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뒤의 밭에 들어가 보면 발이 푹푹 빠집니다. 그런데 사람보다 훨씬 무거운 주력전차(main battle tank)는 그런 땅을 굴러서 지나갑니다. 무게가 더 큰데 어떻게 덜 빠질 수 있을까요?

답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땅을 누르는 압력을 줄이는 궤도, 울퉁불퉁한 땅에서 차체를 받치는 현수장치, 그리고 흙과 차의 관계를 미리 계산하려는 모델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1904년의 궤도 특허에서 2018년의 NATO 시연까지 그 흐름을 따라가 봅니다.

같은 무게, 다른 넓이

압력은 힘을, 그 힘이 걸리는 넓이로 나눈 값입니다. 물리 교과서는 이것을 한 줄로 씁니다.

P = F / A

P는 압력, F는 힘, A는 힘에 수직인 넓이입니다. 같은 힘이라도 어떤 넓이에 걸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손가락으로 팔을 찌르면 조금 아플 뿐이지만, 같은 힘이 바늘 끝만 한 곳에 몰리면 살갗이 뚫립니다.

땅도 다르지 않습니다. 차의 무게는 그대로 두고 땅에 닿는 넓이만 두 배로 늘리면, 식에 따라 땅이 받는 압력은 절반이 됩니다. 진흙 위에 널빤지를 깔고 걸으면 발이 덜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실제 흙은 널빤지 아래의 진흙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흙의 종류와 젖은 정도에 따라 차를 받치는 정도가 달라서, 압력 하나만으로는 차가 지나갈지 알 수 없습니다. 흙을 직접 재고 계산 모델을 만드는 이야기는 글 뒤쪽에서 이어집니다.

두 칸으로 된 개념 그림. 두 칸 모두 같은 크기의 무게 화살표가 아래로 누른다. 왼쪽 칸은 좁은 받침이 무른 땅에 깊이 박히고 높은 압력이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 칸은 넓은 받침이 얕게 눌리고 낮은 압력이라고 적혀 있다. 위에 압력은 힘 나누기 넓이라는 식이 있고, 값이 없는 개념 그림이라는 메모가 있다
같은 무게라도 넓은 면으로 받치면 땅이 받는 압력이 작아집니다. 값이 없는 개념도입니다 (도표)(도표)

궤도: 차가 스스로 까는 길

궤도(track)는 바퀴들을 감싸고 고리처럼 도는 띠입니다. 차가 굴러가는 동안 띠의 아래쪽은 땅에 깔리고, 바퀴들은 그 띠 위를 지나갑니다. 차가 자기 길을 들고 다니는 셈입니다.

힘은 어디서 들어올까요? 1928년에 나온 영국 비커스 마크 E 전차는 뒤쪽 엔진의 힘이 변속기를 거쳐 앞쪽의 톱니바퀴(sprocket)로 갔습니다. 톱니바퀴가 궤도를 돌리면, 차체 아래의 여러 바퀴(road wheel)는 돌아가는 궤도 위를 구릅니다.

넓은 궤도의 쓸모는 앞의 압력 식과 바로 이어집니다. 영국 보빙턴 전차박물관은 2차 대전 독일 전차 판터의 넓은 궤도가 무른 땅에서 차의 무게를 넓게 나눈다고 설명합니다. 바퀴 몇 개가 작은 면으로 땅에 닿는 대신, 길고 넓은 띠의 바닥면이 무게를 받아 땅에 전합니다.

옆에서 본 궤도 차량 개념도. 차체 아래에 바퀴 여러 개가 있고, 바퀴마다 스프링과 완충기가 차체에 이어져 있다. 한쪽 끝의 톱니바퀴가 엔진 힘을 받아 궤도를 돌리고, 궤도 띠는 바퀴들을 감싸 고리처럼 돈다. 아래에는 무게가 궤도의 긴 바닥면을 따라 나뉘어 땅에 전해진다는 화살표들이 있다. 실제 차량이 아니고 치수가 없다는 메모가 있다
궤도의 큰 그림: 톱니바퀴가 궤도를 돌리고, 바퀴들은 궤도 위를 구르며, 스프링과 완충기가 바퀴와 차체를 잇습니다 (도표)(도표)

현수장치: 스프링과 완충기

땅에 잘 닿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땅은 평평하지 않고, 바퀴는 돌부리와 고랑을 지날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바퀴와 차체 사이에서 이 움직임을 받아 주는 장치를 현수장치(suspension)라고 합니다.

교과서는 자동차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차에 올라타면 차가 현수장치 위에서 조금 내려앉고, 이때 스프링이 더해진 무게만큼 되미는 힘을 냅니다. 이 힘을 복원력이라고 부릅니다.

스프링만 있다면 차는 사람이 탈 때마다 위아래로 출렁일 것입니다. 그 출렁임을 마찰로 잦아들게 하는 부품이 완충기(shock absorber)입니다. 차가 자꾸 통통 튄다면 완충기가 낡았다는 표시입니다.

흔들림을 없애고 싶을 때는 차체가 되도록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한계는 있습니다. 과속 방지턱이나 자갈길에서는 잘 만든 완충기가 있어도 차가 크게 흔들릴 수 있고, 교과서는 이것을 공진(resonance)의 예로 듭니다.

전차의 현수장치도 결국 같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무거운 차체를 받치는 일과, 땅이 주는 흔들림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 방식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트랙터에서 전차로

궤도는 전차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1904년 영국 혼즈비 회사의 데이비드 로버츠가 새로운 무한궤도를 특허 냈고, 영국 전쟁성은 1907년에 이 궤도를 단 차 하나를 시험했습니다. 1909년에 군용으로 주문된 이 차가 영국 육군의 첫 궤도 차량입니다. 지켜보던 병사들이 "캐터필러(caterpillar, 애벌레)"라는 말을 지어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이 트랙터가 곧바로 전차가 된 것은 아닙니다. 전차박물관은 혼즈비 트랙터가 전차의 발전에 거의 몫을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전차는 1915년, 디플록의 페드레일 방식과 미국 시카고 불럭 회사의 트랙터를 거친 다른 갈래에서 나왔습니다.

1915년 영국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은 참호전의 문제를 풀려고 육상함 위원회(Landships Committee)를 만들었습니다. 링컨의 농기계 회사 포스터가 시제품을 맡았고, 윌리엄 트리턴과 월터 윌슨이 쓸 만한 궤도를 만들어 달았습니다. 이렇게 나온 리틀 윌리(Little Willie)가 세계 첫 작동하는 전차로 꼽힙니다.

리틀 윌리에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키 큰 상자 모양이라 독일 참호의 흔한 너비인 3 m 틈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트리턴과 윌슨은 리틀 윌리가 완성될 무렵 이미 다른 생각을 해 두었는데, 궤도가 차체 둘레를 통째로 감아 도는 기계였습니다.

그 생각이 마름모꼴 전차 마더(Mother)가 됐습니다. 앞뒤로 길게 튀어나온 모양 덕에 마더는 8 ft 너비의 참호를 건넜습니다. 윌슨은 리틀 윌리의 궤도와, 차체 전체를 감아 도는 마더의 궤도 설계로 널리 공을 인정받습니다.

1916년 9월 15일 플레르-쿠르슬레트 전투에서 전차가 처음 실전에 나섰습니다. 그 무렵 전차의 최고 속도는 도로에서 4 mph 안팎, 들판에서는 그 절반쯤이었습니다. 출발점으로 가는 밤길에서도 많은 전차가 주로 구덩이에 빠지거나 고장 나서 출발점에 닿지 못했습니다. 궤도를 달았다고 땅의 문제가 다 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수장치도 달라졌습니다. 영국 순항전차 A13은 크리스티 현수장치를 단 첫 영국 전차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경주 선수였던 J. 월터 크리스티는 큰 바퀴와 강한 스프링을 특징으로 한 매우 빠른 전차를 만들었습니다.

박물관이 가진 A13은 1938년 12월부터 1939년 11월 사이에 인도된 65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1943년 쿠르스크에서 처음 싸운 독일 판터는 토션바(torsion bar, 비틀림 막대)와 한쪽에 18개씩 겹쳐 놓인 바퀴를 썼습니다. 박물관은 이 현수장치가 소련 T-34의 것보다 복잡했다고 적었습니다.

가로 연표 도표. 위 줄은 궤도와 현수장치의 역사로 1904년 혼즈비 궤도 특허, 1909년 영국 육군 첫 궤도 차량 주문, 1915년 육상함 위원회와 리틀 윌리, 1916년 마크 I 첫 실전, 1938~1939년 크리스티 현수장치를 단 A13 인도, 1943년 토션바를 쓴 판터 첫 전투가 있다. 아래 줄은 땅을 계산하는 모델로 1960년대 미 육군 첫 이동성 모델, 1978년 NRMM, 2018년 NG-NRMM 시연이 있다
궤도·현수장치와 이동성 모델의 주요 연도. 전차박물관 자료와 공개 연구 자료에 적힌 것만 옮겼습니다 (도표)(도표)

흙을 재고 길을 예측하기

차가 어떤 땅을 지나갈 수 있을지 미리 알 수 있을까요? 미 육군은 1960년대에 첫 이동성 모델(mobility model)을 만들었습니다. 2022년 미 육군 지상차량체계센터(GVSC) 수석 과학자가 발표한 자료에는 이 모델의 쓰임이 작전 분석, 획득, 설계로 적혀 있습니다.

모델에 넣는 것은 차량 자료와 지형도, 상황과 날씨 자료입니다. 지형도에는 흙, 땅의 높낮이, 식생, 도로와 장애물이 담깁니다. 차만 보지 않고 땅까지 함께 넣는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1978년에는 NATO 기준 이동성 모델(NATO Reference Mobility Model, NRMM)이 나왔습니다. NRMM은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시험으로 얻은 경험식들을 묶은 것이고, 현장에서 흙을 직접 재는 일에 크게 기댑니다. 발표 자료에서도 원뿔 관입계(cone penetrometer)와 차량 콘 지수(vehicle cone index)라는 이름이 경험식 쪽에 놓여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물리 법칙으로 계산하는 차세대 NRMM(NG-NRMM)입니다. NATO 과학기술기구의 연구 그룹 AVT-248에는 15개 나라에서 71명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4년 작업의 결과를 2018년 9월 25~27일 미국 미시간 공대 키위노 연구센터에서 시연했고, 무르거나 애매한 땅에서의 이동성을 특히 살폈습니다.

아직 어려운 점

NRMM은 오래 쓰인 만큼 한계도 뚜렷합니다. 시연을 정리한 기술 메모를 보면, 야지 이동성 계산의 상당수가 관찰에서 나온 것이라 시험 조건 밖으로 넓히면 결과가 틀릴 수 있습니다.

현수장치를 다루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NRMM은 장애물 넘기를 계산할 때 궤도 차량의 현수장치를 모두 '등가 워킹 빔(equivalent walking beam)'이라는 한 가지 꼴로 맞춰 넣습니다. 이런 까닭에 능동 현수장치처럼 지금 차량과 크게 다른 기술을 쓴 차량에는 NRMM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메모의 판단입니다.

흙은 더 까다롭습니다. 2018년 시연의 무른 흙 시험에서 NRMM은 차가 끄는 힘, 곧 견인력(drawbar pull)을 젖은 고운 흙에서만 잘 맞혔습니다. 앞으로 풀 일로는 콘 지수, 베바미터(bevameter), 원격으로 잰 지형, 수분처럼 서로 다른 자료를 이해하고 맞춰 보는 일이 꼽혔습니다.

압력은 한 줄짜리 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흙 위에서 무거운 차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맞히는 일은 아직도 연구가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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