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코어에 센 펌프 빛을 넣는 문제
광섬유 레이저(fiber laser)는 유리 가닥 한가운데의 가는 길인 코어(core)에서 빛을 키웁니다. 빛을 키우는 데 드는 에너지는 바깥에서 펌프 빛으로 넣어 줍니다. 출력이 큰 레이저일수록 펌프 빛도 세야 합니다.
그렇다면 센 펌프 빛을 그 가는 코어에 곧장 넣으면 될까요? 생각처럼 되지 않습니다. 빛이 지나는 모양이 하나뿐인 단일 모드(single-mode) 코어에 펌프 빛을 효율적으로 넣으려면, 펌프 광원도 단일 모드 레이저여야 합니다.
고출력 광섬유 광원은 씨앗 레이저(seed laser)가 낸 약한 빛을 광섬유 증폭기로 키우는 방식으로 꾸미기도 합니다. 이런 구성을 주 발진기 출력 증폭기(master oscillator power amplifier, MOPA)라고 부르고, 이때 키우는 빛을 신호(signal)라고 합니다.
고출력 단일 주파수 광섬유 증폭기를 정리한, 2026년에 사전 공개(arXiv)된 한 리뷰 장이 이 문제를 잘 보여 줍니다. 클래드(cladding)가 한 겹인 단일 모드 광섬유 증폭기라면, 필요한 단일 모드 펌프 레이저의 출력이 보통 100 mW 안팎으로 묶입니다. 더 센 펌프를 쓰려고 코어를 키우면 이번에는 고차 모드가 생깁니다. 그러면 신호 출력이 얼룩덜룩해져 빔 품질(beam quality)이 나빠지는 일이 잦습니다.
센 펌프 빛을 받아들이면서 빔도 깨끗하게 지키는 길이 있습니다. 펌프 빛과 레이저 빛에 서로 다른 길을 내주는 것입니다. 그 두 길을 한 가닥에 담은 것이 이중 클래드 광섬유(double-clad fiber, DCF)입니다.
길을 둘로 나누기: 이중 클래드의 구조
이중 클래드 광섬유를 개척한 사람은 스니처(Snitzer)와 동료들입니다. 펌프 빛을 받는 코어의 크기와 신호 빛이 지나는 코어의 크기를 서로 떼어 놓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앞의 리뷰 장이 이 대목에 붙인 참고문헌은 1988년과 1989년의 학회 발표 두 편이고, 1988년 발표의 제목에는 비켜 놓은 코어(offset core)라는 말도 들어 있습니다.
단면은 세 겹입니다. 가운데에 이터븀 같은 희토류 원소를 넣은 단일 모드 코어가 있고, 희토류를 넣지 않은 클래드 두 겹이 그 둘레를 감쌉니다. 굴절률은 코어가 가장 높고 바깥 클래드가 가장 낮습니다.
이중 클래드 광섬유 증폭기에서는 키울 신호를 코어로, 펌프 빛을 안쪽 클래드로 넣습니다. 신호는 희토류를 넣은 코어 안에 머물고, 펌프 빛은 안쪽 클래드와 코어가 함께 이루는 더 큰 "코어"를 지납니다. 펌프 빛의 눈으로 보면 안쪽 클래드가 바깥 클래드에 둘러싸인 커다란 코어인 셈입니다.
길을 나누면 얻는 것이 있습니다. 안쪽 클래드는 코어보다 훨씬 클 수 있고, 개구수(numerical aperture, NA)도 코어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중 모드 단일 이미터나 이미터가 여럿인 다이오드 레이저처럼 밝기(brightness)가 낮은 광원에서도 센 펌프 빛을 효율적으로 넣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밝기가 낮다는 말은 레이저 출력 빛에 견준 말입니다. 다이오드로 펌핑하는 고체 레이저를 보면, 보통 고출력 반도체 다이오드 배열이나 바로 펌핑합니다. 배열이나 바를 이루는 다이오드 레이저 하나하나는 서로 결합되어 있지 않아서, 나오는 빛의 공간 결맞음(coherence)이 크게 줄어듭니다. 그래도 이런 배열의 빛은 보통의 섬광등(flashlamp)보다는 훨씬 밝습니다.
결맞음이 낮은 이런 빛은 가는 단일 모드 코어에 효율적으로 넣기 어렵습니다. 앞에서 봤듯이 그런 코어에 펌프 빛을 효율적으로 넣으려면 펌프도 단일 모드 레이저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넓고 개구수가 큰 안쪽 클래드는 이런 빛도 받아 줍니다.
2010년에 나온 리뷰 논문(Richardson, Nilsson, Clarkson)의 초록은 그 앞 10년 동안 클래드 펌핑(cladding-pumped) 광섬유 구조를 쓰면서 희토류 첨가 광섬유 광원의 출력이 극적으로 올랐다고 정리합니다. 그 성공의 까닭으로는 주로 광섬유의 기하(geometry), 곧 가늘고 긴 모양을 듭니다. 이 모양이 코어에서 나는 열의 영향을 잘 견디게 하고, 밝기가 비교적 낮은 다이오드 펌프 빛을 밝기가 높은 레이저 출력으로 효율적으로 바꾸게 한다는 것입니다.
펌프 빛은 어떻게 코어에 흡수되나
넓은 방 한가운데 기둥이 하나 서 있고, 공 여러 개가 벽에 부딪히며 방 안을 튀어 다닌다고 해 봅시다. 공은 기둥을 지나칠 때만 기둥에 닿습니다. 기둥이 가늘수록 공이 기둥에 닿는 일은 드물어집니다.
실제 펌프 빛은 공 몇 개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중 모드 레이저에서는 발진하는 공간 모드들이 저마다 따로 발진하고, 그 세기(intensity) 분포가 결맞지 않게 겹칩니다. 그 결과 펌프 빔의 세기는 안쪽 클래드와 코어에 걸쳐 거의 고르게 퍼지고, 그 가운데 코어와 겹치는 부분이 흡수됩니다. 비유가 맞는 곳은 코어를 지나는 빛만 흡수된다는 점 하나입니다.
IPG Photonics는 자기 측면 펌핑 방식을 소개하면서 이 과정을 이렇게 그립니다. 펌프 빛이 클래드 안에서 여러 번 반사하며 단일 모드 코어를 자주 가로지르고, 그때 코어의 희토류 이온이 빛을 흡수했다가 다시 내놓습니다.
대신 한 번에 흡수되는 몫은 작습니다. 클래드로 펌핑한 광섬유의 흡수 계수는 코어로 바로 펌핑할 때보다 낮고, 대략 코어 넓이 대 클래드 넓이의 비에 비례합니다. 흡수 계수는 펌프 빛이 같은 길이를 지나는 동안 얼마나 흡수되는지를 나타냅니다. 코어가 단면에서 차지하는 몫이 작을수록 흡수도 약해집니다.
안쪽 클래드의 모양이 중요한 까닭
펌프 빛을 얼마나 흡수하느냐는 안쪽 클래드의 모양에 크게 달려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설계는 코어, 안쪽 클래드, 바깥 클래드 세 겹이 모두 광섬유 축을 중심으로 한 원입니다. 만들기 쉽고, 펌프 빛을 넣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이 둥근 단면에는 코어와 거의 겹치지 않는 고차 펌프 모드가 많습니다. 이런 빛은 흡수되지 않고 지나가 버려서, 상당한 펌프 출력이 버려집니다. 앞의 비유로 치면 기둥 둘레를 돌기만 하고 기둥에는 닿지 않는 공입니다.
흡수를 늘리는 효과적인 방법은 둥근 대칭을 깨는 것입니다. 하나는 코어를 가운데에서 비켜 놓는 방법으로, 더 많은 모드가 코어와 겹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안쪽 클래드를 원이 아닌 모양으로 하는 방법입니다. 원의 한쪽을 곧게 자른 D자나 경기장 모양 같은 혼돈형(chaotic) 모양에서는 특히 펌프 모드가 단면 거의 전체로 퍼져 흡수가 늘어납니다.
모양이 불규칙할수록 좋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규칙한 모양은 펌프 빛을 적은 손실로 넣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육각형이나 팔각형처럼 비교적 대칭인 모양이 더 널리 쓰입니다.
펌프 빛을 넣는 길: 끝과 옆
펌프 빛을 이득 광섬유에 넣는 부품을 펌프-신호 결합기(pump–signal combiner)라고 부릅니다. 광섬유로만 이어 만드는 방식도 있고, 공기 중의 자유 공간 광학(free-space optics)을 거치는 방식도 있습니다.
결합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름이 갈립니다. 광섬유의 입력 쪽에 두면 같은 방향 펌핑(co-pumping), 출력 쪽에 두면 반대 방향 펌핑(counter-pumping), 양 끝에 두면 양방향 펌핑(bidirectional pumping)입니다. 이득 광섬유 중간에 두어 빛이 실제로 커지는 길이를 늘리는 분산 펌핑(distributed pumping)도 있습니다.
광섬유로만 이은 방식에서는 펌프 빛을 광섬유의 끝이나 옆에서 넣습니다. 끝에서 넣는 결합기는 결합기 부분에서 신호가 지나는 코어의 지름이 바뀌어, 쓰임에 따라 성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옆에서 넣는 결합기는 같은 방향, 반대 방향, 분산 펌핑에 다 쓸 수 있고, 신호가 지나는 코어의 굵기도 장치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습니다.
옆에서 넣는 방식을 앞세우는 회사도 있습니다. IPG는 자기 광섬유 레이저 기술의 바탕이 클래드 측면 펌핑 기법과 분산된 단일 이미터 다이오드 펌핑 구조(distributed single-emitter diode pumping architecture)라고 밝힙니다. 이 기법으로 펌프용 다이오드 여러 개의 빛을 이득 광섬유의 클래드에 효율적으로 넣는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입니다.
결정을 쓰는 고체 레이저에도 비슷한 이름의 구분이 있습니다. 다이오드로 펌핑하는 고체 레이저는 보통 종방향(longitudinal) 펌핑과 횡방향(transverse) 펌핑으로 나눕니다. 출력이 낮은 영역에서는 대체로 종방향 펌핑의 펌프 효율이 훨씬 좋은데, 레이저 결정 안에서 레이저 모드가 차지하는 부피만 펌핑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닮았지만 결정 레이저를 두고 한 구분이라, 광섬유의 끝면·측면 펌핑과 같은 말로 읽으면 안 됩니다.
펌프 다이오드
광섬유 증폭기는 흔히 광섬유에 이어 붙인(fiber-coupled) 다이오드 레이저로 펌핑합니다. 이렇게 펌프 광원으로 쓰는 레이저 다이오드(laser diode)를 펌프 다이오드(pump diode)라고 부릅니다. 다이오드는 이미터가 하나인 단일 이미터(single emitter)이거나 이미터를 한 줄로 늘어놓은 레이저 바(laser bar)이고, 필요한 출력과 밝기, 결합 방식에 따라 고릅니다.
어떤 다이오드를 쓰느냐는 펌프 빛을 어디에 넣느냐와 맞물립니다. 코어를 바로 펌핑하려면 단일 모드 다이오드가 있어야 하는데, 이 다이오드는 평균 출력이 비교적 낮습니다. 더 높은 출력에는 넓은 면적 칩(broad-area chip)이나 레이저 바 같은 다중 모드 펌프 다이오드가 가장 실용적입니다.
다중 모드 다이오드의 빛은 고차 모드 때문에 빔이 크고 더 많이 퍼집니다. 작은 코어에는 넣기 어려운 빛입니다. 이 문제를 넘는 것이 이중 클래드 광섬유입니다. 펌프 빛을 개구수가 높은 커다란 안쪽 클래드에 효율적으로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펌프 다이오드도 열을 냅니다. 앞의 리뷰 장의 펌프 레이저 절을 보면, 고출력 펌프 모듈이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전기-광 변환 효율(wall-plug efficiency)은 50~80% 안팎입니다. 빛이 되지 못한 전력은 열이 되어, 액체로 식히는 금속판(콜드 플레이트)이나 열전 냉각기로 열을 빼내야 하는 일이 잦습니다.
펌프 파장도 고릅니다. 다이오드는 데워지면 내는 빛의 파장이 조금씩 옮겨 갑니다. 넓고 평평한 흡수대 안에서 펌핑하면 이렇게 펌프 파장이 흘러가는 것(wavelength drift)에 덜 민감해집니다.
앞의 리뷰 장은 그 예로, 이터븀 첨가 광섬유(ytterbium-doped fiber, YDF)를 쓰는 레이저와 증폭기에서는 976 nm 대신 915 nm나 940 nm 근처로 펌핑하는 일이 흔하다고 적습니다. 976 nm는 흡수가 가장 크지만 스펙트럼으로 보면 폭이 좁습니다.
펌프 파장을 신호 파장에 더 가깝게 맞추려는 시스템도 있습니다. 다이오드로 펌핑하는 고체 레이저에서도 펌프 빛의 에너지가 레이저 빛의 에너지에 가까울수록 열 효과가 더 줄어듭니다. 광섬유 증폭기에서 펌프 파장을 신호 쪽으로 옮기는 것도 양자 결손(quantum defect)으로 생기는 열을 줄이려는 것입니다. 원하는 파장의 고출력 다이오드가 없으면 다이오드 대신 광섬유 레이저를 펌프로 쓰기도 하는데, 이것을 탠덤 펌핑(tandem pumping)이라고 합니다.
코어를 키운 광섬유: 대구경 모드 면적(LMA)
광섬유 증폭기는 레이저 결정 같은 덩어리 이득 매질과 견주어 장점이 많습니다. 빛을 안내하므로 빔 품질이 뛰어나고, 이득 길이가 길어 펌프 효율이 높고, 부피에 견준 겉넓이가 커서 열을 잘 뺍니다. 그러나 작은 코어에 큰 출력을 모으면 세기가 아주 높아집니다. 그러면 광섬유 레이저의 출력 키우기를 가로막는 비선형 광학 효과가 쉽게 일어납니다.
코어를 키우면 어떻게 될까요? 코어 넓이가 커지면 빛이 차지하는 유효 모드 넓이도 커져서, 같은 출력에서 세기가 낮아집니다. 단일 주파수 증폭기를 다룬 앞의 리뷰 장은 이것을 유도 브릴루앙 산란(stimulated Brillouin scattering, SBS)을 억누르는 길의 하나로 다룹니다.
대가도 따릅니다. 큰 코어는 보통 고차 모드도 지니고, 그 모드들이 간섭하면 출력 빔이 얼룩덜룩해집니다. 그래서 단일 모드 동작을 지키면서 코어를 키우는 여러 광섬유 설계가 나왔습니다. 이름 그대로 모드가 차지하는 넓이를 넓힌 광섬유를 대구경 모드 면적 광섬유(large-mode-area fiber, LMA)라고 부릅니다.
흔한 방법 하나는 코어 넓이가 커진 만큼 코어의 개구수를 낮춰 맞받는 것입니다. 대신 기본 모드가 약하게만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광섬유는 휘면 손실이 커지기 쉽습니다.
다른 길은 광자 결정 광섬유를 비롯한 모드 거르기(mode-filtering) 설계입니다. 클래드 구조를 코어의 고차 모드가 클래드 모드와 공명하도록 꾸며서, 고차 모드가 먼저 빠져나가게 합니다. LMA 광자 결정 광섬유는 높은 평균 출력의 펄스를 압축하는 데 쓰는 새 광섬유의 예로 초고속 레이저 교과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제조사의 제품 설명에도 이 맞바꿈이 보입니다. Coherent(옛 Nufern)는 자기 LMA 이터븀 이중 클래드 광섬유의 특징으로 "몇 개 모드(few-moded)" 코어 설계를 들며, 광섬유와 부품을 지나는 동안 단일 모드 빔을 지키기 쉽다고 설명합니다. 코어를 키우면 세기는 낮아지지만, 그 대신 모드를 다스리는 일이 숙제로 남습니다.
여전히 남는 한계
이중 클래드와 큰 코어가 모든 문제를 푼 것은 아닙니다. 2010년 리뷰 초록은 동작 영역마다 광섬유 레이저의 성능을 묶어 두는 핵심 요인으로 특히 열 관리(thermal management), 광학 비선형성, 손상을 꼽습니다.
열은 코어 밖에서도 생깁니다. 펌프 모듈에서 빛이 되지 못한 전력이 열이 된다는 것은 앞에서 봤습니다. 광섬유로만 이은 결합기에는 센 펌프 빛이 지나는 접속점이 여럿 있을 수 있고, 그 경계에서 펌프 빛이 흩어질 수 있습니다. 흩어진 빛이 흡수되면 열이 크게 나므로, 손상을 막으려면 열을 잘 빼야 합니다.
단일 주파수 광섬유 증폭기에서 문턱이 가장 낮은 비선형 효과는 유도 브릴루앙 산란과 횡모드 불안정성(transverse mode instability, TMI)입니다. SBS는 광학적 힘이 만든 음파에 빛이 뒤로 흩어지는 비선형 산란입니다. TMI는 열광학 효과 때문에 기본 모드와 고차 횡모드가 동적으로 결합하는 현상입니다.
TMI에도 고차 모드가 등장합니다. 코어를 키우면 세기는 낮아지지만 큰 코어는 보통 고차 모드도 지닌다는 점과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두 현상이 무엇이고 왜 출력을 묶는지는 다음 두 글의 주제입니다.
다음에 읽을 글
- "한 가닥의 한계 ①: 비선형 효과(SBS, SRS)": 출력을 올리면 생기는 산란 현상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 "한 가닥의 한계 ②: 열과 모드 불안정성": 열이 빔 품질을 흔드는 현상을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