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금속 상자에서 가는 광섬유 한 가닥이 나옵니다. 상자 안에는 펌프 다이오드(pump diode)라고 부르는 반도체 칩이 여러 개 들어 있고, 칩마다 낸 빛이 그 한 가닥으로 모여 나갑니다. 레이저 무기 한 대 안에서 이 상자는 칩과 증폭기 사이를 잇는 둘째 고리입니다.

여러 칩의 빛을 광섬유 한 가닥에 모은다는 말은 쉽게 들립니다. 그런데 광섬유는 빛을 받아 주는 넓이와 각이 정해진 그릇입니다. 이 글은 그 그릇의 모양, 렌즈로 빛을 모을 때 생기는 맞바꿈, 빛을 촘촘히 모으는 일이 왜 중요한지, 담은 빛의 파장을 왜 붙잡아 두는지를 차례로 봅니다.

칩 하나로는 모자라다

칩 하나가 내는 빛에는 한계가 있어서, 고출력 레이저를 펌핑하려면 많은 칩의 빛을 모아야 합니다. 칩 하나에 빛 나오는 곳이 하나인 단일 이미터를 여러 개 늘어놓기도 하고, 긴 칩에 이미터를 한 줄로 세운 바를 쓰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은 빛은 결이 고르지 않고 빔 품질(beam quality)이 낮지만, 이득 광섬유가 흡수해서 좋은 빔으로 바꿔 냅니다. 이미터와 바의 모양, 흡수선에 파장을 맞추는 까닭은 「펌프 다이오드: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부품」에 풀어 두었습니다.

이 글이 따라갈 것은 그다음입니다. 흩어진 칩들의 빛을 어떻게 가는 유리 실 하나의 끝에 들여보내느냐입니다.

빛을 담는 그릇: 넓이와 각

광섬유의 끝은 아주 작은 둥근 창입니다. 빛은 그 창의 넓이 안에 떨어져야 들어갑니다.

넓이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개구수(numerical aperture, NA)는 코어와 클래드(cladding)의 굴절률로 정해지고, 광섬유가 빛을 받아들이는 각도를 정합니다. 창에 떨어졌어도 그 각보다 비스듬히 들어온 빛은 광섬유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남색 배경 위 광섬유 끝을 확대한 모습. 가운데 둥근 코어 앞에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원뿔이 밝게 그려져 있고, 원뿔 안으로 들어온 빛줄기는 광섬유를 따라가며, 원뿔 밖에서 비스듬히 온 빛줄기는 옆으로 흩어진다. 실제 장비가 아니다
광섬유는 끝면의 넓이와 정해진 각도 안으로 들어온 빛만 받아들입니다. 원뿔의 크기는 그림을 위한 것이고 실제 값이 아닙니다(AI 생성 이미지)

그래서 광섬유라는 그릇에는 울타리가 둘입니다. 끝면의 넓이와 받아들이는 각입니다. 그릇에 담길 수 있는 빛은 "이 넓이 안으로, 이 각 안에서" 들어온 빛뿐입니다.

이 그릇을 생각하면 밝기(brightness)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교과서는 밝기를 단위 넓이당 출력으로 풉니다. 같은 출력이라도 좁은 넓이에 모여 있을수록 밝습니다.

같은 책은 반복률이 높은 레이저에 보통 밝기가 높은 펌프만 쓰는데, 이득 매질 안에서 펌프 빛을 작게 모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작은 자리에 많은 빛을 넣어야 할수록 밝은 광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렌즈로 모으면 생기는 맞바꿈

칩에서 나온 빛은 렌즈로 모읍니다. 그렇다면 렌즈를 세게 써서 빛을 아주 작은 점으로 줄이면 어떤 그릇에든 넣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넓이를 줄이는 대가로 각이 커집니다.

교과서의 빔 전파 식이 이 점을 보여 줍니다. 빔이 가장 가는 곳을 허리라고 하는데, 식에서 읽으면 허리를 좁게 모을수록 빔은 더 짧은 거리에서, 더 넓은 각으로 다시 퍼집니다.

그래서 빛을 작은 넓이로 몰면 더 넓은 각으로 퍼져 나가고, 각을 좁히려면 넓이가 커집니다.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남색 배경 위 열린 금속 상자 안에 작은 칩 여러 개가 줄지어 있고, 칩마다 나온 가는 빛줄기가 작은 렌즈들을 지나 깔때기처럼 한곳으로 모여 상자 앞에서 나가는 광섬유 한 가닥으로 들어간다. 실제 장비가 아니다
여러 칩의 빛이 상자 안에서 모여 광섬유 한 가닥으로 나갑니다. 칩과 렌즈의 수와 배치는 실제 설계가 아닙니다(AI 생성 이미지)

깔때기를 떠올리면 앞의 절반은 맞습니다. 넓게 받은 것을 좁은 구멍으로 모읍니다. 실제로는 다릅니다. 물은 깔때기 끝에서 어느 방향으로 흘러나와도 상관없지만, 빛은 좁게 모일수록 더 넓은 각으로 벌어집니다.

그래서 모듈은 넓이와 각을 둘 다 그릇 안에 들도록 맞춰야 하고, 어느 한쪽만 줄이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칩 빛의 결이 고르지 않다는 점이 여기서 다시 걸립니다. 교과서는 다이오드 배열처럼 공간 결맞음이 낮은 빔도, 파장을 바꿔 넣은 가우스 빔 식으로 다룰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빔 전파 식에서 빔은 파장이 길수록 빨리 퍼집니다.

결이 고르지 않은 빛은 파장을 늘린 빛처럼, 같은 넓이에서 더 넓은 각으로 퍼지는 빛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릇에 맞추기가 빠듯해집니다.

상자 안에서 하는 일

모듈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세 동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칩마다 나온 빛을 모으고, 한 방향으로 줄 세우고, 광섬유 끝의 넓이와 각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앞 절의 맞바꿈이 이 마지막 동작을 어렵게 합니다.

여러 칩의 빛을 한 그릇에 넣으려면, 칩 하나하나의 빛이 그릇을 조금씩만 차지해야 합니다. 칩의 빛이 밝을수록, 곧 좁은 넓이와 좁은 각에 많은 출력이 들어 있을수록 같은 광섬유에 더 많은 칩을 모을 수 있습니다. 이 맞춰 넣기가 모듈의 일입니다. 한 제조사는 이 결합 광학을 자체 설계라고만 밝히고 속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도 광섬유 결합 다이오드가 나옵니다. 반복률이 높은 레이저를 다루는 대목에서, 책은 단일 모드 펌프 다이오드의 출력이 모자란다고 짚습니다. 그래서 출력 낮은 다이오드 여럿을 번거롭게 묶기보다, 시판되는 가로 방향 다중 모드 광섬유 결합 다이오드가 더 끌린다고 적었습니다.

이 방식이 단순하고 튼튼하며, 높은 출력과 꽤 좋은 밝기를 주고, 복잡함과 비용을 줄인다는 설명입니다. 책의 맥락은 초고속 레이저입니다.

광섬유 레이저에서는 모듈이 보낸 펌프 빛이 이득 광섬유의 바깥층으로 들어갑니다. 공간 모드 품질이 낮은 다이오드 빛을 효율적으로 넣으려고 이중 클래드 광섬유(double-clad fiber)를 흔히 씁니다. 그 길은 「이중 클래드 광섬유와 펌프 빛 넣기」에서 이어집니다.

담은 빛의 파장을 붙잡아 두기

그릇에 잘 담았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이득 광섬유는 잘 먹는 파장이 따로 있어서, 펌프 빛의 파장이 그 흡수선에서 비켜 가면 담아 보낸 빛이 덜 쓰입니다. 파장 안정화를 내건 모듈은 이 문제를 겨냥합니다.

nLIGHT는 안정화한 파장이 온도나 전류가 넓게 바뀌어도 거의 움직이지 않아, 펌핑의 흡수가 고르게 유지된다고 소개합니다. 이 회사의 레이저 무기 기술 사슬 그림도 첫 칸(소자) 아래에 파장 안정화를 맨 먼저 적었습니다.

AI 생성 이미지: 어두운 남색 배경 위 펌프 모듈 하나가 놓여 있고, 광섬유는 모듈 앞쪽 한 곳에서만 나간다. 모듈 왼쪽 옆에는 서리 낀 파란 판이, 오른쪽 옆에는 붉게 달아오른 판이 떨어져 서 있으며, 광섬유 속 빛의 색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다. 실제 장비가 아니다
추울 때도 더울 때도 펌프 빛의 파장이 그대로여야 이득 광섬유가 잘 흡수합니다. 실제 장비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AI 생성 이미지)

같은 그림의 둘째 칸, 반도체 레이저 모듈 아래에는 영어 낱말 세 개가 있습니다. Durable Locking, Instant-On, Wide Temp Operation입니다. 그림에는 풀이가 없어서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습니다.

뜻이 분명한 것은 셋째 낱말, 넓은 온도 범위에서 동작한다는 요구입니다. 온도가 크게 바뀌는 곳에서 쓰는 장비라면, 그때마다 펌프 빛이 흡수선을 비켜 가서는 곤란합니다. 파장을 어떤 부품으로 붙잡는지는 공개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국방·우주용 모듈은 군 규격과 우주 환경에 맞춰 따로 만들고 시험받기도 합니다. 어느 무기에 어느 모듈이 들어갔는지는 공개 자료로 알 수 없습니다.

모듈 안의 일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밝기가 높아야 그릇에 많이 담고, 빛이 되지 못한 전기는 열이 되며, 열은 다시 파장 고정을 시험합니다. 열과 냉각 장비는 「냉각과 열 관리: 빛이 되지 못한 열은 어디로 가나」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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