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빛을 기계 셔터보다 훨씬 빠르게 켜고 끄려면 무엇을 써야 할까요. 날개나 거울을 움직이는 방식은 아무리 다듬어도 무게가 있는 물체를 밀고 당겨야 합니다. 많은 레이저 장비는 이 일을 소리에 맡깁니다.

음향광학 변조기(acousto-optic modulator, AOM)는 투명한 결정 속에 초음파를 흘려 보내는 부품입니다. 음파가 지나는 자리마다 굴절률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 무늬가 빛을 꺾습니다. 음파를 켜고 끄면 빛이 꺾였다 말았다 하고, 음파의 주파수(frequency)를 바꾸면 꺾이는 각도와 빛의 주파수가 함께 바뀝니다.

이 성질 하나로 AOM은 스위치도 되고, 레이저 안의 펄스 장치도 되고, 빔의 방향과 주파수를 고르는 장치도 됩니다. 1932년의 실험에서 출발해 결정 속의 원리, 여러 쓰임, 피할 수 없는 맞바꿈까지 차례로 짚어 봅니다.

1932년, 초음파가 빛을 부채처럼 펼치다

1932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두 연구진이 같은 현상을 따로 발견했습니다. 초음파가 퍼져 있는 곳을 지난 빛줄기가 여러 갈래의 회절(diffraction) 스펙트럼으로 부채처럼 갈라진 것입니다. 미국 쪽은 디바이(Debye)와 시어스(Sears), 프랑스 쪽은 뤼카(Lucas)와 비카르(Biquard)였습니다.

디바이와 시어스는 둘 다 MIT 물리학과 소속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논문 「초음파에 의한 빛의 산란(On the Scattering of Light by Supersonic Waves)」은 1932년 6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실렸습니다.

이론도 곧 뒤따랐습니다. 인도 과학원(방갈로르) 물리학과의 라만(Raman)과 나겐드라 나트(Nagendra Nath)는 1936년 Nature에 보낸 편지에서, 다른 연구자의 실험이 자신들의 이론과 잘 맞았다고 밝혔습니다. 빛이 소리에 꺾인다는 이 발견이 오늘날 AOM의 뿌리입니다.

결정 속을 달리는 굴절률의 격자

AOM은 투명한 결정의 한쪽 면에 변환기(transducer)를 붙인 모양입니다. 변환기에 RF(무선 주파수) 신호를 넣으면 결정 안에 음파가 생깁니다. 이 음파는 결정을 눌렀다 늘였다 하며 결정 속 소리의 속도로 나아갑니다.

물질이 눌리고 늘어나면 굴절률도 조금 바뀝니다. 이것이 음향광학 효과(acousto-optic effect)이고, 광탄성 효과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결정 안에는 굴절률이 높은 줄과 낮은 줄이 번갈아 늘어선 무늬가 생기고, 이 무늬가 들어오는 빛에 회절격자(diffraction grating)처럼 작동합니다.

보통의 회절격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줄무늬가 변환기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결정 전체가 두꺼운 회절격자처럼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음향광학 변조기의 구조를 그린 개념도. 투명한 결정 아래에 변환기가 붙어 있고, 아래에서 주파수 F의 RF 신호가 들어간다. 결정 안에는 음파가 가로줄 무늬로 그려져 있고 위로 올라간다는 화살표가 있으며, 이 무늬가 움직이는 굴절률 격자라고 적혀 있다. 왼쪽에서 주파수 f의 레이저 빔이 작은 각, 곧 브래그 각으로 들어와 일부는 0차 빔으로 곧게 지나고 일부는 1차 빔으로 꺾여 주파수가 f + F가 된다. 아래에 각을 과장해 그렸고 실제 브래그 각은 1° 안팎이거나 그보다 작다고 적혀 있다. 설계값은 없다
음향광학 변조기의 속. 변환기가 만든 음파가 결정 안에 움직이는 굴절률 격자를 만들고, 브래그 각으로 들어온 빛 일부가 주파수가 바뀐 1차 빔으로 꺾입니다. 각은 과장했습니다 (도표)(도표)

빛이 줄무늬에 알맞은 각으로 들어오면 빛 대부분이 한 방향으로 꺾입니다. 이 각을 브래그 각(Bragg angle)이라고 부릅니다. 꺾이지 않고 곧게 지나간 빛은 0차 빔, 꺾인 빛은 1차 빔입니다.

NIST 시간·주파수 부서의 2005년 논문에 따르면 브래그 각은 보통 1° 안팎이거나 그보다 작고, 신중하게 설계하면 빛의 80% 넘게를 한 차수로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1차로 가는 빛이 가장 많아지는 때는 빛을 브래그 각에 맞추고 RF 출력을 포화 지점까지 올렸을 때입니다.

꺾인 빛은 색도 조금 바뀐다

움직이는 줄무늬에서 꺾인 빛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생깁니다. 다가오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높게 들리듯, 움직이는 음파 면에서 꺾인 빛은 도플러 이동(Doppler shift)으로 주파수가 바뀝니다. 실제로는 소리를 내는 물체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빛이 움직이는 굴절률 무늬에 부딪혀 꺾이면서 바뀐다는 점이 다릅니다.

바뀌는 양은 RF 구동 주파수와 같습니다. 빛이 음파를 어느 쪽에서 맞느냐에 따라 +1차로 꺾이면 주파수가 그만큼 오르고, −1차로 꺾이면 그만큼 내립니다.

두 칸으로 된 그림. 왼쪽 칸은 빛이 음파를 한쪽에서 만나 +1차로 꺾이고 주파수가 f에서 f + F로 오르는 모습이고, 오른쪽 칸은 반대쪽에서 만나 −1차로 꺾이고 주파수가 f − F로 내리는 모습이다. 두 칸 모두 0차 빔은 주파수 f 그대로 곧게 지난다. 아래 상자에는 빨간 빛의 주파수가 약 500 THz, RF 구동 주파수가 약 100 MHz이고, 그래서 이동은 빛 주파수의 약 500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1차 빔은 주파수가 RF 주파수만큼 오르고, −1차 빔은 그만큼 내립니다. 빛 주파수에 견주면 아주 작은 이동입니다 (도표)(도표)

이 이동은 아주 작습니다. 음향광학 부품 업체 Isomet의 응용 노트는 빨간 빛의 주파수를 500 THz 정도, AO 주파수를 100 MHz 정도로 견줍니다. 빛 주파수의 500만분의 1쯤입니다. 그래도 RF 주파수를 바꾸면 소자의 대역 안에서 이동량을 골라 쓸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이동이 크게 쓰이는 곳이 원자를 레이저로 식히는 실험입니다. 레이저 냉각 실험의 주파수 조절에는 AOM이 널리 쓰이고, 레이저 주파수를 흔히 1 ms보다 짧은 시간에 바꿔야 합니다. 미국의 1차 주파수 표준인 원자 분수 시계 NIST-F1도 주파수를 훑고 건너뛰는 일을 AOM으로 하고, 빛의 세기는 AOM에 넣는 RF 출력을 조절해 바꿉니다.

기계 셔터보다 빠른 스위치

음파를 켜면 빛이 1차 빔으로 꺾이고, 끄면 0차 빔으로 곧게 갑니다. 1차 빔만 받아 쓰면 AOM은 빛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됩니다. 음파의 세기를 조절하면 꺾이는 빛의 양, 곧 빛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세 칸으로 된 쓰임 그림. 첫째 칸은 빠른 스위치로, 음파를 켜면 빛이 1차 빔으로 꺾여 나가고 곧게 간 빛은 막이에 막히며, 음파를 끄면 빛이 곧게 가서 막이에 막혀 나가는 빛이 없다. 기계 셔터보다 빠르다고 적혀 있다. 둘째 칸은 레이저 안의 Q-스위치로, 뒤 거울, 이득 매질, AOM, 출력 거울이 한 줄로 있고, 음파를 켜면 빛이 공진기 밖으로 꺾여 손실이 크며, 끄면 손실이 떨어져 짧고 센 펄스가 나간다고 적혀 있다. 셋째 칸은 빔 편향기로, RF 주파수를 F1, F2, F3로 바꾸면 1차 빔이 세 방향을 가리킨다. 빠르게 훑지만 각이 작다고 적혀 있다. 값은 없다
같은 효과로 하는 세 가지 일. 빛을 켜고 끄는 스위치, 레이저 안의 Q-스위치, RF 주파수로 방향을 바꾸는 편향기입니다. 값이 없는 개념도입니다 (도표)(도표)

광학 부품 업체 Gooch & Housego(G&H)는 변조기가 기계 셔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빛의 세기를 조절한다고 소개합니다. 속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변조기가 신호에 반응하는 빠르기인 상승 시간은 음파가 빛줄기를 가로지르는 시간에 비례하고, 그래서 변조기 안의 빔 지름에 좌우됩니다.

소리는 결정 안에서도 빛보다 훨씬 느립니다. 빔이 굵을수록 음파가 빔 전체를 지나가는 데 시간이 더 걸립니다. G&H가 소개하는 아주 빠른 변조기는 변조 주파수 200 MHz까지, 상승 시간 4 ns까지 내지만, 그러려면 빔을 아주 좁게 모아 넣어야 합니다. 더 느린 변조기는 이런 제약이 없어 굵은 빔을 받을 수 있습니다.

레이저 안에서: Q-스위치와 모드 잠금

AOM은 레이저의 공진기(optical resonator) 안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Q-스위칭(Q-switching)은 공진기의 손실을 높여 두었다가 갑자기 낮춰 짧고 센 펄스를 뽑는 방법입니다. AOM에 음파를 켜 두면 빛 일부가 공진기 밖으로 꺾여 나가 손실이 크고, 음파를 끄면 손실이 떨어집니다.

스위치가 얼마나 빨리 열리느냐가 결국 펄스 폭을 제한합니다. Keller의 교과서는 충분히 빠른 스위치로 전형적인 스위칭 속도가 10 ns쯤인 전기광학 스위치와 50 ns쯤인 음향광학 스위치를 꼽습니다. 이 책의 예에서는 음향광학 스위치를 단 다이오드 펌핑 Nd:YLF 레이저가 반복률 1 kHz로 700 ps까지 짧은 펄스를 냈습니다.

여기서도 빔 지름이 걸립니다. 스위칭을 빠르게 하려면 변조기 안의 레이저 빔 지름이 작아야 합니다. G&H는 음향광학 Q-스위치의 쓰임으로 새기기·자르기·뚫기 같은 재료 가공, 의료 수술, 리소그래피, 쾌속 조형을 듭니다.

모드 잠금(mode locking)에서는 AOM이 손실을 사인꼴로 오르내리게 합니다. 이때 쓰는 AOM은 대개 결정 끝에서 음파를 되반사시켜 정상파를 만듭니다. 유리와 공기의 경계가 음파에는 100% 반사경과 같기 때문입니다.

서로 반대로 나아가는 두 음파가 겹치면 손실은 음향 주파수의 두 배로 오르내립니다. 이 오르내림을 공진기 안을 도는 펄스의 왕복 주파수에 맞춰야 모드 잠금이 됩니다. 펄스가 어떻게 모이는지는 「Q-스위칭과 모드 잠금」 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주파수로 빔의 방향을 바꾸다

꺾이는 각은 RF 주파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RF 주파수를 바꾸면 1차 빔이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쓰는 소자를 음향광학 편향기(acousto-optic deflector, AOD)라고 부릅니다.

G&H는 자사 편향기가 몇 도 안에서 수백~수천 개의 점을 가려 내고, 한 번 훑는 데 몇 마이크로초까지 짧게 걸린다고 소개합니다. 가려 낼 수 있는 점의 수는 음파가 빔을 가로지르는 시간과 RF 주파수 대역이 정합니다. 회사가 밝힌 전형적인 훑기 각은 파장과 RF 대역에 따라 약 5 mrad에서 60 mrad 넘게까지입니다.

거울을 기울여 빔을 돌리는 고속 조향 거울과 견주면 차이가 보입니다. AOD는 결정이 제자리에 있고 RF 주파수만 바꿔 방향을 바꿉니다. 대신 돌릴 수 있는 각이 몇 도 안쪽으로 작습니다.

각이 바뀌는 성질이 늘 반가운 것은 아닙니다. 주파수만 옮기고 싶은데 빔 방향까지 따라 움직이면 정렬이 흐트러집니다. 앞의 NIST 논문은 이것을 AOM으로 레이저 주파수를 훑을 때 생기는 실제 문제로 들고, 빔이 AOM을 두 번 지나는 이중 통과(double-pass) 구성으로 방향 변화를 상쇄했습니다.

두 번째로 지날 때 편광(polarization)이 90° 돌아간 빔은 들어온 길을 거슬러 돌아오고, 편광 빔 분리기가 이 빔을 들어온 빔과 갈라냅니다. 반대로 공간적으로 나뉜 여러 빔이 필요한 곳에서는 각이 바뀌는 성질이 쓸모가 됩니다.

빨라지려면 좁아져야 한다

G&H는 모든 음향광학 소자가 속도, 구경 크기, 출력 감당 능력, 내구성 사이의 맞바꿈을 안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빠른 소자는 빔을 좁게 모아야 하고, 굵은 빔을 받는 소자는 그만큼 느립니다.

빔을 좁게 모으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빔을 세게 모으면 빛이 여러 각도로 들어오는 셈이 되어, 그중 일부만 브래그 조건에 맞습니다. AOM의 회절 효율이 빔 허리 지름에 크게 좌우되는 까닭입니다.

음파의 주파수를 마냥 올릴 수도 없습니다. 결정 속 음파의 손실은 음향 주파수의 제곱으로 커지고, 그래서 높은 주파수의 음향광학 변조기는 만들기가 더 어렵습니다. 빠르고, 크고, 센 빛을 견디는 AOM을 한꺼번에 얻기는 어렵고, 쓰임에 맞춰 어느 쪽을 앞세울지 고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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