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섬유 레이저 한 대는 얼마나 센 빛을 낼까요? 제조사 Exail의 기술 페이지를 보면 한 대는 킬로와트 단위이고, 많아야 10 kW쯤입니다. 이 회사는 그런 레이저 여러 대의 위상(phase)을 맞춰 묶으면 전체를 수백 킬로와트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 합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결맞음 빔 결합(coherent beam combining, CBC)입니다. 위상을 맞추면 왜 빛이 하나로 모이는지는 앞 글 「결맞음 빔 결합의 원리」에서 간섭(interference)으로 풀었습니다. 이번에는 장치 안으로 들어가, 빛이 시드 레이저(씨앗 레이저, seed laser)에서 출발해 한 빔으로 나갈 때까지 지나는 정거장을 하나씩 따라갑니다.
길잡이는 Exail이 공개한 CBC 기술 페이지이고, 페이지가 소개하는 부품 다섯 개의 차례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지도 한 장으로 보기
먼저 전체 지도를 펼쳐 봅시다. 빛은 시드 레이저 하나에서 나와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갈래마다 위상 변조기와 증폭기(amplifier)를 지나고, 주변 흔들림을 되돌리는 보정과 길이 맞추기를 거친 뒤, 마지막에 다시 한 빔으로 겹칩니다.
이 지도는 부품이 하는 일을 차례로 늘어놓은 것입니다. 실제 장치에서 부품이 놓이는 자리와 꼭 같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Exail은 위상 변조기 배열에 광 지연선까지 선택으로 담은 장치를 시드 장치로 소개합니다. 위상을 고치는 부품이 증폭기 앞쪽에 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조정 경기의 배를 떠올리면 흐름이 잡힙니다. 노꾼이 여럿이어도 노를 젓는 박자가 하나로 맞아야 배가 힘껏 나아가고, 박자가 어긋나면 서로의 힘을 깎아 먹습니다. 실제 장치에서는 누가 박자를 듣고 맞추지 않습니다. 빛의 박자는 위상이라는 물리량이고, 그것을 재고 고치는 일을 장치가 쉬지 않고 합니다.
첫 정거장: 시드 레이저 하나
모든 갈래의 빛은 시드 레이저 하나에서 나옵니다. 이 시드는 선폭(linewidth)이 좁고 위상 잡음이 낮아야 합니다. 선폭은 레이저 빛이 품은 색의 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왜 굳이 하나에서 출발할까요? 한 시드의 빛을 모든 증폭기에 나눠 주는 것이, 증폭을 마친 빛들이 서로 간섭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같은 빛을 나눠 가진 갈래들은 출발할 때부터 같은 박자를 나눠 갖는 셈입니다. 간섭에 필요한 조건은 앞 글에서 자세히 보았습니다.

시드 빛은 갈래로 나뉘어 위상 변조기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 증폭됩니다.
둘째 정거장: 갈래마다 위상 변조기
갈래마다 위상 변조기(phase modulator)가 하나씩 놓입니다. 이 변조기는 빠르게 움직이는 넓은 대역 위상 변조기이고, 맡는 일은 둘입니다. 하나는 빔마다 위상을 따로 고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빛의 스펙트럼을 일부러 넓히는 일입니다.
좁은 선폭에서 출발했는데, 왜 다시 넓힐까요? 걸림돌은 유도 브릴루앙 산란(stimulated Brillouin scattering, SBS)입니다. 광섬유 증폭기 하나가 내보낼 수 있는 최대 출력은 이 비선형 효과에 크게 묶입니다. 위상 변조기로 선폭을 넓히면 이 효과를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SBS가 어떤 현상인지는 「한 가닥의 한계 ①: 비선형 효과(SBS, SRS)」에 자세히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맞바꿈입니다. 선폭은 시드의 위상을 일부러 흔들어 주파수를 조금씩 퍼뜨리는 방식으로 넓힙니다. 단일 주파수 증폭기를 다룬 리뷰 장은 이 방법이 SBS에 잘 듣고, 쓰임에 따라서는 결맞음도 쓸 만큼 남는다고 평가합니다.

넓힌 만큼 치르는 값도 있습니다. 그 값은 다섯째 정거장에서 길이 맞추기라는 일로 돌아옵니다.
셋째 정거장: 증폭기에서 세게 키우기
이제 갈래마다 빛을 크게 키웁니다. 증폭기의 몸통은 희토류 원소를 넣은 광섬유입니다. Exail은 이터븀(Yb), 툴륨(Tm), 홀뮴(Ho)을 넣은 대구경 모드 면적 광섬유(large mode area fiber, LMA)를 출력 증폭기용으로 들고, 부스터와 kW급 증폭기에 쓴다고 적습니다.
파장대에 따라 넣는 원소가 다릅니다. 1 µm 대역에는 Yb를, 2 µm 대역에는 Tm과 Ho를 넣은 광섬유를 씁니다.
증폭기가 빛을 어떻게 키우는지는 「오실레이터와 증폭기: 빛을 만들고 키우기」에 있습니다. 이 글에서 볼 것은 그다음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갈래마다 긴 광섬유를 지나는 동안, 주변 요인이 광섬유의 길이를 조금씩 바꿉니다.

넷째 정거장: 흔들림을 되돌리는 느린 보정
여기 붙는 것은 이름 그대로 느린 저주파 위상 변조기로, 둘째 정거장의 변조기와 따로 채널마다 하나씩 있습니다. 이 변조기는 주변의 흔들림 때문에 갈래마다 달라지는 광섬유 길이의 차를 보정합니다. 광섬유 길이가 달라지면 빛이 끝에 닿을 때의 박자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흔드는 걸까요? 흔들림의 주된 원인은 주변의 열과 소리·진동입니다. 실험실에서 잰 결과라서, 장소와 조건에 따라 크기가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흔들림을 고치는 부품이 스스로 흔들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변조기는 온도가 바뀌어도 성질이 그대로여야 하고, 빛을 일그러뜨리는 비선형 효과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고칠 양은 어떻게 알까요? 장치는 갈래 사이의 위상 차를 계속 재고, 잰 만큼 위상을 되돌리는 고리를 돌립니다. 이런 능동 위상 안정화(active phase stabilization)가 대부분의 결맞음 결합 장치에 들어가며, 고리를 짜는 방법은 결합기 구조마다 여럿입니다. 그 덕에 빔들은 결합하는 동안 늘 서로 힘을 보탭니다.
자동차의 차선 유지 기능과 닮았습니다. 차가 조금 벗어나면 핸들을 살짝 돌려 되돌리듯, 위상이 조금 어긋나면 변조기가 그만큼 되돌립니다. 실제로는 고칠 대상이 눈에 보이는 위치가 아니라 빛의 위상이라, 그것을 재는 일부터가 장치의 몫입니다.
다섯째 정거장: 빛이 지나는 길이 맞추기
마지막 부품은 가변 광 지연선(variable optical delay line, VODL)입니다. 작은 광학 부품을 조립해 만든 이 장치로, 빔마다 빛이 지나는 광 경로를 같게 맞춥니다.
위상을 고치는데 왜 길이까지 맞출까요? 둘째 정거장의 맞바꿈이 여기서 돌아옵니다. 레이저 선폭은 결맞음 길이(coherence length)를 정하고, 결맞음 길이는 여러 빔이 서로 간섭할 수 있는 거리를 정합니다. 선폭을 넓히면 결맞음 길이가 줄어듭니다.
결맞음 길이는 빛의 박자가 고르게 이어지는 거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갈래가 지나온 길이의 차가 이 거리보다 길면, 위상 변조기로 박자를 맞추려 해도 두 빛이 더는 고르게 겹치지 않습니다.
결맞음 길이가 짧으면 길이의 작은 차이도 문제가 되므로, 갈래마다 지나는 길을 꼼꼼히 맞춰야 합니다. SBS를 피하려고 넓힌 선폭이 길이 맞추기라는 숙제를 남기는 것입니다. 느린 위상 보정과 길이 맞추기가 짝을 이루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 정거장: 겹쳐서 한 빔으로
박자와 길이가 맞은 빔들이 드디어 만납니다. 빔들이 한 빔으로 모이는 원리는 앞 글에서 간섭으로 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합기를 어떤 모양으로 만들든 빔들의 위상이 맞아야 서로 힘을 보탠다는 점입니다.

빔들을 어떤 소자로 겹치는지, 위상이 어긋나면 빛이 어디로 새는지는 앞 글에서 빔 분할기와 회절 광학 소자로 보았습니다. 지도의 점선 되먹임이 바로 그 어긋남을 재서 넷째 정거장으로 돌려보내는 고리입니다.
부품이 한 상자에 모이다
갈래마다 따로 있어야 하는 이 부품들을 랙 하나에 모은 다채널 장치도 공개되어 있습니다. 랙 안의 채널마다 위상을 따로 맞출 수 있습니다.
위상 변조기는 결맞음 결합만의 부품도 아닙니다. 빔을 합치는 방법 가운데 분광 빔 결합(spectral beam combining, SBC)에도 쓰입니다. 두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는 「빔 결합이 필요한 이유와 세 가지 방법」에 표로 정리했습니다.
고출력 광섬유 레이저는 공장 기계와 라이다(lidar), 대형 연구용 레이저 시설에 쓰이고, 최근에는 국방 쪽으로도 넓어졌습니다.
쉽지 않은 점
갈래를 늘리면 부품도 늘어납니다. 위상 변조기, 증폭기, 보정용 변조기, 지연선이 모두 갈래마다 하나씩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합기도 마찬가지입니다. 2018년 리뷰가 짚은 대로, 두 빔씩 합치는 소자를 줄줄이 이으면 부품 수가 빔 수와 거의 같은 비율로 불어납니다.
선폭을 둘러싼 맞바꿈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넓히면 SBS는 누그러지지만 결맞음 길이가 짧아지고, 그만큼 길이를 더 정밀하게 맞춰야 합니다.
흔들림의 크기도 정해진 값이 아닙니다. 열과 음향이 주된 원인이라 장치가 놓인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정 부품은 그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온도에 흔들리지 않고 비선형 효과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출력 숫자를 읽을 때도 조심할 점이 있습니다. 이 글의 출력 값은 제조사가 기술 페이지에 적은 것입니다. 같은 제조사의 다른 페이지는 수 킬로와트급 광원 여러 개를 합쳐 수십~수백 킬로와트를 낼 수 있다고 적어, 표현이 조금 다릅니다.
다음에 읽을 글
- 「결맞음 빔 결합의 원리: 공개 리뷰 논문으로 읽기」: 마지막 정거장에서 빔들이 왜 한 빔으로 모이는지 간섭으로 풉니다.
- 「한 가닥의 한계 ①: 비선형 효과(SBS, SRS)」: 둘째 정거장에서 선폭을 넓힌 까닭인 SBS를 자세히 봅니다.
- 「빔 결합이 필요한 이유와 세 가지 방법」: 결맞음 결합을 분광 결합, 비간섭성 결합과 나란히 놓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