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의 레이저 하나를 다른 나라 대학으로 보내려 하면, 운송장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장비가 나라마다 정해 둔 수출 통제 목록에 올라 있는지입니다. 목록에는 총과 미사일만 있지 않습니다. 민간에서도 쓰는 레이저, 센서, 컴퓨터도 한 칸씩 자리를 차지합니다.
뉴스에서 "ITAR 규제"나 "바세나르 체제"라는 말이 나오면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답은 미국의 두 규정과 여러 나라가 함께 쓰는 목록에 있습니다. 두 제도가 무엇을 나눠 맡는지, 어떤 역사에서 나왔는지, 어디까지 효과가 있는지를 법령 원문과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바세나르 체제 공식 누리집으로 차례로 짚어 봅니다.
무기와 이중 용도: 두 갈래의 통제
미국이 수출을 제한하는 대상은 넓습니다. 군수품과 국방 서비스, 이중 용도 물품과 기술, 일부 핵 물질과 기술, 그리고 핵·화학·생물 무기나 그 운반 수단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물품이 들어갑니다. 2021년 CRS 보고서는 쿠바·이란·시리아처럼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하는 나라로 가는 수출도 제한된다고 적었습니다.
이중 용도(dual-use)라는 말이 이 제도의 열쇠입니다. 민간에서도 쓰고 군사적으로도 쓸 수 있는 상품,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리킵니다. 미국 규정은 여기에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에 쓰일 수 있는 것까지 넣고, 순수한 민간 품목도 통제 범위 안에 둡니다.
일은 여러 부처가 나눠 맡습니다. 국무부는 군수품 수출을 규제하고 허가합니다. 상무부는 이중 용도 물품·기술과 일부 군수품을, 재무부는 제재에 따른 수출 제한을 맡습니다. 국무부의 규정이 국제무기거래규정(International Traffic in Arms Regulations, ITAR)이고, 상무부 산업안보국(Bureau of Industry and Security, BIS)이 내는 규정이 수출관리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 EAR)입니다.
전쟁과 냉전이 만든 제도
미국의 현대 수출 통제는 1940년에 시작됐습니다. 의회가 대통령에게 군사 장비와 군수품의 수출을 통제할 권한을 준 해입니다. 미국이 2차 대전에 들어가자 이 권한은 민간 물품까지 넓어졌습니다.
틀을 굳힌 것은 냉전이었습니다. 1949년 의회는 수출통제법(Export Control Act)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해 미국과 유럽의 주요 동맹국들이 세운 협의 그룹에서 다자 수출 통제 조정위원회(Coordinating Committee on Multilateral Export Controls, COCOM)가 나왔습니다. COCOM은 소련과 동유럽으로 가는 수출 제한을 조율했고, 1952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겨냥한 CHINCOM이 따로 생겼습니다.
무기 쪽 법은 따로 자랐습니다. 1976년 법이 1968년의 Foreign Military Sales Act를 고쳐 무기수출통제법(Arms Export Control Act, AECA)이 됐습니다. AECA는 대통령에게 군수품과 국방 서비스의 수출을 통제할 법적 권한을 줍니다. 이중 용도 쪽은 1979년 수출관리법(EAA 1979)이 지금 EAR의 바탕입니다.
법이 끊긴 동안에도 통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4년부터 2018년 수출통제개혁법(Export Control Reform Act, ECRA)이 통과될 때까지 거의 24년 동안, 미국의 수출 통제 체계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으로 유지됐습니다. ECRA는 앞선 법들과 달리 만료일이 없습니다.
냉전이 끝나자 COCOM도 문을 닫았습니다. 바세나르 체제 누리집에 따르면 COCOM은 1994년 3월 31일에 없어졌습니다. 그 자리를 이은 것이 바세나르 체제입니다.
ITAR: 미국 군수품 목록
ITAR의 한가운데에는 미국 군수품 목록(U.S. Munitions List, USML)이 있습니다. 국무장관이 수출과 일시 수입을 통제하려고 지정한 품목의 목록이고, 국무부가 국방부의 동의를 얻어 정합니다. 집행은 국무부 정치군사국 아래의 국방무역통제국(Directorate of Defense Trade Controls, DDTC)이 맡습니다.
목록은 제1분류 화기부터 제21분류까지 21개 분류로 나뉩니다. 분류 하나는 보통 완제품에서 시작해 주요 체계와 장비, 부품과 부속품, 그 분류에 직접 관련된 기술 자료와 국방 서비스 순서로 적힙니다. 별표가 붙은 항목은 주요 군사 장비(Significant Military Equipment, SME)로 지정됩니다.
허가 방식은 상무부의 일부 이중 용도 통제와 결이 다릅니다. USML의 거의 모든 품목은 수출에 허가가 필요합니다. CRS 보고서는 그 허가 요건이 최종 용도나 사용자가 아니라 물품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다고 설명합니다. USML 품목을 제조·수출·중개하는 업체는 그해에 수출을 하든 안 하든 DDTC에 등록하고 해마다 수수료를 냅니다.
부품 하나에도 꼬리표가 따라붙습니다. USML 품목은 목록에 없는 다른 물건에 들어가 합쳐진 뒤에도, 규정이 따로 정하지 않으면 계속 통제를 받습니다. 재수출에서도 차이가 큽니다. EAR은 대부분의 품목에서 통제 대상 미국산 부분이 25%를 넘을 때 재수출 허가를 요구하지만, ITAR은 미국산 군수품이 들어간 완제품이면 그 비율과 상관없이 DDTC의 승인을 요구합니다.
큰 거래는 의회에도 알려야 합니다. AECA 36(b)조에 따라 1,400만 달러 이상의 주요 국방 장비 같은 거래는 마지막 절차 30일 전에 의회에 정식으로 통보합니다. NATO 회원국과 일본·호주·뉴질랜드로 가는 거래는 15일 전입니다. 대체로 의회가 막거나 고치는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행정부는 거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건이 떠난 뒤에도 감시는 이어집니다. ITAR에 따른 수출은 국무부의 블루 랜턴(Blue Lantern) 프로그램으로 최종 사용 감시를 받습니다. 현지 미국 대사관 직원이 업체가 직접 넘기는 거래를 대상으로 허가 전 점검과 선적 뒤 확인을 합니다. AECA는 위반 한 건마다 100만 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둘 다를 정해 두었습니다.
물건만이 아니라 정보도: "수출"의 뜻
ITAR에서 수출은 물건이 국경을 넘는 일만이 아닙니다. 미국 밖으로 군수품을 보내거나 전송하는 일에 더해, 미국 안에서 외국인에게 기술 자료를 넘기는 일도 수출입니다. 이것을 간주 수출(deemed export)이라고 부릅니다. 외국인을 위해 국방 서비스를 하는 일도 그곳이 미국 안이든 밖이든 수출에 들어갑니다.
간주 수출의 범위는 넓게 잡혀 있습니다. 미국 안에서 외국인에게 기술 자료를 넘기면, 그 사람이 국적이나 영주권을 가지고 있거나 가졌던 모든 나라로 수출한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기술 자료는 무엇일까요? 규정은 군수품의 설계, 개발, 생산, 제조, 조립, 운용, 수리, 시험, 정비, 수정에 필요한 정보라고 정합니다. 학교와 대학에서 흔히 가르치는 일반적인 과학·수학·공학 원리와 공개 영역의 정보는 여기에 들지 않습니다. 기능이나 목적에 대한 기본 홍보 정보와 일반적인 체계 설명도 빠집니다.
교과서의 원리와 특정 무기를 만들고 다루는 데 필요한 정보 사이에 선을 그은 정의입니다. 요리책에 실린 일반 조리법과 한 식당의 비밀 조리법을 떠올리면 그 선의 모양이 보입니다. 실제로는 조리법처럼 깔끔하게 갈리지 않습니다. 공개 영역의 뜻은 다른 조항이 따로 정하고, 그 조항까지 함께 읽어야 합니다.
바세나르 체제: 함께 쓰는 목록
한 나라만 막으면 다른 나라에서 같은 물건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 나라가 같은 목록을 쓰기로 한 틀이 바세나르 체제(Wassenaar Arrangement)입니다. 1993년 11월 16일 헤이그에서 COCOM 17개 회원국 대표가 COCOM을 끝내고 새 다자 체제를 세우기로 합의했습니다. 1995년 12월 19일 헤이그 교외의 바세나르에서 설립 합의가 이뤄졌고, 이름도 이 마을에서 따왔습니다.
운영은 1996년에 시작됐습니다. 그해 7월 총회가 기본 문서인 초기 요소(Initial Elements)를 채택했고, 새 통제 목록과 정보 교환은 11월 1일부터 시행됐습니다.
한국은 창립 회원입니다. 1996년 4월 빈의 첫 총회에서 아르헨티나·루마니아와 함께 창립 회원으로 더해졌고, 창립 회원은 모두 33개국이었습니다. 지금 참가국은 42개국입니다.
목적은 재래식 무기와 이중 용도 물품·기술이 오갈 때 투명성과 책임을 높여, 안정을 해치는 무기 축적을 막는 데 있습니다. 테러 집단이 이런 품목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바세나르 체제는 어떤 나라나 나라 무리를 겨냥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목록은 둘입니다. 군수품 목록(Munitions List)은 군사용으로 특별히 설계된 품목을 주요 항목 22개로 나눕니다. 이중 용도 목록(List of Dual-Use Goods and Technologies)은 소재, 전자, 컴퓨터, 통신, 항법, 항공우주 같은 분류로 짜여 있습니다. 지금 목록에는 2025년 12월 총회에서 합의한 개정까지 들어 있습니다.
결정은 각 나라가 내립니다. 어떤 품목의 이전을 허락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각 참가국만의 책임입니다. 참가국은 목록의 품목을 자기 나라 법으로 통제하므로 시행일과 실제 이행 방식이 나라마다 다릅니다. 총회 결정은 모두 합의로 하고, 참가국은 체제 밖으로 간 무기와 일부 이중 용도 품목의 이전·거부를 6개월마다 보고합니다.
COCOM과는 무엇이 다를까요? CRS 보고서는 바세나르 체제를 COCOM을 대신하려고 1996년에 승인된 자발적(voluntary) 수출 통제 체제로 적습니다. COCOM보다 느슨하게 짜였고,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거래를 막을 권한이 없으며, 집행 장치도 없다는 설명입니다.
바세나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CRS는 주요 다자 통제 체제로 호주 그룹(Australia Group),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핵공급국그룹(NSG), 바세나르 체제 넷을 꼽습니다. 호주 그룹은 화학·생물, MTCR은 미사일, NSG는 핵을 맡고, 바세나르는 재래식 무기와 이중 용도를 맡습니다. 미국 USML에서도 끝에 (MT)가 붙은 항목은 MTCR 부속서에 오른 품목입니다.
통제의 한계와 논쟁
수출 통제는 늘 두 목표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CRS는 국가 안보와 수출 경쟁력의 균형이 수십 년 동안 의회와 행정부의 어려운 문제였다고 정리합니다. 해외에서 같은 기술을 구할 수 있다면 통제는 효과가 없고 미국 업체만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69년부터 의회는 통제를 정할 때 그 물건을 해외에서 구할 수 있는지를 따지도록 했습니다.
목록을 다듬는 일도 이어졌습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수출 통제 체계 전체를 검토하는 수출통제개혁구상(Export Control Reform Initiative, ECRI)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감하지 않다고 판단한 부품과 구성품이 USML에서 빠져 상무부 통제 목록으로 옮겨 갔습니다.
모든 수출에 허가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EAR의 적용 범위를 다룬 대목에서 CRS는 2019년 미국 전체 수출 가운데 수출 허가가 필요했던 것이 0.4%, 63억 달러어치였다고 적었습니다. 통제의 무게는 대부분의 거래보다 좁은 몇 갈래의 품목에 실려 있습니다.
레이저와 맞닿는 점: 목록 속의 레이저
레이저는 세 목록 모두에 이름이 나옵니다. USML의 제12분류는 사격 통제·레이저·영상·유도 장비이고, 제18분류는 지향성 에너지 무기(directed-energy weapon, DEW)입니다. 제18분류는 레이저(연속파와 펄스 모두), 입자 빔, 고출력 무선 주파수 같은 비음향 기법을 쓰는 체계를 듭니다.
이중 용도 쪽에도 레이저 칸이 있습니다. 상무부 통제 목록(Commerce Control List, CCL)은 10개 분류로 나뉘고 그 가운데 6번이 "레이저와 센서"입니다. 분류마다 장비·구성품, 시험·생산 장비, 소재, 소프트웨어, 기술의 다섯 무리가 있고, 품목마다 수출 통제 분류 번호(ECCN)가 붙습니다. 바세나르 이중 용도 목록의 6번 분류도 "센서와 레이저"입니다.
레이저 무기 기사에 수출 통제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목록의 이야기인지 먼저 보면 좋습니다. 무기 체계를 말하는지, 산업에도 쓰이는 레이저 장비를 말하는지에 따라 맡는 부처와 규정이 다릅니다. 레이저 무기가 레이저 말고도 어떤 장치로 이뤄지는지는 레이저 무기는 레이저만으로 되지 않는다: 체계 구성 한눈에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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