각과 고각을 바꾸며 빔을 먼 한 점에 붙들어 두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김발과 조준·추적: 빔을 한 점에 붙들어 두는 일에 있습니다. 돌리는 것이 열영상 센서냐 레이저 빔이냐는 다르지만, 방향을 재고 따라가는 일이 늦거나 흔들리면 문제가 된다는 점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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