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8,000톤급 호위함" 같은 말을 보면 대개 배의 무게라고 여깁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 숫자는 저울에 배를 올려 잰 값이 아니라, 배가 밀어낸 물의 무게입니다.
그리고 같은 배라도 어떤 상태를 기준으로 쟀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집니다. 톤이라는 단위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이 글은 군함 크기를 말할 때 쓰는 배수량(displacement)이 무엇이고, 그 숫자를 읽을 때 무엇을 함께 봐야 하는지를 교과서와 공개된 정부·국제기구 자료로 풉니다.
배는 밀어낸 물만큼 떠받쳐진다
물속에 들어간 물체는 위로 밀어 올리는 힘을 받습니다. 이 힘을 부력(buoyant force)이라고 합니다. 부력의 크기는 그 물체가 밀어낸 물의 무게와 같고, 이것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입니다. 부력이 물체의 무게보다 작으면 물체는 가라앉습니다.
그렇다면 쇳덩어리로 만든 배는 어떻게 뜰까요? 교과서는 찰흙으로 설명합니다. 찰흙 덩어리는 물에 떨어뜨리면 가라앉지만, 같은 찰흙으로 배 모양을 빚으면 뜹니다. 질량은 같아도 모양 때문에 물을 더 많이 밀어내 더 큰 부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강철 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뜨는지 가라앉는지는 결국 물체의 평균 밀도가 정합니다.
떠 있는 배에서는 배의 질량과 배가 밀어낸 물의 질량이 같습니다. 그래서 배가 밀어낸 물의 양으로 배의 무게를 말할 수 있고, 이것이 배수량입니다. 짐을 실은 배가 빈 배보다 깊이 잠기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무거워진 만큼 물을 더 밀어내야 뜰 수 있습니다.
찰흙 배는 쉬운 그림이지만 실제 배와는 다릅니다. 실제 군함은 사람, 연료, 탄약, 식량을 싣고 내리면서 밀어내는 물의 양이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그래서 "배수량이 몇 톤"이라고 말하려면 어느 상태에서 잰 값인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같은 배, 여러 배수량
그 상태를 조약 문장으로 정한 예가 1922년 2월 6일 워싱턴에서 서명한 해군 군비 제한 조약입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미국이 서명했습니다. 조약은 군함 크기에 한도를 두면서, 그 크기를 재는 기준도 정했습니다.
조약이 정한 표준 배수량(standard displacement)은 바다에 나갈 준비를 마친 완성된 배의 배수량입니다. 승조원을 다 태우고 기관과 장비를 갖춘 상태로, 모든 무장과 탄약, 장비와 의장품, 식량과 승조원이 마실 민물, 전시에 싣기로 한 온갖 물자와 도구를 넣습니다. 빠지는 것은 두 가지, 연료와 예비 급수(reserve feed water)입니다.
조약은 이 기준으로 한도를 적었습니다. 항공모함이 아니면서 표준 배수량이 10,000톤을 넘거나 8인치(203 mm)를 넘는 포를 단 군함을 주력함(capital ship)으로 정했고, 표준 배수량 35,000톤을 넘는 주력함은 짓거나 얻을 수 없게 했습니다.
오늘 미국 정부 자료가 함정 크기를 말할 때는 주로 만재 배수량(full load displacement)을 씁니다.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는 구축함(destroyer) DDG-51의 만재 배수량을 약 9,700톤으로, 1977~1989년에 취역한 프리깃(frigate) FFG-7의 마지막 형태를 약 3,900~4,100톤으로 적었습니다. 연료를 뺀 1922년의 표준 배수량과는 이름부터 다른 기준이라, 두 숫자를 바로 견주지 않습니다.
톤에도 종류가 있다
"톤"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1922년 조약은 "미터톤"이라고 따로 적은 곳을 빼면 톤을 2,240파운드(1,016 kg)의 톤으로 읽으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미국 자료에 나오는 롱톤(long ton)이 이 크기의 톤입니다. 미터톤은 1,000 kg이니 롱톤이 약 1.6% 무겁습니다.
조약 본문도 두 단위를 나란히 적습니다. 주력함의 한도를 "10,000톤(10,160미터톤)"처럼 괄호 안에 미터톤을 붙이는 식입니다. 배수량을 미터톤으로 나타내는 나라도 2,240파운드 톤으로 바꾼 값을 가진 것으로 보았고, 이미 완성된 배는 자기 나라 방식으로 잰 값을 그대로 두게 했습니다.
이 차이는 지금도 나옵니다. 미 해군 해양체계사령부가 "4,000미터톤 넘게"라고 적은 배를 CRS는 각주에서 "3,936롱톤 넘게"에 해당한다고 옮겼습니다. 미 해군의 항공모함 Gerald R. Ford(CVN 78) 승선 안내서는 배수량을 "만재 100,000롱톤"으로 적었습니다. 이 배는 2017년 7월 22일에 취역했습니다.
숫자 하나에 차이가 1.6%면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자료마다 단위가 다르면 같은 배의 값이 다르게 보일 수 있으니, 톤 앞에 무엇이 붙었는지 함께 읽어야 합니다.
상선의 톤수는 무게가 아니다
상선 이야기를 하면 더 헷갈립니다. 화물선이나 여객선 소개에 나오는 "총톤수(gross tonnage, GT)"는 배수량이 아닙니다. 이름에 톤이 들어가지만 무게가 아니라 부피에서 나온 값입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1969년에 채택한 톤수 측정 협약은 세계가 함께 쓰는 톤수 측정 방식을 처음으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이 협약은 총톤수와 순톤수(net tonnage, NT)를 따로 계산합니다. 총톤수는 배 안의 모든 닫힌 공간의 부피로 정하고, 순톤수는 화물을 싣는 공간의 부피로 정하는 식에서 나옵니다. 총톤수는 승무원 정원 규정, 안전 규칙, 등록 수수료의 바탕이 되고, 항만 요금을 셀 때는 두 값을 다 씁니다.
그러니 "몇만 톤급 화물선"과 "몇만 톤급 항공모함"은 같은 저울에 오른 숫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간의 크기, 다른 하나는 밀어낸 물의 무게를 말합니다.
배가 얼마나 깊이 잠겨도 되는지를 정한 국제 약속도 있습니다. IMO의 만재흘수선 협약은 배를 어느 깊이까지 실을 수 있는지에 한도를 두는 것이 안전에 크게 이바지한다고 보고, 그 한도를 건현(freeboard)이라는 값으로 줍니다. 1930년의 첫 협약은 예비 부력(reserve buoyancy)이라는 원리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정해진 만재흘수선은 배 한가운데 양옆에 갑판선과 함께 표시해야 합니다.
길이와 이름만으로는 크기를 모른다
배의 길이가 비슷하면 크기도 비슷할까요? 2차 대전 중에 지은 미 해군의 Iowa(BB-61)급 전함은 길이 887피트, 만재 배수량 약 57,000톤이었습니다. 아주 두껍고 무거운 장갑판을 많이 넣은 배였습니다.
2025년 12월에 발표된 새 유도미사일 전함 BBG(X) 제안은 길이 840~880피트, 만재 배수량 35,000톤 넘게로 그려졌습니다. 길이는 거의 같은데 배수량은 약 57,000톤과 35,000톤 넘게로 꽤 다릅니다.
반대로 길이 차가 작아도 배수량은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FFG-7은 길이 약 455피트, DDG-51은 약 510피트로 길이는 12%쯤 차이가 납니다. 만재 배수량은 약 3,900~4,100톤과 약 9,700톤으로 두 배가 넘게 차이 납니다.
함종 이름도 크기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CRS는 9,700톤 DDG-51과 8,000톤 FFG-62의 크기 차가 20%가 안 된다고 적었습니다. 구축함과 프리깃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배수량은 꽤 가깝습니다. DDG, FFG 같은 글자가 무슨 뜻인지는 함종 기호(ship type symbol)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선체 모양과 늘어나는 무게
선체(hull)는 배의 몸통입니다. 선체가 하나인 배를 단동선(monohull)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체를 여러 개 나란히 붙인 배도 있습니다.
미 해군의 연안전투함(Littoral Combat Ship, LCS)은 두 가지 설계로 지어졌습니다. 미 회계감사원(GAO)의 2016년 글에 따르면 Freedom형은 강철 선체 하나에 알루미늄 상부 구조물을 얹은 단동 설계입니다. Independence형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짓고, 주 선체 하나 옆에 작은 바깥 선체 둘을 붙인 삼동선(trimaran)입니다. 같은 함종이라도 몸통 모양과 재료는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배수량은 한 번 정해지고 끝나는 숫자도 아닙니다. FFG-62는 계약 때 추정 만재 배수량이 약 7,300 또는 7,400톤이었는데, 설계가 이어지면서 수백 톤이 늘어 8,000톤 가까이 되었습니다.
취역한 뒤에도 무게는 늘 수 있습니다. GAO의 2013년 보고서는 미 해군이 새 배를 설계·건조할 때 "service life allowance", 곧 배의 일생 동안 새롭고 더 무거운 장비를 실을 수 있게 무게가 늘어날 여지를 남기려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여유는 보통 배 전체의 무게와 수직 방향의 무게중심, 곧 안정성 두 가지에 둡니다.
다 지은 배에 새 장비를 다는 일이 처음부터 넣어 짓는 배와 어떻게 다른지는 레이저 글 무게와 탑재의 함정 쪽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다음에 읽을 글
- 구축함과 호위함: 같은 군함인데 이름은 왜 다를까: 이름과 크기가 어긋나게 된 역사를 봅니다.
- 항공모함: 배 한 척이 공항이 되려면: 100,000롱톤 배 안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봅니다.
- 무게와 탑재: 차량, 함정, 항공기에 싣는다는 것: 함정에 레이저 무기를 실을 때 따지는 조건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