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조끼 한 벌이 권총탄을 멈춘다는 말은 처음 들으면 믿기 어렵습니다. 옷감은 가위로도 잘리는데, 탄은 왜 그 천을 뚫지 못할까요? 답은 천 자체보다 천을 이루는 실, 그리고 힘이 어디로 어떻게 퍼지는지에 있습니다.
방탄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섬유로 된 휘는 방탄복이고, 다른 하나는 세라믹 같은 단단한 판입니다. 이 글은 두 소재가 탄을 멈추는 방식을 물리 교과서로 풀고, 막아도 몸에 남는 충격, 그리고 2차 대전의 강철판에서 오늘날의 세라믹 판까지 이어진 소재의 역사를 따라갑니다.
힘을 넓게, 시간을 길게
손가락으로 팔을 꾹 누르면 조금 아플 뿐입니다. 같은 힘을 바늘 끝에 모으면 피부가 뚫립니다. 물리에서는 이 차이를 압력으로 설명합니다. 압력은 힘을 그 힘이 작용하는 넓이로 나눈 값이라서, 같은 힘이라도 좁은 곳에 몰리면 압력이 커집니다.
압력 = 힘 ÷ 넓이
날아온 탄은 작은 넓이에 큰 운동에너지(kinetic energy)를 싣고 옵니다. 방탄 소재가 먼저 하는 일은 그 힘을 넓은 곳으로 펴는 것입니다.
시간도 중요합니다. 자동차 에어백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에어백이 있든 없든 갑자기 멈추는 사람의 운동량 변화는 같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더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면 사람에게 걸리는 힘은 훨씬 작아집니다. 물리 교과서는 이 충격량의 원리가 목숨을 구하는 데 쓰인다고 설명합니다.
방탄복이 하는 일도 이 두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탄이 가져온 힘을 받아 넓게 나누는 것입니다. 다만 에어백과 달리 방탄복은 먼저 탄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섬유와 세라믹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맡습니다.
섬유의 그물: 부드러운 방탄복
미 법무부 국립사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Justice, NIJ)는 경찰 방탄복의 시험 표준을 만드는 곳입니다. NIJ의 선택·적용 안내서는 방탄복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부드러운 방탄복(soft armor)은 방탄 소재로 된 휘는 판이고, 권총 공격을 막도록 만듭니다. 단단한 방탄복(hard armor)은 방탄 소재로 된 단단한 판이고, 그보다 높은 위협을 막도록 만듭니다.
부드러운 판은 야구 포수의 미트처럼 일합니다. 권총탄이 판에 맞으면 강한 섬유가 엮인 "그물"에 걸립니다. 섬유는 탄에서 판으로 전해진 충격 에너지를 흡수하고 흩어 놓습니다. 그 사이 탄은 찌그러지거나 버섯 모양으로 펴집니다.
부드러운 판은 보통 방탄 소재를 여러 겹 쌓아 만듭니다. 겹마다 에너지를 조금씩 더 흡수합니다. 겹의 수와 쌓는 순서가 판 전체의 성능에 영향을 줍니다. 판에는 몸에서 먼 쪽인 맞는 면(strike face)이 표시되어 있어, 입는 사람이 방향을 헷갈리지 않게 합니다.
그물이 되는 실은 어떤 실일까요? 오늘날 많이 쓰이는 것이 아라미드(aramid) 섬유인 케블라(Kevlar)와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ultra-high molar mass polyethylene, UHMMPE) 섬유입니다.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은 섬유의 강도가 뛰어나면서 밀도가 낮아 방탄복에 흔히 쓰입니다.
단단한 판: 세라믹이 하는 일
NIJ 표준 0101.06의 다섯 등급 가운데 위의 두 등급은 보통 소총의 위협을 막도록 만든 단단한 판입니다. 휘는 천 대신 판을 쓰는 것입니다. 판은 세라믹, 눌러 굳힌 적층판, 금속판, 또는 둘 이상의 재료를 합친 복합재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단단한 판이 일하는 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입니다. 탄을 붙잡아 찌그러뜨리거나, 탄을 부숩니다. 어느 쪽이든 그다음에는 판이 충격의 힘을 흡수하고 넓게 나눕니다.
세라믹은 두 번째 방식과 잘 이어집니다. 탄이 단단하고 밀도가 높을수록, 세라믹이나 금속이 든 단단한 판에 맞았을 때 부서지기 쉽다고 NIJ 안내서는 설명합니다.
많은 판은 혼자 쓰지 않습니다. 정해진 부드러운 판과 함께 써야 원하는 방호 수준이 나오도록 설계합니다. 그래서 단단한 판에는 함께 쓸 부드러운 판의 모델이 표시됩니다. 둘을 합친 전술용 방탄복은 부드러운 것만 입을 때보다 두껍고 무겁습니다.
여러 재료를 합쳐 한 체계로 만든다는 점에서 전차의 복합장갑(composite armor)과 생각이 같습니다. 전차 쪽 이야기는 복합장갑과 반응장갑 글에 있습니다.
세라믹 자체도 깨지기 쉬운 재료입니다. 세라믹이 든 판을 단단한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지거나 금이 가 성능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표준 시험에 판이 작은 충격을 견디는지 보는 떨어뜨리기 시험이 들어 있는 까닭입니다.
소재 연구도 이 성질을 붙들고 있습니다. 미 육군 연구소와 함께 일하는 대학 연구진은 2012년 탄화붕소(boron carbide)를 연구 재료로 들었습니다. 기존 장갑보다 밀도가 30% 낮은 질기고 가벼운 세라믹이지만, 높은 압력의 충격에서 한꺼번에 부서진다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장갑은 맞았을 때 휘거나 늘어나거나 눌리면서 에너지를 받아 내야 합니다. 연구진은 이 화합물의 원자 결정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그것을 만들어 내는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막아도 남는 충격
탄이 판을 뚫지 못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섬유가 탄을 "잡는" 순간, 섬유는 탄이 가던 방향, 곧 몸 쪽으로 휘어집니다. 휘어진 판이 몸을 눌러 몸통에 손상을 줍니다. 이렇게 뚫리지 않고도 생기는 손상을 둔상(blunt force injury)이라 하고, 심한 타박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탄복 시험은 뚫렸는지만 보지 않습니다. 시험할 때는 판 뒤에 점토를 대는데, 탄을 막은 판이 그 점토에 남긴 자국을 뒷면 변형(backface signature)이라고 합니다. 자국의 깊이는 입은 사람이 심한 둔상을 입을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쓰입니다.
1978년에 나온 NIJ 표준 0101.01은 둔상의 최소 성능 기준으로 뒷면 변형 44 mm 한계를 처음 넣었습니다. 이 값은 1970년대 미 육군 연구자들이 NIJ의 지원으로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둔상의 한계를 살핀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막는 것과 몸을 지키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시험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같은 까닭으로 NIJ 안내서는 "방탄"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씁니다. 어떤 방탄복도 모든 위협을 막지 못하고, 어떤 방탄복도 총알이 절대 안 뚫리는 "bullet proof"가 아니라고 적었습니다.
강철판에서 케블라까지
현대 방탄복의 출발점은 하늘이었습니다. 2차 대전 중 미 육군 제8공군은 군의관 맬컴 그로(Malcolm C. Grow) 대령의 지휘로 현대 방탄복 개발을 이끌었습니다.
1943년부터 폭격기 승무원은 영국에서 만든 방호 조끼를 받았습니다. 사방 2인치짜리 망간강 판을 캔버스 조끼에 꿰매 넣은 것으로, 터지는 대공포탄의 파편을 막았습니다. 공식 이름은 M1 비행 조끼(Flyer's Vest, M1)였지만 흔히 "플랙 조끼"라고 불렸습니다.
땅 위의 병사에게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육군은 처음에 무게와 움직임을 막는 설계 때문에 지상군용 방탄복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알루미늄 판과 나일론 천으로 된 M-12 조끼가 나왔습니다.
한국전쟁에서는 섬유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M-1951 조끼는 나일론과, 2차 대전 중 개발된 적층 유리섬유 재료 도론(Doron)을 썼습니다. M-1952A는 휘는 적층 나일론 열두 겹으로 된 8.5파운드 조끼였습니다. 육군은 파편을 막는 데 적층 나일론이 강철보다 낫다고 보고 한동안 주로 나일론에 기댔습니다.
조끼가 있다고 늘 입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병사들은 방탄복이 있어도 순찰할 때는 잘 입지 않았습니다. 부피가 크고, 열대의 더위와 습기를 몸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세라믹 판이 육군 방탄복에 들어온 것도 이 무렵입니다. 1964년 육군은 헬기 승무원의 방탄복에 세라믹 판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이 판은 맞으면 쪼개지는 경향이 있어, 조종사와 승무원이 판에서 튄 이차 파편에 다칠 위험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판 위에 나일론 조끼를 덧입어 조각을 가두는 방법을 썼습니다.
섬유 쪽에서는 실험실에서 큰 변화가 왔습니다. 1965년 듀폰(DuPont)의 화학자 스테파니 퀄렉(Stephanie Kwolek, 1923~2014)은 묽고 뿌연 액체를 들여다보다 강철보다 다섯 배 강한 새것을 발견했습니다. 막대 모양의 분자들이 어떤 조건에서 나란히 줄을 서, 그대로 실로 뽑으면 아주 강하고 뻣뻣한 섬유가 됐습니다. 이것이 케블라로 상품화됐고, 지금은 방호 조끼, 배, 비행기, 밧줄, 케이블 등 200가지쯤의 쓰임이 있습니다.
경찰 쪽에서도 같은 시기에 흐름이 생겼습니다. 현대 경찰 방탄복은 NIJ가 지원한 연구 덕분에 1970년대에 실제로 쓰이기 시작했고, NIJ는 1972년 첫 방탄복 표준을 냈습니다. 이 표준은 방탄복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낼 수 있어야 하는지를 정합니다.
베트남전이 끝난 뒤 육군은 가볍고 유망한 새 소재 케블라로 방탄복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1983년 들어온 케블라 조끼 PASGT(Personnel Armor System for Ground Troops)는 나일론 열두 겹의 M-69 조끼보다 조금 무거웠지만, 파편을 더 잘 막고 더 잘 휘었으며 몸에도 잘 맞았습니다.
무게와 보호의 저울질
1990년대에는 케블라 조끼와 세라믹 판을 함께 쓰는 방탄복이 나왔습니다. 1990년대 초의 레인저 방탄복(Ranger Body Armor, RBA)은 PASGT와 같은 케블라에 산화알루미늄(aluminum oxide) 세라믹 판을 더했습니다. 1996년에는 탄화붕소 세라믹 판을 앞뒤로 넣은 ISAPO가 나왔습니다.
이 조끼들은 파편만 막던 "플랙 재킷"에서, 파편과 소화기 탄을 함께 막는 방탄복으로 넘어가는 시작이었습니다. 1999년 6월 들어온 인터셉터 방탄복(Interceptor Body Armor, IBA)이 그 전환을 굳혔습니다. 개량한 케블라를 넣은 겉조끼에 탄화붕소 세라믹 판 SAPI 두 장을 더하는 구성이었습니다.
대가는 무게였습니다. 미 육군 특수전사령부 역사실의 Veritas 기사는 2차 대전 뒤 육군이 보호와 움직임이라는 서로 다투는 두 요소를 받아들일 만하게 맞추려 애써 왔다고 정리합니다.
1990년대 중반 RBA와 ISAPO가 나오기 전까지 개인 방탄복은 10파운드를 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 뒤로는 25파운드보다 가벼운 일이 드물었습니다. 짐을 줄이려는 노력이 더해진 방호의 무게에 묻혔기 때문입니다.
2011년 미 육군 병사 장비 사업단(PEO Soldier)의 사령관은 하원 군사위원회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방탄복이 무게에서 "기술의 벽"에 부딪혔다고 인정했습니다. 병사의 짐을 덜려면 방호 수준과 덮는 넓이에서 무언가를 맞바꿔야 한다는 점도 함께 인정했습니다.
소재는 쓰는 동안에도 변합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2004년 초부터 열과 습기 같은 환경이 고강도 섬유에 주는 영향을 연구해 왔습니다.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같은 고분자는 보관하고 쓰는 동안 열 때문에 약해질 수 있고, 그러면 섬유의 강도가 떨어져 방탄 성능에도 나쁜 영향을 줍니다. 두 종류의 아라미드 섬유를 열과 습기에 함께 두는 노화 연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리 규칙도 소재에서 나옵니다. NIJ 안내서는 부드러운 판을 그늘이라도 밖에서 말리지 말라고 합니다. 자외선이 어떤 방탄 소재를 약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표백제나 풀은 아주 묽어도 방호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표준도 계속 바뀝니다. NIJ는 2023년 12월 1일 게시한 글에서 개정 표준 NIJ Standard 0101.07을 알렸습니다. 첫판 뒤로 여섯 번째 개정입니다. 미 육군, NIST, 시험소, 제조사, 소재 공급사가 여러 해 함께 만든 ASTM 시험법을 바탕으로 삼았고, 여성용 방탄복의 시험법도 나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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