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14일, 미국 정찰기 U-2가 쿠바에서 짓고 있던 탄도 핵미사일 기지를 찍었습니다. 사진은 다음 날 백악관에 올라갔고, 그 뒤 미국과 소련은 냉전에서 핵 충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위기는 10월 28일 소련이 쿠바의 미사일을 해체해 가져가겠다고 발표하면서 끝났습니다.
그 두 주 동안 두 나라가 붙들고 있던 생각이 핵억제입니다. "치면 감당 못 할 일이 돌아온다"는 계산으로 상대가 먼저 움직이지 않게 하려는 생각이지요. 이 글은 억제가 무엇을 노리는지, 왜 맞고도 되갚을 힘이 중요해졌는지, 그리고 냉전이 그 위험을 줄이려고 남긴 조약들이 각각 무엇을 묶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억제는 무엇을 노리나
억제(deterrence)는 상대의 머릿속 계산을 겨냥합니다. 공격해서 얻을 것보다 치를 대가가 훨씬 크다고 믿게 만들면, 상대는 스스로 공격을 접습니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움이 시작되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NATO는 자기 핵전력의 근본 목적을 억제라고 적습니다. 어느 동맹국의 근본 안보가 위협받으면 적이 얻으려는 이익을 훨씬 넘는, 받아들일 수 없는 대가를 지울 능력과 결의가 있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핵무기를 써야 할 상황은 극히 드물다는 말이 그 옆에 있고, 핵 능력의 목적은 평화를 지키고 강압을 막고 침략을 억제하는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낱말은 "믿게"입니다. 능력이 있어도 상대가 믿지 않으면 계산은 바뀌지 않습니다. NATO 문서가 능력 옆에 결의를 함께 적고, 핵 억제 임무의 신뢰성(credibility)을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쓰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벌로 막기, 거부로 막기
상대의 계산을 바꾸는 길은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대가를 키우는 것입니다. 공격하면 큰 벌이 돌아온다는 위협으로 막는 방식을 벌로 억제하기(deterrence by punishment)라고 부릅니다.
다른 하나는 공격이 성공할 가능성을 낮추는 것입니다. 해 봐야 뜻대로 안 된다고 보게 만드는 방식이고, 거부로 억제하기(deterrence by denial)라고 부릅니다. 2022년 미국 미사일 방어 검토(Missile Defense Review, MDR)는 이 둘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미국 핵무기는 대가를 지우는 믿을 만한 위협이고, 탄도미사일 방어(ballistic missile defense, BMD)는 거부에 의한 억제에 이바지한다는 정리입니다.
미사일 방어가 억제가 되는 까닭도 그 문서에 있습니다. 상대의 공격 계획에 의심과 불확실성을 넣고, 공격이 성공할 확률을 낮추고, 분쟁으로 가는 문턱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여러 층으로 막는 방어가 어떻게 짜이는지는 다층 미사일 방어 글에서 다뤘습니다.
맞고도 되갚을 수 있어야 한다
벌로 억제하려면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먼저 맞은 뒤에도 되갚을 힘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첫 공격 한 번에 보복 수단이 다 사라질 수 있다면, 되갚겠다는 위협을 상대가 믿기 어렵습니다.
냉전의 미국과 소련은 둘 다 막대한 무기와, 공격받은 뒤 되받아칠 능력을 가졌습니다. 미 국무부 역사실은 그래서 어느 쪽이 먼저 쳐도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고, 어느 쪽에든 핵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강한 동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핵을 가진 나라가 늘면 이 균형이 흔들리고 억제 체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그 시절에 이미 있었습니다.
이 논리는 미사일 방어를 바라보는 눈도 바꿨습니다. 1967년 1월 존슨 대통령은 소련이 모스크바 둘레에 제한된 ABM(탄도탄 요격) 방어 체계를 짓기 시작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 방어가 있으면 한쪽이 먼저 치고 날아오는 보복 미사일을 쏘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걱정이 나왔습니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서로 상대의 확대에 반응할수록 "미친 길"을 고르는 것이라고 했고, 공격과 방어 전략 체계를 함께 묶으면 관계가 안정된다는 생각이 협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생존성은 냉전 뒤에도 중심에 남았습니다. 2010년 미국 핵태세검토(Nuclear Posture Review, NPR)는 생존성 있는 탄도미사일 잠수함에 실린 탄두로 "확실한 2차 공격 능력"(assured second-strike capability)을 유지할 수 있어 전력 구조가 전략적 안정을 돕는다고 보았습니다.
세 갈래로 나눈 까닭: 3축 체계
미국은 1960년대 초부터 전략 핵무기를 세 가지 수단에 나눠 실어 왔습니다. 땅에서 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 핵잠수함에서 쏘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그리고 장거리 중폭격기입니다. 이 묶음을 3축 체계(triad)라고 부릅니다.
처음부터 깊은 설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 의회조사국(CRS) 자료는 냉전 초기에 세 종류가 생긴 데에 각 군이 핵무기의 한몫을 맡고 싶어 한 사정이 크게 작용했다고 적습니다. 그 뒤에 분석가들과 국방부가 이유를 다듬었습니다. 배치 방식마다 장단점이 달라 서로 메워 주고, 공격하는 쪽의 계획을 복잡하게 하며, 첫 공격을 받아도 전력의 상당 부분이 살아남게 한다는 것입니다.
각 다리의 성격은 짧게 정리된 말이 있습니다. 전 미 전략사령관 제임스 엘리스 제독은 2005년 인터뷰에서 ICBM은 반응성, SLBM은 생존성, 폭격기는 유연성과 회수 능력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폭격기는 위기가 분쟁으로 번지지 않으면 기지로 되부를 수 있습니다. 2010년 NPR은 폭격기를 눈에 보이게 앞으로 내보내는 일이 위기 때 억제와 동맹 안심을 함께 노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동맹에게 넓힌 억제
억제를 자기 땅만이 아니라 동맹국까지 넓히는 것을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라고 합니다. "우리 동맹을 치는 것은 우리를 치는 것"이라는 약속을 상대가 믿게 하는 일이라서, 약속을 눈에 보이게 하는 장치가 함께 붙습니다.
NATO에서는 동맹국 가운데 프랑스, 영국, 미국 셋이 NPT가 정한 핵무기 보유국입니다. NATO 문서는 동맹의 전략 핵전력, 특히 미국의 것을 동맹 안보의 최고 보증으로 두고, 영국과 프랑스의 독자 핵전력도 결정하는 곳이 여럿이라는 점에서 상대의 계산을 복잡하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유럽에는 미국 핵무기가 앞으로 나와 있지만, 미국이 그 통제와 보관을 완전히 쥐고 있습니다. 동맹국은 핵 결정의 모든 면에 정치적 통제를 유지하며, 그 일을 맡는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 NPG)은 1966년에 생겼습니다.
한반도에도 같은 말이 쓰입니다. 2023년 4월 26일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에서 한국은 미국의 확장 억제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했고, NPT 의무를 지킨다는 약속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가 핵을 포함한 모든 능력으로 뒷받침된다고 밝혔고, 두 정상은 확장 억제를 강화하려고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을 새로 세운다고 발표했습니다.
쿠바 위기 뒤에 생긴 것들
쿠바 위기의 교훈 가운데 하나는 뜻밖에 소박했습니다. 위기 내내 두 정상과 참모들은 상대의 진짜 의도를 분명히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백악관과 크렘린을 직접 잇는 통신선이 놓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핫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째 결과는 핵실험이었습니다. 1963년 미국, 소련, 영국은 부분핵실험금지조약(Limited Test Ban Treaty, LTBT)에 서명했습니다. 대기권, 우주, 물속의 모든 핵실험을 금지한 조약이고, 미 국무부 역사실은 이것을 냉전의 첫 군비통제 협정으로 꼽습니다.
지하 실험이 빠진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앞선 협상은 확인 문제에서 번번이 막혔습니다. 현장 사찰 없이는 소련이 지하 핵실험을 하는지 잦은 지진 활동인지 가릴 수 없다고 미국과 영국은 보았고, 소련은 사찰을 꺼렸습니다.
지하 실험을 이 첫 조약에서 빼기로 하자 합의는 빨리 이뤄졌습니다. 이 조약이 핵무기 개발과 확산에 준 실제 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뒤의 군비통제가 기댈 선례가 되었습니다. 1974년 지하핵실험제한조약(Threshold Test Ban Treaty, TTBT)은 위력 150 kt을 넘는 지하 실험을 제한했습니다. 1996년 9월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omprehensive Nuclear-Test-Ban Treaty, CTBT)이 서명을 위해 열렸고, 이 조약은 부속서 2에 적힌 44개국이 모두 비준해야 발효합니다.
퍼지지 않게: NPT
1960년대 초에는 핵무기 기술이 널리 퍼질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었습니다. 1964년까지 핵을 가진 나라는 미국, 소련, 영국에 1960년 첫 핵폭탄을 터뜨린 프랑스와 1964년의 중국을 더해 다섯이었습니다. 핵 공격 능력을 가진 나라가 미국, 영국, 소련뿐인 동안에는 억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런 나라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걱정거리였습니다.
그 걱정에서 나온 것이 핵확산금지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NPT)입니다. 핵을 가진 서명국은 핵무기와 그 기술을 다른 나라에 넘기지 않기로 하고, 핵이 없는 나라는 핵무기를 받거나 개발하거나 얻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든 서명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를 받기로 했고, 안전조치는 IAEA의 사찰로 조약을 지키는지 확인하는 장치입니다. 유엔 군축사무국은 비확산, 군축,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이 조약의 세 기둥으로 부릅니다.
NPT는 1968년 서명을 위해 열렸고 1970년 발효했으며, 1995년 5월 11일 기한 없이 연장됐습니다. 유엔 군축사무국 자료로는 핵무기 보유국 다섯을 포함해 191개국이 가입했고, 5년마다 조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검토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명 당시 핵 보유국인 프랑스와 중국, 그리고 여러 비핵 국가가 서명하지 않았고, 1974년에는 인도가 첫 핵무기를 폭발시켰습니다.
같은 무렵 우주에도 선이 그어졌습니다. 부분핵실험금지조약 4년 뒤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체계를 위성으로 우주에 두지 못하게 하는 우주 조약에 합의했습니다.
수를 묶은 조약들
시험과 확산을 묶은 다음 차례는 무기의 수였습니다. 1972년 5월 26일 닉슨과 브레즈네프는 모스크바에서 ABM 조약과 SALT I 잠정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냉전에서 처음으로 두 나라가 자기 핵미사일의 수를 제한하기로 한 것입니다.
ABM 조약에는 앞에서 본 보복 능력의 논리가 들어 있습니다. 전략 미사일 방어를 한쪽에 요격미사일 200기로 묶고, 방어 기지는 수도 하나와 ICBM 기지 하나를 지키는 두 곳까지만 허용했습니다. 방어가 커지면 보복을 막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앞의 걱정을, 방어의 크기를 정해 두는 방식으로 다룬 것입니다.
그 뒤의 조약은 더 구체적으로 셌습니다. 1987년 12월 8일 서명한 INF 조약은 사거리 500~5,500 km의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1991년 6월 1일까지 없애게 했고, 미국의 탈퇴가 2019년 8월 2일 효력을 내면서 끝났습니다.
2011년의 New START는 2026년 2월 5일까지 미국 전략 전력을 묶었습니다. 두 조약이 무엇을 어떻게 세고 확인했는지는 같은 시리즈의 "군비통제 조약: INF와 New START는 무엇을 줄였나"에서 따로 다룹니다.
레이저와 맞닿는 점: 쓰이기 전에 금지된 무기
이 글에서 본 핵 조약들은 핵무기가 만들어지고 시험이 거듭된 뒤에 나왔습니다. 실험을 묶고, 확산을 막고, 수를 세는 조약이 차례로 뒤따랐지요. 레이저에는 반대 순서의 예가 있습니다.
1995년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onvention on Certain Conventional Weapons, CCW)의 실명 레이저 무기 의정서 IV가 채택됐습니다. 유엔 군축사무국은 이것을 무기 체계가 쓰이기 전에 미리 금지된 예로 듭니다. 조약이 어떤 레이저를 "실명 레이저 무기"로 정의했는지는 눈 안전과 국제 규범: 실명 레이저 무기 금지 의정서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