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8월까지 영국 육군이 받은 새 비커스(Vickers) 기관총은 109정뿐이었습니다. 그래서 1차 대전 초기의 영국군은 1880년대에 특허를 받은 맥심(Maxim) 기관총을 함께 들고 싸웠습니다.

그 무렵 기관총은 이미 반세기 넘게 묵은 발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전쟁 전 대부분의 군대는 이 무기의 역할을 의심했고, 그만큼 덜 썼습니다. 몇 해 뒤 기관총은 병사들을 참호 속으로 몰아넣는 무기가 됩니다.

기관총(machine gun)의 역사를 꿰는 물음은 하나입니다. 다음 탄을 넣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이 글은 손잡이를 돌리던 개틀링에서 맥심, 1차 대전의 기관총, 오늘날의 M2와 새 분대 자동화기까지 그 물음을 따라가고, 마지막에 탄이 떨어지는 문제에서 레이저(laser) 무기와 만나는 자리를 봅니다.

손잡이를 돌리던 개틀링

1862년 리처드 J. 개틀링(Richard J. Gatling)은 총열 여섯 개를 묶은 연발 총을 설계해 특허를 받았습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역사박물관에는 이 총의 나무 특허 모형이 남아 있습니다. 남북전쟁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1866년에 미 육군이 채택했고 다른 나라들도 여러 모델과 구경으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이는 방식은 영국 왕립 그리니치 박물관의 열 총열 개틀링에서 잘 보입니다. 총열 열 개가 가운데 축을 둘러싸고 있고, 총 뒤쪽의 손 크랭크를 돌리면 총열들이 축을 따라 돕니다. 각 총열은 정해진 자리에 올 때마다 한 번씩 발사됩니다.

회전초밥 접시가 손님 앞을 지날 때마다 하나씩 집혀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실제로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개틀링의 총열 뭉치는 모터가 아니라 사람의 팔로 돌았습니다. 사격을 이어 가는 힘이 총 바깥, 곧 크랭크를 돌리는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영국 해군도 1871년에 개틀링을 채택했습니다. 이 총은 1879년 줄루 전쟁과 1882~1889년 이집트 원정에서 쓰였습니다.

맥심: 쏘는 힘으로 다음 탄을 넣다

1884년, 런던에 자리 잡은 미국인 발명가 하이럼 S. 맥심(Hiram S. Maxim)이 새 총으로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듬해에는 개량형 특허도 냈습니다. 영국 전쟁박물관(IWM)은 이 총을 손으로 작동하는 '속사포'와 구별해 처음의 진정한 자동 무기로 설명합니다.

달라진 것은 힘의 출처입니다. 탄이 발사되면 총열이 반동으로 뒤로 물러나는데, 맥심은 이 반동 에너지로 총을 움직였습니다. 이런 방식을 반동 이용(recoil operation)이라고 부릅니다.

쏘는 순간에는 총의 뒤쪽이 단단히 잠겨 있습니다. 그다음 뒤로 밀리는 총열의 움직임이 잠금을 풀고, 빈 탄피가 밖으로 나가며, 총에 물린 탄띠에서 다음 탄이 들어옵니다. 한 발을 쏜 힘이 다음 한 발을 준비하는 셈입니다.

세 칸으로 나란히 놓은 개념 그림. 왼쪽 칸은 손 크랭크(1862년 개틀링)로, 사람이 크랭크를 돌리면 총열 뭉치가 돌고 각 총열이 한 자리에서 차례로 발사된다. 가운데 칸은 반동(1884년 맥심)으로, 한 발이 발사되며 총열이 뒤로 물러나고 그 움직임이 잠금을 풀어 빈 탄피가 나가고 탄띠에서 다음 탄이 들어온다. 오른쪽 칸은 가스(1차 대전의 루이스)로, 발사 때 가스 일부를 뽑아 그 힘으로 동작이 움직이고 다음 탄이 들어간다. 아래에 손 크랭크는 사람이, 반동과 가스는 발사 자체가 힘을 낸다는 설명과, 부품·치수·값이 없는 개념 그림이라는 메모가 있다
다음 탄을 넣는 힘은 어디서 오나: 사람의 팔(개틀링), 총열의 반동(맥심), 발사 가스(루이스) (도표)(도표)

맥심 총은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군대가 채택했습니다. 영국의 맥심은 1891년부터 영국군이 새로 채택한 .303인치 소총탄을 쓰도록 바뀌었습니다. 이 총은 보어 전쟁에서 쓰였고, 앞에서 본 대로 비커스가 모자랐던 1차 대전 초기에도 쓰였습니다.

1차 대전: 병사를 참호로 몰아넣은 무기

캐나다 전쟁박물관은 분당 수백 발을 쏘는 기관총이 특히 트인 땅에 있는 병력에게 파괴적인 무기였다고 설명합니다. 전쟁 전의 평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관총은 1914년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지만, 역할과 효과를 의심하는 시각 때문에 대부분의 군대에서 쓰임이 제한되었습니다.

초기의 기관총은 대부분 무겁고 잘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병사가 한 팀이 되어 한 정을 다뤘습니다. 독일군의 MG 08 맥심은 다섯 명이 맡았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기관총은 어쩌면 다른 어떤 무기보다도 병사를 전장에서 몰아내, 비교적 안전한 참호와 대피호, 요새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화력이 우세해서 생긴 교착을 어떻게 넘을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대들을 괴롭힌 숙제였습니다.

캐나다군의 기관총은 그 사이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캐나다군은 보병 대대마다 콜트(Colt) 기관총 4정을 가지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콜트는 빠르게 쏘고 나면 걸리는 일이 있었고, 1916년에 더 무겁지만 더 믿을 만한 비커스로 바뀌었습니다.

무거운 기관총과 가벼운 기관총

물로 식히는 비커스는 믿을 만했지만 무거워서 전투 중에 앞으로 옮기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무거운 기관총은 나중에 보병 대대에서 빠져 기관총 부대로 모였습니다. 영국 육군에서는 기관총 군단(Machine Gun Corps)이 비커스를 맡았습니다.

보병 곁에는 가벼운 기관총이 늘어났습니다. 루이스(Lewis) 경기관총은 병사 한 명이 들고 다닐 수 있었고, 영국 보병은 전쟁이 끝날 무렵 소대마다 이 총을 2정씩 가졌습니다.

루이스 총은 미 육군 장교 아이작 뉴턴 루이스(Isaac Newton Lewis) 대령이 착안했지만, 정작 미 육군은 이 총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움직이는 힘도 맥심과 달랐습니다. 쏘는 순간 총열에서 뽑아낸 가스의 힘으로 동작하는 가스 작동(gas operation) 방식이었고, 총열은 재킷 안에 넣은 알루미늄 핀으로 식혔습니다.

루이스는 땅 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항공기에 달렸고, 잠시는 전차에도 달렸습니다. 전쟁 내내 더 많고 더 나은 기관총이 쓰였고, 기관총은 끝까지 전장을 지배하는 무기로 남았습니다.

80년 넘게 쓰인 총과 새 총

1차 대전이 끝나 갈 무렵 시험을 시작한 기관총 하나는 아주 오래 쓰였습니다. 미 육군의 M2 .50구경 기관총입니다. 육군은 1918년에 이 총을 처음 시험했고, 여러 시험을 거쳐 1923년에 M1921이라는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M2는 브라우닝(Browning)이 앞서 설계한 물냉식 M1917 .30구경 기관총을 크게 키운 총입니다. 항공기와 지상 차량, 군함에 두루 달렸습니다. 2009년 미 육군 기사는 M2가 그때까지 80년 동안 여러 역할에 맞춰 쓰여 왔다고 적었습니다.

병사가 들고 다니는 쪽은 바뀌는 중입니다. 2022년 4월 미 육군은 차세대 분대 화기(Next Generation Squad Weapon) 두 종의 생산 계약을 발표하면서, XM250 자동소총을 M249 분대 자동화기(Squad Automatic Weapon)를 대신할 총으로 정했습니다. 두 총은 같은 6.8 mm 탄을 씁니다.

이 계획은 실제 부대로 이어졌습니다. 2025년 9월 미네소타 주방위군이 캠프 리플리에서 신장비 교육을 받으며 M250을 받았습니다. 미 육군은 M250이 M249를 대신한다고 밝혔습니다.

개틀링이라는 이름은 군함 위에 남았습니다. 팰렁스 근접방어무기체계(CIWS)는 사실상 레이다로 조종하는 개틀링포입니다. 1862년 특허의 이름이 레이다와 짝을 이뤄 오늘날의 함정 방어에 쓰이는 셈입니다.

가로 연표 도표. 1862년 개틀링의 총열 여섯 개 연발 총 특허, 1866년 미 육군의 개틀링 채택, 1871년 영국 해군의 개틀링 채택, 1884년 처음의 진정한 자동 무기인 맥심의 특허, 1914~1918년 1차 대전의 기관총과 참호 교착, 1918년 시험 뒤 1923년 M1921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기 시작한 M2, 2022년 M249를 대신할 XM250의 미 육군 계약, 2025년 주방위군 부대에 닿은 M250 배치가 적혀 있다. 간격은 축척이 아니고 성능 값은 없다
기관총 이야기의 몇 장면. 연도는 공공 박물관과 미 육군 자료에 있는 것만 옮겼습니다 (도표)(도표)

레이저와 맞닿는 점: 탄이 떨어지는 문제

기관총의 역사는 다음 탄을 더 빨리, 더 스스로 넣는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탄을 아무리 빨리 넣어도 총에 실은 탄이 다 떨어지면 거기서 멈춥니다. 오늘날 함정 방어에서도 이 문제가 그대로 나옵니다.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수상함은 대공 미사일과 CIWS 개틀링포로 무인기와 대함 미사일을 일정한 수까지만 막을 수 있고, 그 뒤에는 미사일과 CIWS 탄이 떨어집니다. 이 한계를 탄약고 깊이(depth of magazine)라고 부릅니다.

레이저는 이 물음에 다르게 답하려는 무기입니다. 함정용 고체 레이저는 레이저가 작동하고 배에 전기를 만들 연료가 있는 한 되풀이해 쏠 수 있습니다. 개틀링이 사람의 팔로, 맥심이 반동으로 다음 탄을 넣었다면, 레이저는 탄 대신 배의 전기를 씁니다.

그렇다고 레이저가 기관총을 그대로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정 레이저는 보이는 곳까지만 쏠 수 있고, 대기의 흡수·산란·난류 때문에 어떤 날씨에서나 쓰는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포와 미사일과 레이저가 어떻게 일을 나누는지는 레이저, 요격미사일, 방공포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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