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을 떠올리면 대개 비슷한 그림이 먼저 그려집니다. 둥근 등에 뾰족한 못이 빽빽하고, 뱃머리의 용머리가 연기를 뿜고, 온몸이 철판으로 덮인 배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임진왜란 때의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거북선의 실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 손에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짧은 기사 몇 개, 전쟁 뒤 200여 년이 지나 나온 책의 그림과 설명, 그리고 그 기록을 서로 다르게 읽는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이 셋을 섞지 않고 하나씩 읽으면 확인되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드러납니다.

1413년, 임진 나루의 거북선

거북선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보다 훨씬 앞선 기록에도 나옵니다. 『태종실록』의 1413년(태종 13) 2월 5일 기사에는 임금이 임진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문 원문은 "觀龜船"으로 시작하고, 거북선의 정식 이름인 귀선(龜船)이 이때 이미 쓰였습니다.

2년 뒤인 1415년에는 좌대언 탁신(卓愼)이 나라의 방비에 관한 여러 조목을 올렸습니다. 그 여섯째 조목에서 그는 거북선의 법이 많은 적과 부딪쳐도 적이 해치지 못하는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 하고,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어 두자고 건의했습니다.

덮개를 씌운 배는 왜 필요했을까요? 고려 때부터 우리 쪽 배는 적선에 부딪쳐 깨뜨리거나 화포로 태우는 방법을 주로 썼습니다. 해적들은 반대로 배에 다가와 뛰어올라 싸우는 육박전을 즐겨 썼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거북선 항목은 적이 배 위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에서 거북선이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1413년의 거북선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항목 집필자는 태종 때 거북선이 실전에 쓰이지 못하다가, 세종대 이후 왜구가 크게 줄어든 사정 등을 고려한 판단으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봅니다. 두 시대의 거북선이 구조가 같은 배였는지는 거북선을 누가 처음 만들었느냐는 물음의 열쇠로 남아 있습니다.

가로 연표 도표. 1413년 『태종실록』: 임금이 임진 나루에서 거북선과 왜선이 싸우는 것을 구경함, 1415년 탁신이 거북선을 더 튼튼하게 만들자고 건의함, 1555년 거북선의 바탕이 된 2층 군함 판옥선이 시험됨, 1592년: 1657년에 고쳐 펴낸 『선조수정실록』의 1592년 5월 1일 기사가 임진왜란 거북선의 모습을 가장 자세히 전함,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거북선 그림 두 장과 설명이 실림(전쟁 뒤 200여 년), 1910년 경남 고성에서 용머리가 연기를 토하는 거북선이 그려진 청화백자가 발굴됨. 간격은 실제 연도 비율이 아니다
기록으로 따라간 거북선. 이 글의 출처에 나온 일만 옮겼고, 실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도표)(도표)

바탕이 된 배, 판옥선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은 판옥선(板屋船)이었습니다. 1555년(명종 10)에 새 군함으로 시험된 배로, 갑판이 두 개인 2층 구조입니다. 노를 젓는 격군(格軍)은 두 갑판 사이에서 적에게 드러나지 않은 채 노를 젓고, 싸우는 군사는 위 갑판의 넓고 높은 자리에서 싸웠습니다. 위 갑판 둘레에는 여장(女墻)이라 부르는 난간을 세웠습니다.

거북선은 이 판옥선의 윗부분을 고쳐 덮개를 씌운 배입니다. 판옥선에서는 위 갑판에 드러나 있던 군사들이 거북선에서는 덮개 아래로 들어간 셈입니다.

수로 보면 거북선은 소수였습니다. 당시 수군의 전투함은 몇 척의 거북선을 빼면 판옥선뿐이었습니다. 이순신이 처음 출동한 옥포해전에 동원된 판옥선은 28척(그중 4척은 경상우도의 배)이었고, 가장 많을 때도 180여 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거북선 항목의 집필자는 거북선을 뛰어나고 독창적인 배로 보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발명품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고려 때부터 이어진 배무이(배 짓기) 전통이 조선으로 넘어와 판옥선과 거북선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실록의 1592년 기사가 그린 거북선

임진왜란 때 거북선의 모습을 가장 자세히 전하는 글은 『선조수정실록』의 1592년(선조 25) 5월 1일 기사입니다. 다만 1592년은 기사의 날짜이고, 이 실록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65년 뒤인 1657년(효종 8)입니다. 집권 세력이 바뀐 뒤, 먼저 나온 『선조실록』(1616년)을 고쳐 다시 펴낸 실록입니다.

기사는 이순신이 거제 앞에서 일본군을 깨뜨린 일을 적었고, 끝에 "이에 앞서" 이순신이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스스로 생각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대목이 붙어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임진왜란을 다룬 기록 가운데 거북선의 모습과 규모를 이보다 자세히 적은 것이 없다고 봅니다.

기사가 그린 배는 이렇습니다.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군사가 겨우 지나다닐 십자 모양의 좁은 길만 남긴 채 나머지에 칼과 송곳을 줄지어 꽂았습니다. 싸울 때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칼끝이 드러나지 않게 했습니다. 적이 뛰어오르면 칼과 송곳에 찔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었고, 뒤에는 거북 꼬리를 만들어 그 밑에 총 구멍을 냈습니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여섯 개씩 있었고, 군사는 모두 그 아래에 숨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배는 사면으로 포를 쏘고, 앞뒤 좌우로 나는 듯이 빨리 움직였습니다.

용머리의 입은 번역부터 갈립니다. 원문은 "口爲銃穴", 곧 입을 '총혈(銃穴)'로 삼았다는 글인데, 실록 누리집의 국역은 "대포 구멍"으로, 백과사전의 인용은 "총구멍"으로 옮겼습니다. 용머리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지금도 학계의 물음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사는 거북선이 적선 사이를 누비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고, 가는 곳마다 적선을 깨뜨려 늘 이겼다고 끝맺습니다. 크기는 이 기사에 나오지 않습니다. 백과사전은 어느 기록인지 밝히지 않은 채 "크기가 판옥선만하다"는 말이 있다고 적지만, 판옥선의 정확한 규모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격군과 사수를 합쳐 125명이 탔다는 기록이 있다는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와중에 이덕홍(李德弘)은 '귀갑선(龜甲船)'을 만들자고 건의했습니다. 그는 일본군의 장기가 조총의 '철환(鐵丸)'에 있다고 보았고, 백과사전은 그가 그린 배가 이순신의 거북선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평가합니다.

이분(李芬)이 쓴 『이순신행록(李舜臣行錄)』에도 앞에 용머리를 만들고 입에 총구멍을 내고 뒤에 거북 꼬리를 만들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모양이 거북과 같아서 이름을 거북선이라 했다는 설명도 붙어 있습니다. 이 대목은 실록 누리집에 실린 1415년 기사의 번역 주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200년 뒤의 그림: 『이충무공전서』

지금 남은 기록 가운데 거북선의 규모와 특징을 가장 자세히 적은 책은 1795년(정조 19) 정조의 명으로 펴낸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입니다. 규장각 문신 윤행임(尹行恁)이 편찬을 맡았고, 책 앞머리의 '도설(圖說)'에 거북선 그림 두 장과 설명문이 실렸습니다.

두 그림은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입니다. 책은 통제영 거북선이 임진왜란 때 거북선에서 유래했지만 치수에 더하고 뺀 것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배를 그대로 옮긴 그림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설명은 꽤 자세합니다. 통제영 거북선의 밑바닥 판 길이를 64척 8촌으로 적고, 노는 좌우에 10개씩이라고 적는 식입니다. 뱃머리의 거북머리 속에서 유황과 염초를 태워, 벌린 입으로 안개처럼 연기를 토해 적을 어지럽게 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두 거북선은 모양도 다릅니다. 통제영 거북선은 판옥선 갑판 둘레의 여장을 없애고 갑판 위에 바로 거북 뚜껑을 덮은 모양입니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여장을 그대로 둔 채 뚜껑을 씌운 듯한 모습이고, 노가 좌우 8개씩이며, 거북머리 아래에 귀신 머리를, 덮개 위에 거북무늬를 새겼습니다.

지금까지 전하는 거북선 그림은 10여 종이고, 『이충무공전서』의 두 그림이 그 대표입니다. 그 밖에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풀어낸 『회본태합기(繪本太閤記)』에도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어 일본군을 물리치다"라는 설명이 붙은 그림이 있습니다. 1910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발굴된 청화백자(지금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에는 용머리에서 연기를 토하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순신 후손의 종가에 전하는 두 그림은 등 위에 돛대 두 개와 지휘소인 장대를 그려 다른 그림들과 다릅니다.

아직 다투는 것들

거북선의 구조와 기능을 두고는 지금도 논란이 많습니다. 가장 큰 까닭은 실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가장 자세한 『이충무공전서』의 두 그림은 서로 제도가 꽤 다르고, 둘 다 임진왜란 뒤 200여 년이 지나 나온 것입니다.

세 칸 도표. 첫 칸 '1592년 날짜의 실록 기사(1657년 편찬)':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듦, 십자 모양 좁은 길과 나머지에 칼·송곳, 앞에 용머리와 뒤에 거북 꼬리, 꼬리 밑과 좌우 여섯 개씩의 총 구멍. 그 아래 따로 '백과사전이 어느 기록인지 밝히지 않은 것': '크기가 판옥선만하다', 격군과 사수 125명. 둘째 칸 '1795년 책': 서로 다른 두 그림(통제영·전라좌수영), 통제영 거북선은 전쟁 때 배에서 왔으나 치수에 가감이 있음, 거북머리에서 연기를 내 적을 어지럽힘, 노는 한쪽은 좌우 10개씩·다른 쪽은 8개씩. 셋째 칸 '아직 다투는 것': 덮개에 철갑을 씌웠나, 안은 2층인가 3층인가, 용머리는 실제로 무엇을 했나, 1413년 거북선과 같은 종류의 배인가, 왜 몇 척만 만들었나
1657년에 펴낸 실록의 1592년 기사, 1795년의 책, 아직 다투는 것. 거북선을 세 겹으로 나눠 읽기 (도표)(도표)

첫째는 철갑선이었느냐는 물음입니다. 유길준(兪吉濬)은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 이순신의 거북선을 "철갑병선(鐵甲兵船)으로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 했고, 그 뒤로도 많은 사람이 거북선을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 불렀습니다. 백과사전 항목은 이 주장의 유래가 확실하지 않고,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와 일본 쪽 문헌에 기대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 쪽 자료는 패전을 거북선 탓으로 돌리려는 숨은 뜻이 있다는 이유로 일찍부터 신빙성을 의심받았습니다.

등에 칼과 송곳을 꽂았다는 것은 실록 기사에 있습니다. 하지만 표면을 철판으로 덮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철갑을 덮으면 배가 무거워져 민첩성이 떨어지고 바닷물에 부식되는 등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으로 봅니다.

둘째는 안이 2층이었느냐 3층이었느냐는 물음입니다. 2층 구조론은 아래층에 군사의 휴게실과 무기고를, 위층에 화포 같은 공격 시설을 두어 노 젓기와 포 쏘기가 같은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3층 구조론은 1층에 병사들의 침실과 군량·무기고가, 2층에 사수와 격군이, 3층에 포대가 있었다고 봅니다. 노 젓는 자리가 달라지니 이 배가 싸움에서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도 엇갈립니다.

두 학설을 네모 쌓기로 나란히 보인 개념도. 왼쪽 2층 구조론: 위층은 화포와 노 젓기가 같은 공간, 아래층은 군사의 휴게 공간과 무기고. 오른쪽 3층 구조론: 3층 포대, 2층 사수와 격군, 1층 침실·군량·무기고. 노 젓는 자리가 달라 전투 효율의 평가도 갈린다는 설명. 치수와 축척이 없는 개념도
거북선 안은 몇 층이었을까. 학자들이 내놓은 두 견해를 층의 쓰임만 적어 비교했습니다 (도표)(도표)

셋째는 용머리의 쓰임입니다. 실록의 1592년 기사에서 용머리의 입은 총혈이었고, 1795년의 책에서 거북머리는 연기를 내뿜는 곳이었습니다. 백과사전은 용머리에서 포를 쏘거나 유황 연기를 내뿜었다고 두 가지를 함께 적으면서, 뱃머리 거북머리의 기능이 무엇이었는지를 풀어야 할 물음으로 꼽습니다.

넷째는 몇 척이었느냐는 물음입니다. 거북선의 크기와 척수는 시대에 따라 바뀐 것으로 보이며, 분명한 것은 척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항목 집필자는 덮개 아래에서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달아나는 적을 쫓기에 불편했고, 그런 때는 위가 트인 판옥선이 더 실용적이어서 수가 제한됐다고 봅니다.

이 절의 해석은 대부분 한 백과사전 항목의 집필자가 정리한 것이고,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함께 소개됐습니다. 항목 끝에도 그 내용이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다는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실록 기사가 전하는 것은 판목 덮개, 칼과 송곳, 용머리와 거북 꼬리, 사방의 총 구멍, 그리고 이 배가 적선 사이를 누볐다는 데까지입니다. 수가 많지 않았다는 점은 기사가 아니라 백과사전 항목들의 판단입니다.

다음에 읽을 글

  • 군사기술의 전환점: 근접신관에서 스텔스와 무인체계까지: 새 기술 하나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떠안게 했는지를 20세기 무기로 이어 봅니다.
  • 임진왜란 한눈에: 1592년부터 7년의 전쟁: 거북선이 나온 전쟁 전체의 흐름을 연표로 봅니다.
  • 이순신과 한산도 대첩: 학익진 기록 읽기, 명량 해전: 13척 기록과 울돌목: 판옥선과 거북선이 싸운 해전을 기록으로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