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십자군 무렵,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는 피사의 함대를 맞을 배를 준비하면서 뱃머리마다 입을 벌린 사자나 다른 짐승의 머리를 달게 했습니다. 놋쇠나 쇠로 만들고 금을 입힌 머리였습니다. 적에게 쏠 불은 관을 지나 그 짐승의 입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안나 콤니니(Anna Comnena)는 『알렉시아스』(Alexiad)에 이 배들이 마치 사자와 괴물이 불을 토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적었습니다.
이 불은 흔히 "그리스의 불(Greek fire)"이라고 불립니다. 비잔틴 사람들의 말로 더 정확한 이름은 "액체 불(liquid fire)"입니다. 이 무기는 무엇이었고, 왜 지금까지 정체가 다 밝혀지지 않았을까요? 옛 기록과 박물관·학자들의 설명을 나눠 가며 따라가 봅니다.
바다 위에서 타는 불
그리스의 불은 비잔틴 제국이 해전에서 쓴 무기입니다. 영국 왕립 그리니치 박물관(Royal Museums Greenwich)의 설명으로는 물 위에서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탔기 때문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옛 기록은 비잔틴 사람과 군대를 "로마인"이라고 적습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비잔틴 제국 인물 사전(Prosopography of the Byzantine Empire, PBE)은 테오파네스 등의 기록을 근거로 이 불을 "바다의 불(πῦρ θαλάσσιον)"이라 적습니다.
학자들이 "그리스의 불"이라고 할 때는 범위가 좁습니다. 관(tube)에서 밀어낸 나프타 계열의 소이제(불을 일으키는 물질)를 가리키고, 전쟁에서 두루 쓰인 다른 소이 무기와는 구별합니다. 옛 기록에 "불"이 나온다고 모두 그리스의 불은 아닌 셈입니다.
헬리오폴리스에서 온 사람: 칼리니코스
이 불을 만든 사람으로는 칼리니코스(Kallinikos, 라틴식 Callinicus)라는 이름이 전해집니다. 그리니치 박물관은 포고나투스라 불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헬리오폴리스의 건축가 칼리니코스가 이 불을 만들었다고 소개합니다.
연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그리니치 박물관 설명에서 도입 연도는 672년입니다. 인물 사전은 칼리니코스를 시리아 헬리오폴리스 출신 건축가로 적고, 아랍의 콘스탄티노플 해상 원정(673/678년) 때 로마인 쪽으로 도망쳐 와 불붙는 물질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아랍의 배와 사람을 태웠다고 정리합니다.
같은 항목에 실린 시리아 쪽 연대기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바알베크 출신의 목수가 불붙는 혼합물을 만들었다고 하고, 시기는 669/670년 뒤로 둡니다.
인물 사전의 표현도 "아마" 그리스의 불을 만든 사람일 것이라는 정도입니다. 학자들 사이에는 한 사람의 몫이 부풀려졌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불을 무기로 쓰는 전통은 그보다 오래되었고, 칼리니코스는 완전히 새것을 만들었다기보다 있던 기술을 손봤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기록에 남은 싸움들
학자들이 널리 받아들이는 사용 예는 아랍의 콘스탄티노플 포위들과 941년·1043년 루스(Rus)의 공격입니다. 이 예들은 카라톨리오스(Karatolios)의 책 첫 장에 실려 있고, 중세 군사사 학회 웹진의 서평에 소개되었습니다. 싸움마다 남은 기록의 자세한 정도는 다릅니다.
첫머리의 피사 함대 장면은 『알렉시아스』 11권에 나옵니다. 포덤 대학이 공개한 영역본에서 이 권의 제목은 "1차 십자군(1097~1104)"입니다.
안나 콤니니의 기록으로는 프랑크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시리아의 도시들을 치러 갈 때 피사 주교에게 큰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주교는 바닷가에 사는 다른 두 사람도 같은 일에 나서게 했고, 여러 종류의 빠른 배를 갖춰 나섰습니다. 안나 콤니니는 그 배를 900척으로 적었습니다. 옛 기록의 숫자이므로 그대로 사실로 받기보다 기록에 그렇게 적혔다고 읽는 편이 맞습니다.
소식을 들은 황제는 다스리는 모든 지역에서 배를 내게 하고, 수도에서도 배를 짓게 했습니다. 비잔틴 함대는 정식 해전을 피하고 빠르고 불규칙한 공격을 거듭했습니다. 피사 함대는 익숙하지 않은 불과 갑자기 몰아친 돌풍에 놀라 달아났습니다.
바다 말고 땅에서는 어땠을까요? 카라톨리오스의 책은 그리스의 불이 들판의 싸움에는 쓰이지 않았고, 땅 위에서는 성을 둘러싼 싸움과 관련해 나타난다고 봅니다.
이 무기가 언제 사라졌는지도 의견이 갈립니다. 학자들은 대개 관으로 내뿜는 액체 불이 12세기 말에 쓰이지 않게 됐다고 보는데, 그리니치 박물관은 13세기까지 원정에서 쓰였다고 적습니다.
관과 뱃머리: 기록이 말하는 쓰는 모습
『알렉시아스』는 적에게 쏠 불이 "관"을 지나 나왔다고 적습니다. 그리니치 박물관도 혼합물을 사이폰(siphon)에 채워 갤리선의 뱃머리에 달았다고 설명합니다.
황제가 짐승 머리를 단 까닭도 『알렉시아스』에 있습니다. 황제는 피사인이 해전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싸움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생김새만으로도 적을 겁주려 했다는 것입니다.
피사인을 놀라게 한 것은 불이 가는 방향이었습니다. 불은 본래 위로 타오르는데, 이 불은 쏘는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자주 아래나 옆으로 갔습니다. 낯선 장치와 낯선 불이 함께 겁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이 무기가 늘 뜻대로 된 것은 아닙니다. 피사와의 싸움에서 함대 지휘관 란둘프는 피사 배에 다가가 불을 던졌지만, 겨냥이 빗나가 불만 허비했습니다.
천사의 계시와 국가의 비밀
덤버턴 오크스(Dumbarton Oaks)의 비잔틴 연구 프로그램은 이 불을 흔히 비잔틴 제국의 "비밀 무기"로 여긴다고 소개합니다. 그 비밀이 어디서 왔는지를 두고 비잔틴 쪽이 남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콘스탄티노스 포르피로게니토스 황제의 『제국 통치론』(De Administrando Imperio)에는 첫 그리스도교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천사에게서 이 불의 배합 비밀을 받았다는 주장이 실려 있습니다. 카라톨리오스의 책은 이 책을 그리스의 불을 다룬 원사료 목록에 넣었습니다.
이 대목을 사실 그대로의 역사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카라톨리오스는 이 대목이 중요한 까닭을 비잔틴 지배층이 자기 무기를 어떻게 보았는지 이해하는 데서 찾고, 서평자는 이 논의가 설득력 있다고 평합니다. 기원을 천사에게 돌린 이야기는 무기 자체보다 그 무기를 바라본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 주는 자료라는 뜻입니다.
비밀은 완벽했을까요? 무슬림 쪽도 언젠가는 불을 내뿜는 방법을 갖게 되었지만, 언제 배웠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페르시아인은 나프타를 알았어도 비잔틴의 내뿜는 방법까지 가졌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812년에 불가르족이 사이폰 몇 개를 빼앗은 일처럼, 장치가 적의 손에 들어간 기록도 있습니다.
무엇이 아직 모르는 것인가
가장 큰 빈칸은 성분입니다. 정확한 성분은 아직 수수께끼입니다. 나프타나 석유가 주성분이었을 것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내뿜는 방식을 두고도 학설이 갈립니다. 홀던(John Haldon)을 비롯해 프라이어와 제프리스 같은 학자들은 압력으로 밀어내는 펌프(force pump)였다고 봅니다. 코레스(Korres)는 사이폰이 투석기의 일부이고 불을 담은 항아리를 날렸다는 전혀 다른 학설을 냈지만, 앞의 학자들은 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실험도 있었습니다. 홀던은 액체 불을 내뿜는 장치를 직접 만들어 본 실험 결과를 2006년 글로 냈습니다. 덤버턴 오크스의 비잔틴 연구 프로그램은 같은 해 조지타운 대학 중세학과와 함께 이 주제의 공개 강연을 열면서, 서로 다른 학설이 계속 나오지만 최근의 실제 실험이 많은 물음을 풀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 강연 안내가 던진 물음 하나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이 불이 7~8세기 아랍의 정복에서 제국을 정말 구했을까요?
불이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에 남았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남지 않았습니다. 비밀로 지킨 기술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다룬 연구로는 롤런드(Alex Roland)의 1992년 논문 "Secrecy, Technology, and War: Greek Fire and the Defence of Byzantium, 678-1204"가 있습니다.
다음에 읽을 글
- 군사기술의 전환점: 근접신관에서 스텔스와 무인체계까지: 새로운 무기 기술이 전쟁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근현대의 예로 이어 읽습니다.
- 레이저 무기의 역사: 화학 레이저에서 전기 레이저로: 화학 반응에서 힘을 얻던 무기가 오늘날 어떤 길을 걸었는지 봅니다.
- 4차 십자군: 예루살렘 대신 콘스탄티노플로 간 원정: 이 글의 끝 무렵인 12~13세기 비잔틴 제국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