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지도 앱이 위치를 잡을 때 쓰는 신호 가운데에는 미국 우주군이 운영하는 GPS 위성의 신호가 있습니다. 이 글을 띄운 인터넷의 뿌리도 국방 연구 기관의 연구망에 있습니다. 군을 위해 만든 기술이 매일 손에 쥐는 물건 속에 들어와 있는 셈입니다.
길은 반대쪽으로도 납니다. 회사가 시장을 보고 만든 기술을 군이 들여다 쓰는 일도 흔합니다. 이렇게 민간과 군사 양쪽에 쓰일 수 있는 물건과 기술을 "이중 용도(dual-use)"라고 부릅니다. 이 글은 그 말의 공식 뜻, 기술이 오간 두 가지 실제 사례, 그리고 나라들이 이런 품목을 따로 목록으로 관리하게 된 까닭을 살핍니다.
"이중 용도"라는 말의 뜻
미국 수출관리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 EAR)은 이중 용도 품목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민간 쓰임이 있으면서, 테러·군사·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쓰임도 있는 품목입니다. EU 집행위원회의 설명도 비슷합니다. 민간과 군사 양쪽에 쓰일 수 있는 상품, 소프트웨어, 기술이 이중 용도 품목입니다.
눈여겨볼 낱말은 "소프트웨어"와 "기술"입니다. 이중 용도는 손에 잡히는 기계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프로그램과 지식도 들어갑니다.
경계가 깔끔하지만은 않습니다. EAR이 다루는 품목에는 순수한 민간 품목도 있고, 군사용으로만 쓰이지만 무기 수준의 통제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품목도 있습니다. "이중 용도"는 물건에 붙은 딱지라기보다, 한 물건이 놓일 수 있는 자리가 둘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군에서 민간으로: 인터넷의 뿌리
DARPA는 현대 인터넷의 뿌리가 자기 기관이 1960년대에 시작한 연구에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때 기관 이름은 고등연구계획국(ARPA)이었고, 그 연구가 ARPANET이 됐습니다. 처음 ARPANET은 컴퓨터 노드 네 개로 시작했습니다. 첫 컴퓨터 간 신호는 1969년 10월 29일 UCLA와 스탠퍼드 연구소(SRI) 사이에 갔습니다.
처음 목표 가운데 하나는 멀리 떨어진 연구 시설끼리 안전하게 통신하고 정보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가 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옛 전화망처럼 움직이면 노드 하나가 고장 날 때 전체가 멈출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풀려고 나온 생각이 패킷 교환입니다. 자료를 작은 묶음으로 나눠 망 안에서 길을 찾아가게 하고, 도착한 곳에서 다시 합치는 방식입니다.
컴퓨터마다 말이 달랐으니 공통 약속도 필요했습니다. 그 약속이 TCP/IP이고, 첫 구현은 1975년 스탠퍼드에서 있었습니다. 1983년 1월에는 충분히 많은 네트워크가 서로 이어져, ARPANET이 인터넷으로 자랐습니다.
민간으로 넓어진 길은 몇 단계를 거쳤습니다. 이 망은 먼저 학계가 쓸 수 있게 됐고, 미 국립과학재단(NSF)이 1985년 NSFnet을 세웠습니다. 1988년에는 연방네트워킹위원회가 MCI Mail 서비스를 이 망에 잇도록 허락했습니다. 상업 전자 통신이 정부 기간망을 지나지 못하던 제한이 이때 깨졌고, 상업 인터넷 서비스가 빠르게 늘자 NSF는 1995년 전용 기간망을 닫았습니다.
이야기는 다시 군으로 돌아옵니다. 1990년대 중반 DARPA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안전하고 믿을 만한 전장 통신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다만 전장의 망은 민간 인터넷과 달리 기지국이나 서버 단지 같은 고정 시설에 기댈 수 없었습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기술이라도 쓰는 자리에 따라 풀어야 할 문제가 달라집니다.
군에서 민간으로: 모두가 쓰는 GPS
GPS.gov는 위성항법 체계 GPS를 위치·항법·시각(PNT) 서비스를 주는 "미국 소유의 공공 기반 시설"로 소개합니다.
GPS는 위성항법시스템(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GNSS)의 하나입니다. 위성이 있는 우주 부분, 지상의 관제 부분, 우리 손의 수신기인 사용자 부분으로 나뉩니다. 우주 부분과 관제 부분은 미 우주군이 개발하고 운영하며, 우주 부분은 명목상 운용 위성 24기로 되어 있습니다.
군이 운영하는 체계를 민간이 마음 놓고 쓰기까지는 고비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한때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공개 GPS 신호의 정확도를 일부러 낮췄습니다. 이것을 선택적 가용성(Selective Availability, SA)이라고 합니다.
2000년 5월, 클린턴 대통령의 지시로 미국 정부는 SA를 그만 썼습니다. GPS가 세계의 민간·상업 사용자에게 더 잘 맞게 하려는 결정이었습니다. 2007년 9월에는 다음 세대 위성인 GPS III를 SA 기능 없이 사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00년의 정책 결정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든 조치입니다.
GPS 사례는 이중 용도의 한 면을 잘 보여 줍니다. 군이 운영하는 한 체계가 세계의 민간·상업 사용자를 함께 섬기게 됐습니다. 위성항법과 관성항법이 어떻게 함께 쓰이는지는 관성항법과 위성항법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 군으로: 빨라진 민간 기술
이제 반대 방향입니다. 미 국방부는 2015년 8월 애시 카터 국방장관 때 DIUx라는 조직을 세웠습니다. 지금 이름은 DIU입니다. DIU 누리집은 설립 까닭으로 상업 기술이 국방 연구개발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는 점을 맨 먼저 듭니다.
DIU가 함께 든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전통적인 획득 방식은 너무 느리고, 처음 들어오는 업체나 작은 업체가 국방 시장에 들어오는 문턱은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인터넷과 GPS 때는 군이 앞서고 민간이 뒤따랐다면, 여기서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군이 민간을 따라잡으려고 문을 여는 모양입니다.
두 방향을 같이 놓으면 이중 용도가 왜 늘 관심을 받는지 보입니다. 기술이 어느 쪽에서 먼저 나왔든 결국 양쪽에 쓰이게 되고, 그만큼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따지는 일도 생깁니다.
그래서 생긴 목록: 이중 용도 통제
이중 용도 품목을 따로 관리하는 제도도 역사가 깁니다. 미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CRS)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현대 수출 통제는 1940년 의회가 대통령에게 군사 장비와 군수품의 수출을 통제할 권한을 주면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이 2차 대전에 들어간 뒤 의회는 이 권한을 민간 물품까지 넓혔습니다.
1949년에는 수출통제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해 만든 COCOM이라는 협의체는 소련과 동유럽을 향한 수출 제한을 서방 나라들 사이에서 조율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나라가 함께 목록을 씁니다. 바세나르 체제(Wassenaar Arrangement)는 재래식 무기와 이중 용도 물품·기술의 이전을 다루는 다자 체제로, 참가국은 42개국이고 한국은 창립 회원입니다.
이 체제는 어떤 나라를 겨냥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이전을 허락할지 말지는 각 참가국이 스스로 정합니다. EU는 규정 (EU) 2021/821로 이중 용도 품목의 수출, 통과, 중개, 기술 지원을 통제하고 공통 이중 용도 목록을 둡니다.
통제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CRS는 국가 안보와 수출 경쟁력의 균형을 수십 년 동안 의회와 행정부를 괴롭힌 복잡한 문제로 적었습니다. 해외에서 같은 것을 구할 수 있으면 통제가 효과를 내지 못할 수 있고, 오히려 자기 나라 업체만 불리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미국 제도의 짜임은 같은 묶음의 글 "수출 통제: ITAR와 바세나르 체제는 무엇을 막나"에서 따로 다룹니다.
레이저와 맞닿는 점: 공장의 레이저, 목록의 레이저
레이저도 이중 용도를 보여 주는 예입니다. 공장에서는 금속을 자르고 붙이고 표시하는 도구로 쓰입니다. 그 쓰임은 산업용 레이저는 어디에 쓰이나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편 레이저를 무기로 쓰는 체계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통제 목록에서도 레이저는 양쪽에 자리가 있습니다. 바세나르 체제의 이중 용도 목록에는 6번 분류 "센서와 레이저"가 있습니다. 미국 군수품 목록(USML)에는 제12분류 "사격 통제·레이저·영상·유도 장비"와 제18분류 "지향성 에너지 무기(directed energy weapon, DEW)"가 있습니다.
뉴스에서 "레이저 기술 수출"이라는 말을 보면, 그 레이저가 공장용 장비인지 무기 체계의 일부인지부터 가려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레이저 무기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레이저 무기란 무엇인가에서 이어집니다.
다음에 읽을 글
- 군사기술의 전환점: 근접신관에서 스텔스와 무인체계까지: 군사 기술이 크게 바뀐 순간들을 봅니다.
- 산업용 레이저는 어디에 쓰이나: 절단, 용접, 마킹, 세정: 레이저의 민간 쓰임을 봅니다.
- 관성항법과 위성항법: 자기 위치는 어떻게 알까: GPS 같은 위성항법이 군과 민간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