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걸프전이 끝난 뒤 F-117 나이트호크는 언론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1993년 미 국방부는 스텔스(stealth) 항공기와 레이저 유도 폭탄의 효과를 앞으로의 무기 조달을 정하는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쟁 뒤 이 공중전을 다시 따져 본 미 회계감사원(GAO)은 일반의 인상과 달리 전략 표적에 떨어진 폭탄의 약 95%가 유도되지 않는 폭탄이었다고 적었습니다.

두 이야기는 어떻게 함께 맞을까요? 쿠웨이트 침공에서 휴전까지의 경과를 짧게 짚고, 43일 공중전의 규모를 본 다음, 스텔스기 F-117과 레이저 유도 폭탄이 왜 그렇게 주목받았는지 살핍니다. 그리고 전쟁 뒤에 나온 주장과 GAO가 자료로 확인한 값을 나란히 놓습니다.

침공과 마감 시한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 끝났을 때 이라크는 나라를 지켜 냈지만 큰 빚을 졌습니다. 1990년 이라크가 걸프 지역 채권국에 진 빚은 약 370억 달러였습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에 빚을 없애 달라고 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1990년 7월에는 석유가 갈등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 할당을 어기고 원유를 너무 많이 팔아 값을 떨어뜨렸다고 비난했습니다. 쿠웨이트가 국경에 걸친 루마일라 유전에서 석유를 훔친다고도 했고, 부비얀섬과 와르바섬을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군 10만 명이 쿠웨이트로 넘어가 몇 시간 만에 나라를 점령했습니다. 미국 국무부 역사실은 미국이 위협은 알았지만 실제 침공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8월 28일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자기 나라의 열아홉 번째 주라고 선언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침공 당일 결의 660호로 침공을 규탄하고 이라크군이 8월 1일의 자리로 즉시, 무조건 물러나라고 요구했습니다. 표결은 찬성 14, 반대 0이었고 예멘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8월 6일 결의 661호가 경제 제재를 정했고, 결의 663호는 쿠웨이트 합병을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은 며칠 만에 국제 연합군을 꾸리는 일에 나섰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합의해 반도를 지킬 미군을 사우디에 보냈습니다. 10월 30일까지 부시 행정부는 필요하면 힘으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기로 했습니다.

11월 29일 결의 678호가 나왔습니다. 결의는 이라크에 "마지막 기회"를 주고, 1991년 1월 15일까지 앞의 결의를 다 이행하지 않으면 쿠웨이트 정부와 협력하는 나라들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표결은 찬성 12, 반대 2(쿠바·예멘), 기권 1(중국)이었습니다. 연합군은 아랍 나라 여럿을 포함해 34개국의 군대로 이뤄졌습니다.

43일의 공중전

철수 시한이 지나자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은 하늘에서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입니다. 시작 날짜는 자료에 따라 1월 16일(국무부 역사실) 또는 1월 17일(GAO)로 적힙니다. 전쟁은 2월 28일 이라크의 패배와 쿠웨이트 철수로 끝났습니다.

두 줄 연표. 1990년 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결의 660호(즉시 철수), 8월 6일 결의 661호(경제 제재), 8월 28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19번째 주라고 선언, 11월 29일 결의 678호(1991년 1월 15일 뒤 '필요한 모든 수단'). 1991년 줄: 1월 15일 철수 시한, 1월 16일 또는 17일 공중전 시작(국무부 역사실 / GAO), 2월 24일 지상전 시작, 2월 28일 전투 끝, 3월 2일 결의 686호(휴전 조건). 아래 막대는 1월 17일부터 2월 28일까지 43일의 공중전과 마지막 100시간의 지상전을 보여 주며, 길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침공에서 휴전까지, 1990~1991년 (도표)(도표)

사막의 폭풍은 주로 43일 동안 이어진 공중전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뒤 처음으로 미국이 항공력을 크게 쓴 전쟁이었고, 주된 지상전은 마지막 100시간뿐이었습니다. 지상전은 2월 24일 시작해 나흘 동안 이어졌고, 연합군은 쿠웨이트시를 되찾았습니다.

규모는 컸습니다. 미군이 가진 고정익기 거의 모든 기종이 나서 공대지 출격(sortie) 약 4만 회와 지원 출격 5만 회를 했습니다. 지원 출격은 공중급유, 전자 방해, 전투 초계 같은 임무입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현지의 미군 전투기는 약 1,600대였습니다.

미군이 하루에 떨어뜨린 폭탄의 무게는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과 일본에 떨어뜨린 하루 평균의 85%에 맞먹었습니다. 계획자들은 전략 표적을 지휘·통신, 전력, 지도부, 석유, 핵·생물·화학 시설, 스커드 미사일 등 12묶음으로 나눴습니다.

연합군은 24시간 안에 하늘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지휘통제 시설, 발전소, 정유소, 군수 공장, 미사일 시설 같은 전략 목표를 폭격했고, 그 뒤 쿠웨이트의 이라크군을 겨냥했습니다. 이라크는 보복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연합군 기지에 미사일을 쏘았지만, 이스라엘은 맞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밤에만 난 스텔스기

이 공중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비행기는 F-117A 나이트호크였습니다. 미 공군은 이 비행기를 저피탐 스텔스 기술을 쓰도록 설계된 세계 첫 작전용 항공기로 소개합니다. 레이다에 덜 보이게 만든 1인승 쌍발기로, 무장은 기체 안에 싣습니다.

첫 F-117A는 1982년에 인도됐고, 부대는 1983년 10월 작전 능력을 갖췄습니다. 마지막 기체는 1990년 여름에 인도됐습니다. 스텔스기가 무엇을 줄이고 무엇은 줄이지 못하는지는 스텔스기: 정말 보이지 않는 비행기일까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공중전이 시작될 때 현지에는 F-117 36대가 있었고, 전쟁 동안 모두 42대가 갔습니다. 이 비행기는 주로 고정된, 흔히 가치가 높은 지휘통신·지도부·핵생물화학 표적에 쓰였습니다. 함께 많이 쓰인 F-111F 64대와 합쳐 43일 동안 전략 표적에 유도 폭탄을 적어도 730만 파운드 떨어뜨렸습니다.

미 공군은 1991년 9월 백서에서 F-117이 첫날 밤 현지 항공기의 2.5%였지만 전략 표적의 31% 넘게 맞혔다고 했습니다. 1995년 공군장관 보고서는 전략 출격의 2%로 전략 표적의 40%를 파괴했다고 적었습니다. F-117은 이 전쟁에서 잃거나 피해를 입은 기체가 하나도 없는 유일한 기종이기도 했습니다.

GAO는 이 기록에 단서를 붙였습니다. F-117은 다른 공대지 기종보다 출격이 적었고, 밤에만 날았습니다. 전체 피해율로 셈하면 F-117만큼 임무를 한 기종이라면 스텔스든 아니든 가장 그럴듯한 손실 수는 0이었다는 것입니다.

8%의 유도탄

또 하나의 주인공은 정밀유도무기(precision-guided munition, PGM), 그 가운데 레이저 유도 폭탄이었습니다.

레이저 유도 폭탄 가운데 페이브웨이(Paveway) 계열은 유도되지 않는 폭탄에 붙이는 유도 키트입니다. 폭탄 앞머리의 탐색기가 표적을 표시한 레이저를 찾고, 꼬리 키트가 폭탄을 표적으로 이끕니다. 표적에 레이저를 비추는 장비가 레이저 표적 지시기(laser designator)입니다. 보통 폭탄에 무엇이 더해지는지는 정밀유도폭탄: 평범한 폭탄에 무엇이 더해질까에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로 보면 유도탄은 소수였습니다. GAO에 따르면 사막의 폭풍에서 쓰인 탄약의 92%가 유도되지 않는 폭탄이었고, 계획 표적에 쓴 탄약 가운데 유도탄은 8%였습니다. 폭탄 수로 세면 전략 표적에 떨어진 폭탄의 약 95%가 비유도탄이었고, 이 비율은 공중전의 주마다 비슷했습니다.

다른 공개 자료는 조금 다른 값을 냅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이 작전에서 정밀유도무기가 탄약 전체의 6%였다고 적었습니다. GAO의 8%는 계획 표적에 쓴 탄약을 센 값입니다.

세 칸 막대 도표. A: 유도탄 8%, 비유도탄 92%(GAO: 쓰인 탄약의 92%가 비유도, 계획 표적에 쓴 탄약의 8%가 유도). 다른 공개 자료(CRS)는 작전에 쓰인 탄약 전체의 6%라고 적었다는 메모. B: 탄약 비용 전체에서 유도탄이 약 84%. C: 한 발 평균 값은 비유도 일체형 폭탄 649달러, 레이저 유도 폭탄 3만 달러 넘음(1:47), 적외선 매버릭 미사일 약 10만 2,000달러이며 C의 막대 길이는 비례한다
적은 유도탄, 큰 비용. 미 회계감사원(GAO)의 1997년 평가 값 (도표)(도표)

적은 몫에 비해 값은 컸습니다. 유도탄은 탄약 전체 비용의 약 84%를 차지했습니다. 비유도 일체형 폭탄은 한 발에 평균 649달러, 레이저 유도 폭탄은 평균 3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1대 47의 차이입니다.

GAO는 조종사와 계획자 면담, 국방부 자료에서 비유도탄이 많이 쓰인 까닭 세 가지를 찾았습니다. 날씨와 폭격 연기가 유도탄에 필요한 조준 센서를 가리거나 막았고, 유도 폭탄이 비싸 재고가 적어 조종사들이 아껴 쓰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전략 표적이 커서 비유도탄으로도 맞았습니다.

쓰임새도 달랐습니다. 유도 폭탄은 강화 벙커나 격납고처럼 작은 점 표적에, 비유도 폭탄은 탄약고처럼 넓은 표적에 주로 쓰였습니다. 조종사들은 적외선·전자광학·레이저 체계가 모두 구름, 비, 안개, 연기, 높은 습도에 크게 떨어졌다고 GAO에 말했습니다. 짐작한 표적이 전차인지 트럭인지 가려내지 못한 일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주장과 자료 사이

GAO의 평가는 1996년 7월 기밀 보고서로 먼저 나왔고, 1997년 6월 국방부가 처음 기밀이던 내용의 약 85%를 풀어 공개판이 나왔습니다. 목적 가운데 하나는 국방부와 제조사가 전쟁 뒤 내놓은 성능 주장이 전쟁 중 자료와 맞는지 보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무거웠습니다. F-117, 토마호크 지상 공격 미사일(TLAM), 레이저 유도 폭탄에 대한 전쟁 뒤 주장 가운데 많은 것이 부풀려졌거나, 오해를 부르거나, 가장 좋은 자료와 맞지 않거나,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왼쪽은 전쟁 뒤 나온 주장, 오른쪽은 GAO가 전쟁 중 자료로 확인한 것이고 화살표로 잇는다. F-117 정확도: 폭탄의 80%가 명중(국방부 Title V 보고서, 제조사는 '전례 없는'이라 함) → 계획된 공격이 표적을 맞힌 비율 41~60%, 보고된 명중의 약 3분의 1은 뒷받침 자료가 없음, 그래도 41~60%는 매우 효과적인 값. F-117의 몫: 첫날 밤 현지 항공기의 2.5%로 전략 표적의 31% 넘게 침(1991년 9월 공군 백서) → 2.5%는 폭탄을 떨어뜨릴 수 없는 항공기까지 센 값, 레이저 유도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229대 가운데 15.7%, I-2000 계열로는 32%. 레이저 유도 폭탄: '한 표적, 한 발'(Paveway III 제조사, 국방부 관리도 씀) → 표본에서 표적마다 적어도 2발, 평균 4발, 그래도 점 표적에 필요한 비유도탄보다 분명히 적음. 토마호크: 발사 성공률 98%(국방부 첫 발표) → 발사 수치일 뿐 실제 효과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함, 어떤 항공기와 달리 조종사를 위험에 두지 않음. 아래에 국방부가 GAO의 결론에 이의를 달지 않고 새 유도 무기와 연구를 들었다는 메모
전쟁 뒤의 주장과 자료가 받쳐 준 것 (도표)(도표)

F-117의 경우, GAO가 옮겨 적은 국방부 Title V 보고서의 값은 폭탄의 80%가 표적을 맞혔다는 것이었고, 제조사 록히드는 이를 "전례 없는" 정확도라고 불렀습니다. GAO 분석에서는 보고된 명중의 약 3분의 1이 뒷받침 자료가 없거나 다른 자료와 어긋났습니다. 계획된 임무에서 폭탄을 실제로 떨어뜨린 확률은 75%였고, 계획된 공격이 표적을 맞힌 확률은 41~60%였고, 이 정도도 매우 효과적인 값이라는 단서가 함께 붙었습니다.

"2.5%"라는 숫자는 다시 세자 달라졌습니다. 그 값은 폭탄을 떨어뜨릴 수 없는 항공기까지 넣은 전체와 견준 것이고, 레이저 유도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229대만 보면 F-117은 15.7%였습니다. 첫날 밤 이라크 방공망이 무너진 것도 F-117 혼자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레이저 유도 폭탄에는 "한 표적, 한 발"이라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가장 앞선 유도 장치(Paveway III)의 제조사가 내세웠고 국방부 관리들도 쓴 표현입니다. GAO 표본에서는 표적마다 적어도 두 발, 평균 네 발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점 표적에 필요한 레이저 유도 폭탄 수는 비유도탄보다 분명히 적었습니다.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는 조종사를 위험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항공기와도 달랐습니다. 다만 국방부가 처음 발표한 발사 성공률 98%는 실제 효과를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것이 GAO의 판단이었습니다. 순항미사일이 어떻게 나는지는 순항미사일: 비행기와 무엇이 비슷할까에 있습니다.

성과도 기록에 남았습니다. GAO는 처음 주장 일부가 부풀려졌어도 이 무기들의 성능은 20세기 미국이 치른 가장 성공한 전쟁이었을지 모르는 결과에 일부 이바지했고, 실전 성능은 전례 없었을 수도 있다고 적었습니다. CRS도 정밀유도무기가 적은 몫으로 여러 중요한 표적을 맞히고 필요한 출격 수를 줄였다고 평가합니다.

전쟁이 남긴 것

GAO가 검토한 항공기의 피해율은 공격 1,000회에 1.7대로, 계획자의 예상과 지난 경험에 비해 매우 낮았습니다. 전쟁 전체로는 48대가 전투 피해를 입었으며 38대를 전투에서 잃었습니다.

GAO 요약판은 연합군 쪽이 입은 사상자는 아주 적었고, 공중전이 이라크의 저항 능력을 무너뜨려 쿠웨이트 해방을 도왔다고 정리했습니다. 이 평가는 공습을 한 쪽의 손실을 센 것입니다. 공습으로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이 입은 피해는 이 글이 연 공식 자료로 규모를 확인하지 못해 숫자를 적지 않았습니다.

성과가 고르지는 않았습니다. 석유와 전력 표적에서는 뚜렷이 성공했지만 이라크 방공, 지휘통신, 보급로에서는 덜했습니다. 핵 관련 시설, 이동식 스커드, 공화국수비대 표적은 성과를 재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이 전쟁의 교훈에는 단서가 붙습니다. 지형과 기후가 대체로 공습에 알맞았고, 연합군은 거의 6개월 동안 배치와 훈련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는 전자 방해 대응을 거의 쓰지 않았고 공중에서 맞선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GAO는 이런 조건이 겹쳐 이 전쟁의 교훈을 앞으로의 상황에 옮기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전쟁은 무기 정책을 움직였습니다. 1993년 국방부의 전력 재검토(Bottom-Up Review)는 레이저 유도 폭탄과 스텔스기를 비롯한 사막의 폭풍 첨단 무기의 효과가 무기 조달 권고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GAO의 세 권고에 부분적으로 동의했고, 결론에 이의를 달지 않은 채 개선된 새 정밀유도무기 도입과 연구를 들었습니다.

GAO가 덜 알려졌다고 본 몫도 있습니다. 비유도 폭탄, B-52 폭격기, A-10 공격기, 공중급유기, 전자 방해기처럼 오래되고 덜 첨단인 체계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항공기와 탄약의 값이 비싸든 싸든 성능과 뚜렷한 관계는 없었다는 것이 GAO의 결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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