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의 판금 절단기 앞에 서면 불꽃은 보이는데 빛줄기는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기계가 CO2 레이저라면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레이저가 내는 빛은 파장(wavelength)이 10.6 µm인 적외선(infrared)이라 사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빛을 만드는 재료도 뜻밖입니다. 우리가 숨을 내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곧 CO2 기체입니다. 기체 한 통이 어떻게 강철판을 자를 만큼 센 빛을 낼까요?
이 글은 CO2 분자의 떨림이 빛이 되는 원리부터 살핍니다. 이어서 이 레이저가 수십 년 동안 공장을 지킨 까닭, 광섬유 레이저(fiber laser)에 자리를 내준 곳과 아직 남은 자리, 레이저 무기의 역사에 남긴 흔적까지 따라갑니다.
분자의 떨림이 빛이 되기까지
레이저에는 빛을 키우는 이득 매질(gain medium)이 있어야 합니다. 고체 레이저에서는 결정이나 유리가 그 일을 맡고, CO2 레이저에서는 기체 분자가 맡습니다.
CO2 분자는 가운데 탄소 하나와 양옆 산소 둘이 일자로 늘어선 모양입니다. 이 분자는 가만히 있지 않고 떨립니다. 떨리는 방식은 세 가지입니다. 두 산소가 함께 밖으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대칭 늘이기, 한쪽이 늘 때 다른 쪽이 주는 비대칭 늘이기, 일자 모양이 휘는 굽힘입니다.
떨림에도 정해진 에너지 계단이 있습니다. 분자가 높은 떨림 계단에서 낮은 떨림 계단으로 내려가면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빛으로 나옵니다. CO2 레이저의 빛은 이렇게 분자의 진동-회전 준위 사이에서 나옵니다. 원자 속 전자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보통의 레이저와 달리, 분자 전체의 몸짓이 계단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게 나오는 빛은 어느 파장일까요? 1964년 Physical Review에 실린 첫 연속 동작 논문의 초록은 10.4 µm와 9.4 µm 부근의 여러 선에서 레이저가 나왔고, 가장 센 선이 10.6324 µm라고 적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10.6 µm"가 바로 이 선입니다.
질소와 헬륨이 맡는 일
CO2 레이저의 관 속에는 이산화탄소만 들어 있지 않습니다. 질소와 헬륨이 함께 들어갑니다. 흔한 형태인 고속 축류형은 이산화탄소, 헬륨, 질소를 섞은 기체를 송풍기나 터빈으로 빠르게 돌립니다.
에너지는 전기 방전으로 넣습니다. 이렇게 에너지를 넣어 레이저 동작을 준비하는 일을 펌핑(pumping)이라고 합니다. 관 양쪽에 전압을 걸면 관 안에 전류가 흐르고, 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기체 분자와 부딪쳐 분자를 떨게 합니다.
질소는 방전에서 위 레이저 준위를 채우는 데 돕습니다. 헬륨은 반대쪽 일을 합니다. 빛을 내고 아래 준위로 내려온 CO2 분자를 충돌로 바닥 상태로 돌려보내, 아래 준위를 비우는 데 돕습니다.
왜 아래 준위를 비워야 할까요? 레이저가 빛을 키우려면 위 준위에 있는 분자가 아래 준위보다 많아야 합니다. 이 상태를 밀도 반전(population inversion)이라고 합니다. 기체 레이저에서는 아래 준위가 위 준위보다 훨씬 빨리 비면서 반전이 생기고, 헬륨은 그 비우는 일을 거듭니다.
방전 방식도 바뀌어 왔습니다. 관 안의 전극으로 직류를 흘리는 DC 들뜸과 고주파 에너지를 쓰는 RF 들뜸이 있고, 요즘은 RF가 더 흔합니다. RF는 전극이 관 바깥에 있어 전극이 닳는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유리 렌즈 대신 쓰는 것들
빛은 공진기(optical resonator) 안에서 세집니다. CO2 레이저에서는 방전관 양 끝에 거울을 두어 빔이 여러 번 오가며 세기를 쌓고, 한쪽의 출력 거울이 쓸 빔을 내보냅니다. 몇 kW를 내려면 공진기 전체 길이가 몇 m는 되어야 해서, 공장용 장비는 공진기를 여러 방전관으로 나눠 잇고 고반사 거울로 빔의 길을 여러 번 접어 크기를 줄입니다.
공진기를 나온 빔을 재료까지 옮기는 길도 광섬유 레이저와 다릅니다. 광섬유 레이저 기계에서는 광섬유 코어가 빔을 절단 헤드까지 이끕니다. CO2 레이저 기계에서는 여러 장의 거울이 그 일을 합니다. 평면 위를 자르는 2D 기계에도 움직이는 거울이 적어도 두 장 필요합니다.
빔을 재료 위에 모으는 렌즈도 특별합니다. CO2 레이저 절단 헤드에는 셀렌화아연(ZnSe)으로 만든 집광 렌즈가 들어갑니다. ZnSe는 약 0.6~16 µm의 넓은 적외선 범위에서 쓰이는 렌즈 재료이고, 흡수가 적고 열 충격에 강해 고출력 CO2 레이저 광학에 가장 알맞은 재료로 꼽힙니다. 대신 무르고 긁히기 쉬워 조심해서 다뤄야 합니다.
거울이 많다는 것은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TWI의 레이저 FAQ는 CO2 레이저 기계의 거울을 보통 500시간마다 닦고 다시 맞춘다고 적고, 이터븀 광섬유 레이저에는 일반 정비가 필요 없다고 봅니다.
벨 연구소의 1 mW에서 공장의 kW까지
CO2 레이저를 처음 만든 사람은 벨 연구소의 C. Kumar N. Patel입니다. 그는 1961년 벨 연구소에 들어갔고, 1963년 이산화탄소의 진동-회전 전이에서 레이저 동작을 발견했습니다. 1964년에는 분자 사이에서 진동 에너지를 효율 좋게 넘기는 방법을 내놓았고, 이것이 CO2 레이저가 아주 높은 출력을 높은 효율로 낼 수 있음을 보인 실험들로 이어졌습니다.
시작은 작았습니다. 1964년 11월에 실린 논문에서 잰 연속파(continuous wave, CW) 출력은 약 1 mW였습니다. Patel은 뒤에 한 인터뷰에서 가장 신났던 순간으로 어느 늦은 밤 벨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10 W를 넘긴 CO2 레이저를 만든 때를 꼽았습니다.
공장으로 가는 길은 빨랐습니다. 레이저를 절단 도구로 쓴 첫 보고는 1967년 P. Houldcroft의 실험으로 꼽힙니다. 300 W CO2 레이저에 산소를 보조 기체로 불어 넣어 두께 1 mm 강판을 잘랐습니다.
그 뒤 CO2 레이저는 오랫동안 금속 절단의 주력이었습니다. TWI 자료 기준으로 상용 CO2 레이저는 15 kW까지 나옵니다. 1964년의 1 mW와 견주면 천만 배가 넘는 출력입니다.
효율은 어떨까요? 벽의 콘센트에서 들어간 전기 가운데 레이저 빛으로 나오는 몫을 전기-광 변환 효율(wall-plug efficiency)이라고 합니다.
CO2 레이저의 값은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TWI는 대표값으로 10~12%를 듭니다. New Mexico 대학의 레이저 물리 강의는 CO2 레이저 20% 미만, Nd:YAG 10% 미만을 나란히 적습니다.
CO2 레이저는 한 가지 모양만 있지 않습니다. 기체를 흘리는 방식에 따라 고속 축류, 저속 축류, 횡류, 슬랩형이 있습니다. 펄스 레이저(pulsed laser)로는 횡여기 대기압(TEA) CO2 레이저가 가장 흔합니다. 아주 뜨거운 기체를 초음속으로 팽창시켜 밀도 반전을 만드는 기체 역학 레이저도 있고, 기체 역학 CO2 레이저에서 1 MW까지의 연속파 출력을 얻은 기록이 있습니다.
광섬유 레이저에 내준 자리, 남은 자리
CO2 레이저가 금속 절단을 오래 맡은 까닭은 주로 값이었습니다. 금속은 Nd:YAG 같은 고체 레이저의 빛을 더 잘 흡수하는데도, 예전에는 CO2 레이저가 더 쌌습니다. 값이 알맞은 디스크 레이저와 광섬유 레이저가 나오자 사정이 바뀌었고, 많은 응용에서 CO2 레이저가 밀려났습니다.
2019년에 나온 레이저 절단 리뷰는 이 흐름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고출력 광섬유·디스크 레이저가 전통적인 CO2 광원의 대안으로 들어왔고, 이들은 벽 플러그 효율이 더 높고 금속판에 더 잘 흡수됩니다. 광섬유 레이저는 CO2 방식보다 훨씬 작은 점을 만들어 반사가 센 금속을 자르는 데도 알맞습니다.
그렇다고 CO2 레이저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같은 리뷰는 두꺼운 판, 보통 약 4 mm를 넘는 판에서는 광섬유·디스크 레이저의 절단면 품질이 CO2 기술보다 훨씬 나쁘다고 덧붙입니다. 그런 판은 버(burr)를 깎아 내는 것 같은 뒷손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재료가 바뀌면 판세가 뒤집힙니다. 플라스틱이나 나무 같은 유기 재료는 10.6 µm 빛을 강하게 흡수합니다. 그래서 Newport는 이런 재료에는 CO2 레이저의 대안이 없다고까지 씁니다. 플라스틱 용접에서도 CO2 레이저 빛은 투명하든 아니든 모든 플라스틱에 흡수되어, 다이오드 레이저와 함께 이 분야를 이끕니다.
의료도 남은 자리입니다. 기체 레이저는 특수한 용도를 빼면 대부분 다이오드 펌핑 고체 레이저와 레이저 다이오드로 바뀌었지만, CO2 레이저와 엑시머 레이저는 그 흐름의 예외로 레이저 가공과 의료용 눈 수술 시장에서 여전히 큰 몫을 합니다. CO2 레이저는 의료에서 절개와 피부 재생에 쓰입니다.
눈에는 어디가 위험한가
CO2 레이저의 빛이 눈에 들어가면 어디가 다칠까요? 국제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ICNIRP)의 2013년 지침은 400~1,400 nm의 보이는 빛과 근적외선이 눈에 주는 주된 영향을 망막 손상으로 봅니다. 눈의 매질이 이 빛을 통과시키기 때문입니다. 1.06 µm인 Nd:YAG 레이저의 빛도 이 범위에 듭니다.
10.6 µm는 다릅니다. 1.4 µm보다 긴 적외선은 눈 속의 물에 흡수되어 눈의 매질이 불투명해지고, 피해는 주로 눈 앞쪽의 각막에 생깁니다. 수술에 쓰이는 CO2 레이저도 조직에 열 손상을 주는 대표적인 적외선 광원으로 지침에 올라 있습니다.
망막까지 가지 않는다고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1,400 nm보다 긴 파장에서는 각막과 피부의 열 손상이 생깁니다. 재료 가공용 레이저는 레이저 안전 등급(laser safety class)으로 모두 Class 4이고, 그 빛은 잠재적으로 위험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등급과 보안경 읽는 법은 「레이저 안전: 등급과 보안경 읽는 법」에 정리했습니다.
레이저 무기의 역사 속 CO2 레이저
CO2 레이저는 공장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Patel의 1996년 국가 과학 훈장 사유에는 CO2 레이저 발명이 산업, 과학, 의료, 국방 응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국방 쪽의 공개된 예가 공중 레이저 실험실(Airborne Laser Lab)입니다. 미 공군 시험센터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은 1975~1984년 이 사업에 NKC-135 항공기를 썼고, 고쳐 만든 NKC-135A는 10.6 µm 이산화탄소 레이저를 실었습니다. 시험에는 작은 공대공 미사일과 무인기를 요격한 성공이 들어 있었지만, 이 체계는 끝까지 실험으로만 남았습니다.
비행기에 고에너지 레이저(high-energy laser, HEL)를 싣는 생각은 그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걸프전에서 겪은 스커드 미사일의 위협이 공중 레이저에 대한 관심을 다시 일으켰고, 그 관심이 Boeing YAL-1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와 오늘의 전기 레이저로 넘어온 흐름은 「레이저 무기의 역사: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에서 이어집니다.
다음에 읽을 글
- 「레이저 종류 한눈에 보기: 기체, 고체, 광섬유, 반도체」: CO2 레이저가 다른 레이저 무리와 어떻게 다른지 표로 견줍니다.
- 「레이저는 재료를 어떻게 가공하나: 흡수, 가열, 녹음」: 재료마다 흡수하는 파장이 왜 중요한지 다룹니다.
- 「광섬유 레이저는 왜 널리 쓰이게 됐나: 실험실에서 공장까지」: CO2 레이저의 자리를 넘겨받은 쪽의 이야기입니다.
- 「엑시머 레이저: 반도체 노광과 시력 교정에 쓰이는 자외선」: 또 하나의 살아남은 기체 레이저를 다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