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3월 8일 토요일, 미국 버지니아주 햄프턴 로즈(Hampton Roads)에 정박한 북군 봉쇄 함대는 빨래하는 날이었습니다. 돛줄마다 푸르고 흰 옷이 걸려 있던 그 낮에, 강 하구에서 굴뚝 연기를 뿜는 낯선 물체가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한 목격자는 그 모습을 "굴뚝에 불이 난 듯 연기를 뿜는 아주 큰 헛간 지붕" 같았다고 남겼습니다.
그것은 남부의 철갑함 버지니아(CSS Virginia)였습니다. 그날 저녁 북부의 철갑함 모니터(USS Monitor)가 뉴욕에서 끌려와 도착했고, 다음 날 아침 두 배는 네 시간 동안 맞붙었습니다. 쇠로 감싼 군함끼리 처음 싸운 이 해전은 어떻게 일어났고, 누가 이겼으며, 무엇을 바꿨을까요?
불탄 프리깃에서 버지니아함으로
버지니아의 출발은 북군의 증기 프리깃 메리맥(USS Merrimack)이었습니다. 메리맥은 1855년 보스턴 해군 조선소에서 진수된 배로, 1861년 4월에는 퇴역한 채 버지니아주 포츠머스의 고스포트(Gosport) 해군 조선소에서 수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소 사령관 매콜리는 주민 봉기를 두려워해 조선소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조선소를 불태우고, 대포를 못 쓰게 만들고, 메리맥을 포함한 배를 모두 가라앉혔습니다. 그런데 물러나는 북군은 배를 수리하는 건선거(dry dock)를 부수지 못했습니다. 이 건선거가 남부에 남았습니다.
남부 해군에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북군은 먼로 요새(Fort Monroe)를 지키며 햄프턴 로즈 입구를 봉쇄했는데, 남부에는 북군보다 많은 배를 지을 시설도 물자도 없었습니다. 남은 희망은 기술이었습니다. 남부 해군 장관 스티븐 맬러리는 1861년 5월, 나무 배에 맞서 철로 싸우는 것이 경제로 보나 해전의 승리로 보나 옳다고 적었습니다.
1861년 5월 말 남부는 메리맥을 건져 올렸습니다. 이후 9개월 동안 조선소 일꾼들이 불탄 선체를 포곽식 철갑 충각함(casemate ironclad ram)으로 고쳤고, 배 이름은 버지니아가 됐습니다. 포곽은 포를 감싸는 비스듬한 철 지붕이고, 충각은 뱃머리에 단 들이받는 쇠뿔입니다. 물 위로 드러난 모든 곳을 철판이 덮었는데, 그 무게 때문에 흘수(물에 잠기는 깊이)가 22피트나 됐습니다.
버지니아는 1862년 2월 17일 고스포트에서 진수됐습니다. 화약이 모자라 출격은 늦어졌습니다. 공사는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1861년 여름 내내 기자와 시민이 조선소를 구경했고 남북의 신문이 진행 상황을 실었습니다.
100일 만의 배: 에릭슨의 모니터함
북부도 이 소식을 알았습니다. 남부가 장갑함을 띄우면 북군에는 맞설 배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1861년 8월 3일 해군 장관 기디언 웰스는 철갑 군함 설계안을 내 달라는 공고를 냈습니다.
미국이 철갑함을 처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모니터 유물을 보존하는 마리너스 박물관(The Mariners' Museum)은 미국을 위해 처음으로 진수에 성공한 철갑선이 1861년 여름, 해군이 아니라 육군 병참대 아래에서 미시시피강용으로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해군 지휘부는 철선 건조에 여전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스웨덴 출신 기술자 존 에릭슨(John Ericsson)의 설계는 처음에 철갑함 위원회(Ironclad Board)에서 너무 기이하다는 이유로 거절됐습니다. 에릭슨이 직접 위원회에 나와 설계를 변호했고, 결국 승인을 권한 세 설계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계약금은 27만 5천 달러였고, 100일 안에 완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주 계약은 1861년 10월 4일에 맺어졌습니다. 선체는 뉴욕 그린포인트의 컨티넨털 철공소, 기관은 델러마터사, 포탑은 노블티 철공소가 나눠 맡았습니다. 포탑은 1인치 두께 철판을 여덟 겹 쌓아 만들었습니다. 배 이름 '모니터'는 "경고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에릭슨이 남부와 영국에 경고한다는 뜻을 담아 지었습니다.
모니터는 1862년 1월 30일 진수됐고 2월 25일 존 워든(John L. Worden) 대위의 지휘로 취역했습니다. 건조 기간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힙니다. NOAA 보호구역 쪽은 "거의 100일", NOAA의 2017년 글은 "98일", 마리너스 박물관은 "100일을 조금 넘겨"라고 씁니다.
3월 6일 예인선 세스 로가 물에서 불안정한 모니터를 끌고 뉴욕을 떠났습니다. 이튿날 폭풍이 불어 갑판으로 물이 넘쳤고, 아래 칸에 공기를 넣는 송풍 장치가 멈췄습니다. 송풍 장치가 없으면 아래 칸에서 아무도 일할 수 없었습니다. 기관장 스티머스가 장치를 고치는 데 큰 몫을 했고, 배는 거의 가라앉을 뻔하다가 3월 8일 저녁 햄프턴 로즈에 닿았습니다.
3월 8일: 나무 배들의 하루
3월 8일은 버지니아의 시운전 날이기도 했습니다. 평균 속도가 5노트에 그친 버지니아는 엘리자베스강을 느리게 내려왔습니다. 맞은편에는 북군의 큰 군함 다섯 척이 있었는데 모두 나무 군함이었습니다. 미네소타와 로어노크에만 보조 증기 기관이 있었고, 컴벌랜드와 콩그레스, 세인트로렌스는 돛으로만 움직였습니다.
프랭클린 뷰캐넌(Franklin Buchanan)이 이끈 버지니아는 먼저 범선 컴벌랜드(Cumberland)를 노렸습니다. 북군의 포탄은 대부분 버지니아의 비스듬한 옆면에 맞고 미끄러졌습니다. 버지니아는 컴벌랜드의 우현에 충각을 박았고, 컴벌랜드는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컴벌랜드의 포수들은 배가 잠기는 동안에도 포를 쐈습니다. 뷰캐넌도 뒤에 북군 수병들이 물 위에 있는 한 포를 쏘며 용감히 싸웠다고 보고했습니다.
다음은 프리깃 콩그레스(Congress)였습니다. 콩그레스는 움직이려다 좌초했고, 맞서 쏘다가 오후 4시 백기를 올렸습니다. 교전 시간은 기록마다 다릅니다.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NHHC)의 두 해설은 한 시간으로, 마리너스 박물관은 거의 두 시간으로 적고, 함장 조지프 스미스를 포함해 승조원 대부분이 죽거나 다친 뒤의 항복이었다고 덧붙입니다.
항복을 받는 동안 해안에서 총격이 날아와 양쪽 여러 사람이 맞았고, 뷰캐넌도 다쳤습니다. 뷰캐넌은 콩그레스를 불태우라고 명령했고, 지휘는 부함장 케이츠비 존스(Catesby ap Roger Jones) 대위에게 넘어갔습니다. 불타던 콩그레스는 한밤중에 화약고가 터졌습니다. 그 시각을 NHHC 작전 해설은 자정 조금 뒤로, 사진 자료실 해설은 자정 뒤 두 시간쯤으로 적습니다.
그사이 뉴포트뉴스 쪽으로 다가가던 북군 프리깃 세 척이 좌초했습니다. 둘은 예인선이 끌어냈지만 미네소타(Minnesota)는 모래톱에 박힌 채 남았습니다. 버지니아는 흘수가 깊어 미네소타에 1마일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고, 어두워지자 물러났습니다. 국립공원청(NPS)의 짧은 해설은 이날을 버지니아가 두 척을 가라앉히고 한 척을 좌초시킨 날로 요약합니다.
첫날의 값은 컸습니다. 버지니아는 컴벌랜드와 콩그레스를 부수고 두 배의 승조원 240명 넘게를 죽였습니다. 버지니아 쪽 사상자는 스물넷이 안 됐습니다. 버지니아도 포 두 문의 포구가 떨어져 나가고 바깥 장비 대부분이 쓸려 나갔지만 여전히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도착한 모니터는 로어노크의 함장 마스턴에게 보고했고, 미네소타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리너스 박물관의 표현대로 모니터는 버지니아를 정박지에서 가라앉히기에는 너무 늦게 왔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을 막기에는 늦지 않았습니다.
3월 9일: 철과 철이 만나다
3월 9일 아침 짙은 안개 때문에 버지니아는 오전 8시가 돼서야 미네소타 쪽으로 나섰습니다. 모니터 승조원 다수는 24시간 넘게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남부 배 패트릭 헨리의 한 장교는 모니터를 "물에 뜬 커다란 지붕널 가운데 거대한 치즈 상자가 솟은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돛도, 바퀴도, 굴뚝도, 포도 보이지 않는 배였습니다.
모니터가 포를 쏘자 버지니아를 뺀 남부의 나무 배들은 물러났습니다. 그 뒤 네 시간 동안 두 철갑함은 서로를 돌며 싸웠습니다. 승조원들은 쇠로 둘러싼 칸 안의 심한 더위와 나쁜 환기를 견뎠고, 한때는 버지니아가 모니터를 들이받으려 할 만큼 가까워졌습니다.
모니터의 포탑 안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포탑은 잘 돌았지만 한번 돌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려웠습니다. 포수들은 결국 포탑을 계속 돌게 두고 적이 눈앞에 오면 쐈습니다. 갑판에 분필로 그려 둔 방향 표시는 쏟아지는 땀에 지워졌고, 조타실의 워든이 옛 방식대로 내린 "우현 정횡" 같은 지시는 돌아가는 포탑 안에서 별 쓸모가 없었습니다.
두 배 모두 문제를 안고 싸웠습니다. 버지니아는 굴뚝이 날아가 원래도 느린 움직임이 더 둔해졌습니다. 모니터는 새 기계의 초기 문제로 11인치 포 두 문의 효과가 떨어졌고, 탄약 보급 문제로 잠시 얕은 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흘수가 깊은 버지니아는 그 얕은 물로 따라오지 못했고, 모니터는 그동안에도 미네소타를 지켰습니다.
정오 조금 뒤 버지니아의 포수들은 모니터의 조타실을 노렸습니다. 조타실은 뱃머리 가까이 있는 작은 철 덩어리였습니다. 조타실 앞에서 포탄이 터져 워든이 다쳤고, 잠시 눈이 먼 워든은 부함장 새뮤얼 데이나 그린(Samuel Dana Greene) 대위에게 지휘를 넘겼습니다. 지휘를 바꾸는 동안 모니터는 얕은 곳으로 물러났습니다.
버지니아의 존스에게는 미네소타를 다시 칠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장교들은 썰물과 배의 손상을 들어 물러나자고 설득했습니다. 그린은 방어에 머물며 미네소타를 지키라는 엄한 명령을 받고 있었기에 쫓지 않았습니다.
존스는 모니터가 싸움을 그만뒀다고 읽었고, 모니터는 버지니아가 떠났다고 읽었습니다. 양쪽 모두 이겼다고 말했습니다.
미네소타는 3월 10일 이른 아침 예인선들이 마침내 모래톱에서 띄워 냈습니다.
두 배는 어떻게 달랐나
두 배는 같은 "철갑함"이었지만 모양도 출신도 전혀 달랐습니다. 버지니아는 원래 40문 프리깃이던 배의 선체 위에 비스듬한 철 지붕을 얹은 배였습니다. 선체는 물에 깊이 잠겼고, 흘수 22피트 때문에 얕은 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뱃머리의 철 충각은 3월 8일 컴벌랜드를 들이받으면서 대부분 떨어져 나갔습니다.
모니터는 처음부터 새로 설계한 배였습니다. 국립공원청에 따르면 갑판은 물 위로 18인치만 솟았고, 평평한 철 갑판 가운데에 지름 20피트의 원통형 포탑이 서 있었습니다. 포는 그 안의 11인치 달그렌 포 두 문뿐이었습니다. 돛 없이 증기로만 움직였고, 길이는 DANFS 함정 사전에 172피트, NOAA 쪽에 173피트로 적혀 있습니다.
버지니아는 포를 비스듬한 포곽 안에 두었고, 모니터는 포를 회전 포탑에 얹었습니다. 마리너스 박물관은 옛 해전의 관례가 이 싸움에서 곧 무너졌다고 적습니다. 다만 3월 9일의 포탑 안 모습이 보여 주듯, 새 방식이 처음부터 매끄럽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맞부딪친 결과는 단순했습니다. 두 배는 아침 내내 서로 쐈지만 장갑판이 포탄을 튕겨 냈습니다. NOAA의 표현으로는 포탄이 옆면에 맞고 튕겨 "움푹 팬 자국 정도만" 남겼습니다. 어느 배도 심하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겼나: 전술과 전략의 두 답
이 물음에는 한 줄 답이 없습니다. NHHC는 철갑함끼리의 겨룸에 뚜렷한 승자가 없었다고 먼저 적습니다. 그러고는 두 가지 답을 나란히 둡니다.
전술로 보면 북군의 승리였습니다. 미네소타가 위험에서 벗어났고, 모니터는 그 배를 지키는 임무를 다했으며, 버지니아는 그 배를 부수지 못했습니다. 전략으로 보면 남부의 승리였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부는 컴벌랜드와 콩그레스를 부쉈지만, 남부 육군이 버지니아의 공격과 손발을 맞추지 못해 북군은 먼로 요새를 지켰고 봉쇄도 이어졌습니다.
버지니아가 버티는 동안 북군은 제임스강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반도의 북군 육군을 이끈 조지 매클렐런에게는 새 작전 방식이 필요했고, 그는 1862년 3월 17일 먼로 요새에 군과 보급품을 내려 리치먼드를 향한 새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해전 하나가 육군의 길을 바꾼 셈입니다.
마리너스 박물관은 두 배가 모두 목표의 일부를 이뤘다고 봅니다. 버지니아는 북군 주요 함정을 부수고 한동안 제임스강을 막았고, 모니터는 함대가 더 부서지는 것을 막고 버지니아를 햄프턴 로즈 안에 묶었습니다. 미네소타의 한 승조원은 자기 묘비를 모니터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박물관은 전합니다.
두 배의 끝과 바다 밑의 모니터함
두 배는 다시 싸우지 않았습니다. 4월 11일 버지니아가 포함 넷과 예인선 둘을 거느리고 다시 나와 슈얼스 포인트 근처에 멈췄지만, 모니터는 명령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두 배는 서로를 묶어 둔 채 남부군이 리치먼드 쪽으로 물러날 때까지 지냈습니다.
노퍽이 넘어가자 버지니아는 홀로 남았습니다. 흘수가 깊어 제임스강을 거슬러 리치먼드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1862년 5월 11일 지휘관 조사이어 태트널은 배를 스스로 없앴고, 배에 붙은 불은 곧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태트널은 이 일로 군법회의에 섰다가 무죄를 받았습니다.
모니터의 끝은 바다에서 왔습니다. 1862년 12월 29일 모니터는 외륜 증기선 로드아일랜드에 끌려 햄프턴 로즈를 떠났습니다. 섣달그믐 해터러스곶(Cape Hatteras) 앞에서 바람과 파도가 거세졌고, 물이 새어 기관이 잠기면서 증기 압력이 떨어졌습니다. 승조원들은 펌프와 양동이로 물을 퍼내다 빨간 등을 올려 구조를 청했습니다.
아래 칸에서 나오는 길은 포탑 하나뿐이었습니다. 갑판을 건너 뛰어가던 여러 사람이 파도에 쓸려 갔습니다. 배는 12월 31일 자정 조금 뒤 가라앉았고, 62명 가운데 46명이 살고 16명이 숨졌습니다. DANFS는 그 16명을 장교 4명과 수병 12명으로 적습니다.
난파선은 1973년 듀크대 연구선 이스트워드의 과학자들이 해터러스곶 앞 약 16마일 바다에서 찾았습니다. 배는 뒤집힌 채였습니다. 1974년 탐사로 모니터임이 확인됐고, 1975년 1월 30일 이곳은 미국의 첫 국립 해양 보호구역(national marine sanctuary)이 됐습니다.
2001년에는 NOAA와 미 해군, 마리너스 박물관이 함께 증기 기관을 건져 올렸습니다. 이듬해인 2002년 7~8월에는 포탑을 올렸고, NOAA는 포탑이 물 위로 나온 날을 8월 5일로 적습니다. 배의 5분의 1, 200톤이 넘는 유물이 올라와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의 마리너스 박물관에서 보존 처리를 받고 있습니다.
포탑 안에서는 수병 두 사람의 유골이 나왔습니다. NOAA가 2012년 두 사람의 얼굴을 복원해 공개할 때까지도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고, 다른 실종자 14명의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같은 발표는 모니터 승조원 가운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적어도 한 명 있었다고 적습니다.
남긴 것: 나무 배 시대의 끝
모니터와 버지니아가 세계 첫 철갑함은 아닙니다. 마리너스 박물관도 그전에 철갑함이 분명히 있었다고 적습니다. 이 해전이 남긴 것은 철갑함끼리 처음 맞붙은 결과였습니다. 3월 8일에는 장갑 없는 나무 군함이 철갑함 앞에서 얼마나 약한지가 드러났고, 3월 9일 대등한 철갑함끼리의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NHHC 사진 자료실 해설은 전날의 일방적인 싸움과 견준 이 결과가 산업 시대 전쟁의 승리를 상징했다고 봅니다. 기존 전열함과 프리깃의 가치는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의 눈에서 크게 깎였고,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시작된 철갑함 건조 계획은 빨라졌습니다. 장갑 군함의 경쟁은 1940년대까지 80년쯤 이어졌습니다. 북부만 해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철갑함을 약 50척 모았습니다.
두 배는 뒤따른 배들의 본보기가 됐습니다. 남부의 철갑 충각함과 북부의 포탑함이 대서양과 멕시코만, 서부의 강에서 싸웠고, 모니터형 설계는 세기말까지 남북아메리카, 유럽, 러시아에서 해안과 강을 지키는 주력 군함으로 쓰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모니터의 경리관 윌리엄 키일러는 아내에게 "영광을 얻기에는 위험이 모자란다"고 썼고, 뒤에 한 남부 철갑함 장교는 "이 직업의 시는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작가 허먼 멜빌은 1866년에 낸 시에서 이 싸움을 크랭크와 축과 나사로 돌아가는 싸움으로 그렸습니다. 마리너스 박물관은 이날을 기계와 무장이 가장 중요해진 해전의 다음 단계가 열린 때로 봅니다.
다음에 읽을 글
- 미국 남북전쟁 한눈에: 1861년부터 1865년까지: 햄프턴 로즈의 봉쇄와 리치먼드 작전을 전쟁 전체 속에서 봅니다.
- 트라팔가르 해전: 넬슨이 전열을 끊은 날: 반세기 앞선 나무 범선의 전열 해전과 견줘 봅니다.
- 강선 소총과 미니에 탄: 남북전쟁의 사상자가 많았던 배경: 같은 전쟁의 육지에서 바뀐 무기를 봅니다.
- 구축함과 호위함: 철갑함 뒤 군함의 이름과 역할이 어떻게 나뉘었는지 이어 봅니다.
- 복합장갑과 반응장갑: 쇠판 한 겹에서 시작한 장갑이 오늘 어떤 구조가 됐는지 봅니다.
- 군사기술의 전환점: 철갑함 같은 전환이 20세기에는 어떤 기술로 이어졌는지 연도 순서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