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속 칩에 새겨진 회로, 그리고 안경 없이 세상을 보게 해 주는 시력 교정 수술.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일에 같은 종류의 레이저(laser)가 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아주 짧은 펄스로 내는 엑시머 레이저입니다.

엑시머 레이저는 무기용 레이저가 아닙니다. 그래도 이 사이트에서 다룰 까닭은 있습니다. 파장(wavelength)을 바꾸면 빛이 하는 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빛이 열을 거의 남기지 않고 물질을 깎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만큼 잘 보여 주는 레이저도 드뭅니다.

빛이 나오는 원리에서 출발해 기체 짝과 파장, 1970년의 첫 시연, 반도체 공장과 안과에서 하는 일, 그리고 다루는 사람이 조심하는 위험까지 공개 자료로 따라가 봅니다.

들뜰 때만 붙어 있는 분자

레이저가 빛을 키우려면 빛을 낼 준비가 된 위 상태의 입자가 아래 상태보다 많아야 합니다. 이 상태를 밀도 반전(population inversion)이라고 부릅니다. 아래 상태가 붐비면 빛이 증폭되기보다 다시 흡수(absorption)되기 쉽습니다.

엑시머(excimer)는 "들뜬 이합체(excited dimer)"를 줄인 말입니다. 서로 다른 원자가 짝을 이룬 것은 엑시플렉스(exciplex, 들뜬 복합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분자는 들뜬 상태에서만 존재합니다.

보통은 결합하지 않는 두 기체를 섞어 두고 충분한 에너지를 주면, 두 원자가 잠시 붙어 들뜬 분자가 됩니다. 이 분자는 남는 에너지를 빛으로 내놓습니다. 빛을 낸 다음이 핵심입니다. 바닥 상태에서는 두 원자가 붙어 있을 수 없어서 곧바로 따로따로 흩어집니다.

빛을 낸 분자가 아래 상태에 줄을 서 있을 틈이 없는 셈입니다. 그래서 아래 상태를 비우는 문제가 처음부터 거의 풀려 있습니다. 이렇게 묶인 상태에서 풀린 상태로 내려가며 빛을 내는 것을 묶임-풀림 전이(bound-free transition)라고 합니다.

손을 맞잡았을 때만 한 짝인 두 사람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손을 놓는 순간 짝은 사라지고 두 사람은 제 갈 길을 갑니다. 실제로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원자 사이 거리에 따른 에너지 곡선의 모양이 이 일을 정합니다. 위 곡선에는 원자를 붙잡아 두는 골이 있고, 아래 곡선에는 그 골이 없습니다.

가로축은 두 원자 사이의 거리, 세로축은 에너지인 개념도. 위쪽 보라색 곡선(들뜬 상태, ArF*)에는 우묵한 골이 있어 두 원자가 붙어 있고, 골 안에 원자 두 개가 그려져 있다. 골에서 아래로 파란 점선 화살표(자외선 광자)가 내려가 아래쪽 초록 곡선(바닥 상태)에 닿는다. 바닥 상태 곡선에는 골이 없어 원자들이 서로 밀어낸다. 오른쪽 칸에는 1 방전 에너지가 두 원자를 들뜬 분자로 묶음, 2 분자가 남는 에너지를 자외선으로 냄, 3 바닥 상태에서는 붙어 있지 못해 다시 두 원자로 갈라짐, 그래서 아래 준위에 분자가 쌓이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다. 곡선 모양은 실제 비율이 아니고 값이 없다
엑시머 분자는 들뜬 상태에서만 붙어 있고, 빛을 내면 곧 두 원자로 갈라집니다. 곡선 모양은 실제 비율이 아닙니다 (도표)(도표)

기체 이름이 곧 파장이다

엑시머 레이저의 이름은 대개 안에 든 기체 짝의 화학 기호입니다. ArF는 아르곤과 플루오린, KrF는 크립톤과 플루오린, XeCl은 제논과 염소입니다. F2는 짝이 아니라 플루오린 분자 하나를 씁니다. 짝이 바뀌면 들뜬 분자가 내놓는 에너지가 바뀌고, 그 에너지가 빛의 파장을 정합니다.

대학 레이저 물리 강의 슬라이드에 실린 대표 값은 XeCl 308 nm, KrF 248 nm, ArF 193 nm, F2 156 nm입니다. F2 선은 자료에 따라 156~157 nm로 적힙니다. 모두 보이는 빛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입니다. 기체 레이저 전체로 넓혀 보면 파장은 엑시머의 자외선에서 이산화탄소(CO2) 레이저의 중적외선까지 퍼져 있습니다.

0~460 nm 직선 눈금의 파장 자. 눈금 위에는 엑시머 레이저의 선 F2 156 nm, ArF 193 nm, KrF 248 nm, XeCl 308 nm가 보라색으로 서 있고, 400 nm 아래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 그 위는 보이는 빛 띠다. 눈금 아래에는 다른 노광 광원으로 수은 i선 365 nm, 수은 g선 436 nm, 그리고 13.5 nm의 EUV가 초록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EUV는 주석 플라스마에서 나오며 엑시머 레이저가 아니라고 적혀 있다. 선의 값은 대학 강의 슬라이드와 ASML 자료에서 왔다
엑시머 레이저의 대표 선과 다른 노광 광원의 파장. 모두 보이는 빛보다 짧습니다(g선만 보이는 빛) (도표)(도표)

파장이 짧다는 것은 광자(photon) 하나가 실어 나르는 에너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뒤에 나올 두 쓰임에서 이 짧은 파장은 저마다 다른 일을 합니다.

짧은 펄스와 자외선용 광학

엑시머 레이저는 빛을 끊임없이 내지 않고 짧게 끊어서 내는 펄스 레이저(pulsed laser)입니다. 한 번 켜졌다 꺼지는 시간인 펄스 폭(pulse duration)은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앞의 강의 슬라이드는 보통 10~50 ns라고 적었고, 한 제조사의 장비 설치 문서에는 3~15 ns로 나옵니다. 1 ns는 10억분의 1초입니다.

에너지를 넣는 펌핑(pumping)은 대부분의 기체 레이저처럼 전기 방전으로 합니다.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비율인 전기-광 변환 효율(wall-plug efficiency)은 20% 미만입니다. CO2 레이저와 같은 칸이고, 반도체 레이저(40% 미만)보다 낮습니다.

자외선은 광학 부품에도 까다로운 빛입니다. 엑시머 레이저의 렌즈와 창에는 따로 고른 결정 재료가 쓰입니다. 플루오린화 칼슘(CaF2)은 흡수가 낮고 레이저 유도 손상 문턱(laser-induced damage threshold, LIDT)이 높아 엑시머 레이저 광학에 흔히 쓰입니다. 플루오린화 마그네슘(MgF2)은 플루오린이 있는 환경에서 쓴 실적이 있어 렌즈, 창, 편광기에 알맞은 재료로 꼽힙니다.

1970년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빛

첫 엑시머 레이저는 1970년 모스크바의 소련 과학아카데미 레베데프 물리연구소에서 가동됐습니다. 니콜라이 바소프(Nikolai Basov), V. A. 다닐리체프(V. A. Danilychev), Yu. M. 포포프(Yu. M. Popov)가 만든 이 레이저는 지금의 공장용 장비와 모습이 달랐습니다. 기체가 아니라 액체 제논을 썼고, 전기 방전 대신 전자빔으로 에너지를 넣었습니다. 빛을 낸 것은 제논 원자 둘이 묶인 Xe2 분자였습니다.

바소프는 그보다 앞선 1964년에 찰스 타운스,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재단이 밝힌 수상 이유는 메이저·레이저 원리에 바탕한 발진기와 증폭기로 이어진 양자 전자공학의 기초 연구입니다. 수상 당시 소속도 레베데프 물리연구소였습니다.

바소프 탄생 100년을 기념해 2023년 학술지 Physics-Uspekhi에 실린 리뷰의 초록은 이 Xe2 레이저가 레이저 물리에 새 차원을 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 뒤 가시광에서 진공 자외선까지 고출력 엑시머 레이저가 이어졌습니다. 펄스를 빠르게 되풀이하는 엑시머 레이저는 의료, 미세 전자, 재료 가공에 쓰이게 됐습니다. 자외선 엑시머 레이저가 상용 제품으로 나온 것은 1980년입니다.

반도체 칩에 회로를 새기는 빛

반도체 칩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회로 무늬를 한 층씩 쌓아 만듭니다. 이 무늬를 찍는 노광(photolithography) 장비는 본래 투영 장치입니다. 빛이 마스크(레티클)를 지나면서 무늬를 싣고, 광학계가 그 무늬를 줄여 빛에 반응하는 막을 입힌 웨이퍼에 맺습니다. 한 번 찍고 나면 웨이퍼를 조금 옮겨 다음 자리에 또 찍습니다.

두 칸으로 나뉜 개념도. 왼쪽 칸 '칩에 회로 찍기'에서는 엑시머 레이저의 자외선이 무늬가 있는 마스크를 지나 렌즈에서 줄어든 뒤 감광 막을 입힌 실리콘 웨이퍼에 닿는다.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는 액침 방식에만 있는 물 층이 표시되어 있고, 웨이퍼를 옮겨 다음 복사본을 찍는다고 적혀 있다. 오른쪽 칸 '각막 모양 바꾸기'에서는 엑시머 레이저의 짧은 펄스가 옆에서 본 각막 앞면에 닿아 얇은 층을 조금씩 없애고, 왼쪽에는 LASIK에서 젖혀 둔 얇은 덮개가 있으며, 레이저 단계 뒤 덮개를 되돌린다고 적혀 있다. 치수와 설정값은 없다
같은 종류의 자외선이 하는 두 가지 일. 치수와 설정값이 없는 개념도입니다 (도표)(도표)

더 작은 무늬를 찍으려면 더 짧은 파장이 필요했습니다. 노광 장비 업체 ASML의 첫 장비는 수은등의 g선(436 nm)을 썼고, 곧 i선(365 nm)으로 옮겼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다시 더 짧은 파장이 필요해지자, 이번에는 빛을 만드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심자외선(DUV) 엑시머 레이저입니다.

첫 DUV 장비는 KrF 레이저(248 nm)를, 다음 세대는 ArF 레이저(193 nm)를 썼습니다. ASML은 ArF로 38 nm 크기의 무늬까지 찍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다음 걸음은 쉽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 업계는 193 nm ArF에서 157 nm F2 광원으로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파장용 렌즈로 고른 CaF2를 실제 시제품에 넣어 보니, 재료 자체에서 생기는 복굴절이 너무 커서 무늬를 제대로 맺지 못했습니다. 길을 연 것은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정제한 물 층을 두는 액침(immersion) 방식이었고, 덕분에 193 nm 노광을 더 오래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칩의 일부 층에는 EUV(극자외선) 노광도 쓰입니다. EUV는 13.5 nm 빛을 쓰는데, 이 빛은 엑시머 레이저가 아니라 녹은 주석 방울을 레이저 펄스로 때려 만든 플라스마에서 나옵니다. 그렇다고 엑시머의 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칩의 여러 층 가운데 EUV로 찍는 것은 한두 개의 까다로운 층이고, 나머지는 흔히 그보다 오래된 방식으로 찍습니다.

ASML은 지금도 KrF·ArF 건식 장비와 ArF 액침 장비를 내놓고 있습니다.

각막을 깎는 빛

눈 수술 쪽 이야기는 미국 IBM의 토머스 J. 왓슨 연구소에서 시작됩니다. 1961년 이 연구소에 들어간 화학자 랑가스와미 스리니바산(Rangaswamy Srinivasan)은 동료 제임스 윈(James Wynne), 새뮤얼 블럼(Samuel Blum)과 함께 일했습니다. 1980년 자외선 엑시머 레이저가 상용으로 나오자, 그는 자외선 펄스가 유기물 고체에 어떤 일을 하는지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1981년 추수감사절 다음 날, 세 사람은 남은 칠면조 다리의 연골에 엑시머 레이저를 쏘아 봤습니다. 레이저는 주변에 열 손상을 남기지 않고 조직을 정밀하게 깎아 냈습니다. 비교로 쓴 녹색 레이저는 열에 그을린 거친 자국을 남겼지만 엑시머 레이저의 자국은 깨끗했습니다. 열로 태우는 대신 자외선이 화학 결합을 끊어 얇은 층을 훨씬 낮은 온도에서 없앤 것입니다.

1983년 스리니바산은 안과 의사들과 이 방법을 각막 수술에 쓰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이 굴절 교정 수술인 PRK(photorefractive keratectomy)와 LASIK(laser-assisted in situ keratomileusis)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은 2002년 그를 헌액했습니다.

각막은 눈 앞쪽의 투명한 조직으로, 눈이 빛을 모으는 힘의 3분의 2를 맡습니다. 각막의 모양이 눈의 초점 힘을 정하는 까닭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기록에 실린 한 LASIK 환자 안내서는 과정을 이렇게 풀어 씁니다.

먼저 대패처럼 생긴 미세 각막 절삭기로 각막 앞쪽에 얇은 덮개를 만들어 젖힙니다. 엑시머 레이저가 각막 앞면의 조직을 조금 없애 덜 휘게 만들고, 덮개를 제자리로 되돌립니다. 레이저 펄스 하나는 수십억분의 몇 초 동안만 이어집니다. 펄스마다 아주 얇은 조직을 없애며, 열이 적고 그 아래 조직은 바꾸지 않습니다.

위험도 안내서에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LASIK은 전에 없던 시력 문제를 만들거나 있던 문제를 키울 수 있고, 예로 안구 건조, 빛 번짐, 눈부심을 듭니다. 의사는 수술이 알맞은지 판단할 수 있지만, 기대하는 이익이 위험을 감수할 만한지는 본인만 정할 수 있다는 문장도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독자에게 눈여겨볼 문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떤 직업은 RK·PRK·LASIK이 맞추지 못하는 시력 요건을 두며, 그 예가 군 조종사라는 것입니다. 승인 기록에 붙은 안내서의 설명이므로, 지금의 기준은 각 군의 공식 규정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자외선과 기체, 두 가지 위험

엑시머 레이저를 다루는 사람이 조심하는 위험은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빛, 다른 하나는 기체입니다.

먼저 빛입니다. 대학 레이저 안전 자료는 눈의 망막을 가장 크게 걱정해야 하는 영역을 대략 400 nm(보라색 빛)에서 1400 nm(근적외선)까지로 봅니다. 엑시머의 선은 모두 이보다 짧습니다.

그렇다고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원자외선에서는 각막이 레이저 에너지를 흡수해 다칠 수 있고, 빔 밖으로 새는 자외선도 피부와 각막에 화상을 낼 수 있습니다.

국제비전리방사선방호위원회(ICNIRP)의 2013년 지침은 짧은 파장의 자외선은 각막과 결막에서, 긴 파장의 자외선은 주로 수정체에서 흡수된다고 설명합니다. 짧은 파장 자외선 레이저에 노출되면 피부가 붉어지는 홍반, 각막에 염증이 생기는 광각막염, 결막염, 수정체가 흐려지는 백내장 같은 급성 광화학 영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광각막염이 가장 잘 생기는 파장은 270 nm 부근입니다.

빛에는 하나가 더 붙습니다. 전자빔으로 펌핑하는 고출력 엑시머 레이저는 상당한 X선을 낼 수 있어, 설치할 때 방사선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다음은 기체입니다. 엑시머 레이저 안에는 플루오린 같은 할로겐 기체가 들어 있습니다. 한 제조사의 설치 문서는 할로겐 기체가 든 장비를 다룰 때 내화학 보안경과 장갑을 쓰고 기체 공급사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따르라고 안내합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할로겐 기체 노출 한계 아래에 머물도록 레이저의 배기는 공기 추출 설비에 이어야 합니다. 레이저가 꺼져 있을 때도 기체가 새지 않게 대비해야 합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장비는 레이저 안전 등급(laser safety class) Class 4이고, 자외선 노출 위험이 있을 때는 피부 보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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